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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學制 ‘다선형’으로 바꾸자 - 권대봉
	2004-01-26
學制 ‘다선형’으로 바꾸자 교육부가 교육인적자원부로 바뀐 것은 국가 인적자원 개발의 3대 영역인 양성·개발·활용을 종합적으로 운영하기 위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 시스템과 노동시장 시스템의 적합화를 위한 시각과 노력이 필요하다. 오늘날 청년 실업의 증가는 경제 상황의 어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국가 인재의 양성과 활용의 불일치에 기인한다. 국가 인적자원 개발은 분명 인적자원의 양성·개발·활용이라는 세 가지 영역이지만 실상은 양성에 치우쳐 있다. 그러나 개발과 활용이 양성과 무관한 것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국가 인재 양성 체제가 이대로 좋은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연초에 나는 열흘간 국민소득 2만달러를 오래 전에 달성한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의 교육기관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비행기 옆 좌석에 앉은 스위스 고등학생에게 학교 생활이 즐거우냐고 물어보았다. 학교가 즐겁지 않으면 왜 다니느냐는 것이 그 학생의 답변이었다. 내가 방문한 유럽 세 나라의 교육은 다선형 학제를 통해 국가 인재를 양성하고 있고, 지방별 교육 자치가 건실하며, 학교 시스템과 노동시장 시스템의 적합화가 잘 돼 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그러나 한국은 단선형 인재 양성 체제로 전국의 학생을 한 줄로 세우는 교육을 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가 필요한 인재를 제대로 양성하지도 못하면서 학생과 학부모에게 교육 고통을 주고 있다. 그런데 다선형 인재 양성 체제는 국가가 필요한 다양한 인재를 여러 가지 형태로 줄을 세워 양성한다. 다선형 학제 아래의 학생들은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본인의 소질과 능력에 따라 교육받고 있기 때문에 학교가 즐거운 곳이다. 다선형 인재 양성 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위의 세 나라는 일반계 중고등학교가 30% 미만이며, 실업계 중고등학교가 70% 이상이다. 다양한 실업계 중등학교를 졸업하면 회사 인턴을 거쳐 바로 취업하거나 실업계 대학에 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어 산업 기반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탄탄한 구조를 갖고 있다. 단선형 인재 양성 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은 산업 기반인력을 양성하는 구조가 매우 취약하다. 한국의 중학교는 모두 일반계이고, 고등학교는 일반계가 60% 이상이며 실업계는 40% 미만이다. 2000년(60%)부터 2001(61%), 2002(62%), 2003년(63%)까지 해마다 약 1% 포인트씩 일반계 고등학교가 증가했고, 반대로 실업계는 2000년(39%)부터 2001(38%), 2002(37%), 2003년(36%)까지 매년 1% 포인트씩 감소했다. 한편, 1990년 8.3%에 불과하던 실업계 고등학교 졸업자의 대학진학률이 지속적으로 상승해 1995년에 19.2%, 2002년에는 49.8%를 기록한 것은 고등교육의 보편화 정책 결과이다. 상고 출신이 반도체 조립공으로 취업하는 상황이지만, 상업·공업·농수산업 등 전통적인 산업 구조를 기반으로 한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학생 유치가 어렵게 되자 인문계 고등학교로 전환한 경우도 있다. 인적자원의 주요 수요 분야인 정보통신 서비스, 반도체 공업, 관광, 레저, 유통 물류 분야에 대한 실업계 고등학교 교육 체제는 매우 미흡하다. 최근에 설립돼 인기를 끌고 있는 조리고등학교와 애니메이션고등학교도 태부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졸업자 수보다도 대학 입학 정원이 많은 관계로, 수학 능력과 관계없이 누구나 대학에 진학하니 산업 기반인력 양성 구조는 취약하고 대졸 청년 실업 배출 구조는 탄탄한 곳이 한국이다. 그러므로 학교 시스템과 노동시장 시스템 적합화의 개념을 도입하여 기존의 단선형 학제를 다선형으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학교 시스템과 노동시장 시스템의 적합화라는 것은 다양한 수준의 학교에서 배출하는 인적자원의 능력과 기술이 노동시장에서 요구하는 다양한 수준과 조화되는 것을 일컬으며, 이를 위해 학교에서 일터로 이행하는 다선형 시스템이 요구된다. 한 줄 세우기를 하는 단선형 학제는 모든 이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제도이긴 하지만 99%에게는 고통을 주며, 중도 탈락자를 양산하여 사회 문제를 촉발시키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 줄 세우기를 하는 다선형 학제는 본인의 소질과 능력에 따라 교육받을 수 있으므로 중도 탈락자가 적은 것이 특징이다. 학생의 능력과 적성에 따라 여러 줄로 세우는 다선형 학제 아래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학교가 즐겁고,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은 거의 없거나 적어도 고통 수준이 아니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권대봉 (고려대 교육학 교수/ 시민회의 교육포럼 회장) 출처 - 문화일보 2004. 1. 24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