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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현실 인식 안일하다 - 류동길
	2004-01-16
경제현실 인식 안일하다 지금 우리의 시급한 과제는 노무현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지적한 것처럼 경제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이다. 대통령은 이를 올해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했다. 지난 해 성장률은 2%대로 추락했고 잠재성장률은 3%대로 내려앉아 앞으로 성장을 지속할 체력도 급격히 약화됐다. 일자리는 3만개나 사라졌고, 실업자는 6만9000명이나 늘었다. 더욱이 29세 이하의 청년 일자리는 19만개 줄었다. 연간 취업자가 감소한 것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이후 처음이다. 경제정책의 실패가 가져온 당연한 결과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경제에 전력 투구하겠다는 건 때늦기는 했지만 너무나 당연하다. 노사관계 안정의 중요성과 대기업 노조의 자제를 언급한 것도 옳았다. 하지만 국정 방향이 옳다 해도 경제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은 결코 말만으로 되는 건 아니다. 국정과제를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정책은 올바른 현실인식에서 나와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의 경제 현실인식은 많은 기업인과 국민의 그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솔직히 걱정이다. 기업인들은 정책의 불확실성이 기업 활동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정부 정책의 어느 부분이 불확실한지 묻고 싶다”고 했다. 지난 한해 동안의 정책 혼선으로 치른 값비싼 대가를 모른단 말인가. 새만금간척사업, 경부고속철도공사, 사패산 터널공사 등 국책사업의 추진 과정에서 빚어진 혼선과 차질과 예산 낭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노동자에게 양보 좀 했다고 죽을 죄인가”라는 발언을 한번 되새겨 보라. 분배에 치우친 듯한 경제정책은 정책 방향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데 한 몫 했다. 쓰러질 수밖에 없는 기업과 은행의 노조는 매각과 합병을 반대하는 파업을 해도 속수무책이었다. 여러 사업장에서의 노조 파업, 화물연대 파업,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시행 등에서 보여준 정부의 갈팡질팡한 대응은 일반 국민과 기업인에게 정책의 일관성 결여와 불확실성을 각인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노 대통령은 “정치 상황은 경제와 관계없다”고 했다. 이러한 대통령의 인식에 공감하는 국민은 얼마나 될까. 정치 불안은 경제 부진과 관련이 있다는 게 일반의 인식 아닌가. 정치와 경제의 함수관계를 정확히 따지기는 어렵다. 하지만 정치가 사실상 모든 걸 지배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정치 불안이 경제에 미칠 파장은 결코 과소 평가될 수 없다. 대통령은 ‘시민혁명’의 필요성을 말하고, 헌법에 어긋난다는 걸 알면서도 재신임을 묻겠다고 해서 많은 국민은 고달프다. 이런 상황이 어찌 경제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인가.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 대한 국회 동의가 무산된 것을 보라. 선거에서 얻을 표만 계산한 국회의원들에게는 여야도 국익도 없었다. FTA는 이미 153개국에서 발효중이고, 협정국가간 호혜 무역이 통상 거래의 60%를 넘었다. 무역의존도가 70%를 넘어 수출로 먹고 살아야 하는 우리는 세계의 흐름에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간다면 국회의원들의 금배지따기 놀음에 국민 모두의 고통은 커지고 경제는 추락할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경제지도자회의’를 개최, 노동계·경제계·여야 지도자는 물론 시민단체 등이 머리를 맞대고 국민적 합의를 모아가겠다고 했다.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려고 노력하는 건 좋은 일이다. 대화와 설득은 값진 덕목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법과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원칙은 타협의 대상일 수 없는 것이다. 법과 원칙은 뒷전으로 밀쳐놓고 힘겨루기를 하는 모임이어서는 안 된다. 고임금과 불법 파업, 각종 규제 등으로 기업인들은 한국을 외면한다. 최근 몇 년 간 한국 기업이 중국에서 1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설비 투자 부진과 함께 국내 산업의 공동화(空洞化)는 급속히 진전되고 있다. 1990년 504만개였던 제조업의 일자리는 2003년에 416만개로 줄었다. 국민소득 1만달러의 덫에 8년 동안 걸려 있는 게 우연은 아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경제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이 국정의 최우선 과제라면 정책의 우선순위는 이 과제 해결에 도움이 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래야 떠나는 기업이 발길을 돌리고 외국 기업이 찾아온다. 류동길 (숭실대 경제학 명예교수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문화일보 2004. 1. 16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