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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를 망가뜨린 정치 - 사공일
	2003-12-29
경제를 망가뜨린 정치 소비·기업투자 최악의 한해 … 대통령의 리더십도 바로 서야 2003년은 환란(換亂)의 여파에 휩싸였던 1998년을 제외한다면 23년 만에 가장 저조한 경제성장을 이룩했던 해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두 자리 수의 연간 수출증가율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수출이 거의 늘어나지 않았던 2001년보다도 낮은 성장률을 기록한 특이한 해가 될 것 같다. 이것은 수출호조에 힘입어 경제 전체가 뒷걸음질치는 것은 면했지만, 내수가 얼마나 부진했던가를 말해줌과 동시에 국민들이 느끼는 이른바 ‘피부경기’는 환란 이래 최악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환란 이후 정부는 경기회복을 위해 민간소비와 부동산경기 부양 관련 각종 조치를 성급히 취해 왔다. 그 결과 가계부채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높은 증가세로 늘어났다. 특히 현금서비스 이용한도의 폐지 등 신용카드이용 활성화를 위한 각종 시책에 따른 가계부채 증가속도는 더욱 높았다. 투명하고 효율적인 ‘선진 신용사회’ 구축이라는 중장기적 목표 달성보다는 주로 단기적 소비조장책으로 추진된 근시안적 신용카드 관련 시책들은 현재 문제되고 있는 신용카드사의 부실과 법정 신용불량자를 양산함으로써 오히려 신용사회 기반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여하간 이러한 가계부채 증가세는 무한정 지속될 수 없었고, 정부는 작년 하반기부터 가계대출 억제를 위한 적극적인 각종 조치를 취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 결과 금년 2분기부터 민간소비는 전년 동기에 비해 줄어들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60%에 달하는 민간소비가 줄어들게 되었으니, 경기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물론 민간소비가 위축되더라도 수출의 호조와 함께 기업투자가 활성화되었다면, 어느 정도 경기 진작은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기업 설비투자 역시 금년 2분기부터 줄어들게 된 것이다. 설비투자가 저조한 것은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 자체를 떨어뜨린다는 측면에서 볼 때 더욱 심각한 것이다. 사상 최저 수준의 금리와 풍부한 유동성 공급에도 불구하고 기업 투자가 저조한 것은 주로 경제 외적요인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즉 북핵 문제를 둘러싼 한반도 안보 불안, 친노조·반기업 성향으로 비친 새 정부의 출범, 각종 집단이기주의에 약하고 인기영합에 급급한 정치권과 정치 불안, 약화된 경제 정책 조정기능에 따른 정책의 혼선과 일관성 결여, ‘강경 노조 공화국’이란 말을 들을 정도의 전투적 노사풍토와 노동시장의 경직성 등 정부와 정치권이 상당부분 함께 책임져야 할 요소들이 기업투자의 걸림돌이 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성장잠재력을 키워나가기 위해 시급한 것은 바로 이러한 요소들을 제거하거나 호전시켜나가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정치권이 달라져야 함은 두말 할 여지도 없다. 아울러 대통령의 리더십이 바로서야 한다. 국가의 명운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대통령책임제를 하는 나라 대통령이 스스로 “대통령직 못해먹겠다”, “시민혁명” 운운하는 판국에 정부가 제 기능을 할 수 있겠는가. 2004년에는 경제가 회복되고 이민박람회에 큰 인파가 몰려드는 서글픈 나라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정부와 정치권이 환골탈태(換骨奪胎)하는 것을 기대해 보는 것은 무리일까.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 시민회의 고문) 출처 - 조선일보 2003. 12. 29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