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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영권 보호대책 세워야 - 정갑영
	2003-12-18
경영권 보호대책 세워야 외국인 지분, 10대그룹 44% … 역차별적 규제 풀어야 글로벌 경제에서 외국자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고용과 소득을 창출하며, 새로운 기술과 경영기법으로 경제의 활력소가 되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증시에서도 외국자본의 비중이 급격히 상승하였다. 외국인은 삼성그룹의 54%를 사들였고, 국내 10대 그룹 전체의 44%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의 대표기업들은 대부분 외국인 투자자를 1대 주주로 모시고 있을 뿐만 아니라, SK 등 일부 그룹은 경영권마저 위협받고 있다. 금융권에서의 영향력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증권시장은 벌써부터 외국인 투자자들이 좌지우지하고 있다. 국내 기관 투자가의 비중은 15%에도 못 미친다. 이 결과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도 외국의 거대자본으로부터 경영권마저 위협받는 상태가 되었다. 일부에서 특정인의 이름을 붙인 사모(私募)펀드라도 만들어 금융권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물론 외국자본은 시장의 효율성과 경영 투명성을 제고시켜 기업 가치를 높이는 긍정적 기여를 한다. 이런 이유로 자본의 국적을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모든 외국자본이 항상 경제에 활력소가 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실물투자와는 무관하게 철저하게 ‘머니게임’에만 열중하는 단기투기 자금의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실제로 적대적 M&A와 같은 기업사냥을 통해 거액의 차익만 노리는 투기성 헤지 펀드도 수두룩하다. 이런 이유로 자본시장을 개방한 나라들은 대부분 경영권을 제도적으로 보호하는 보완장치를 갖추고 있다. 미국에서도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이사회 결의만으로 대주주에게 저가로 신주를 발행하거나, 일부 주식에 보통주와는 다른 의결권이 부여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포드 자동차는 대주주가 7%의 지분만 갖고도 40%의 차등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스웨덴이나 핀란드, 스위스, 독일 등 유럽 국가들도 유사한 경영권 보호제도가 있다. 에릭슨이나 사브(SAAB)와 같은 세계기업을 보유한 스웨덴에서도 주당 최고 1000배까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황금주가 있다. 영국도 기간통신 사업자 BT를 민영화하면서 주요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황금주를 발행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사정은 어떠한가. 경영권 보호는커녕, 갖고 있는 지분마저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역차별적인 규제가 국내기업을 묶어 놓고 있다. 의결권 제한과 출자총액 규제 등 대주주에 대한 불평등한 규제로 인해 적극적인 방어 전략을 행사할 수 없다. 모두가 국내 자본은 부도덕한 ‘악화(惡貨)’이고, 외국자본은 선량한 ‘백기사(白騎士)’라는 잘못된 명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과연 시장의 효율성을 이유로 기업경영권을 이렇게 방치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역차별이나 규제로 거대 그룹의 경영권을 정체불명의 투기적 펀드에 위협받게 만드는 것이 개혁의 목표였던가. 에너지와 통신 서비스와 같은 기간산업을 무명의 헤지 펀드가 지배한다면, 오히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 아니겠는가. 나아가 재산권조차 방어할 수 없는 나라에서 어떻게 창업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제는 구조조정과정에서 백안시되어 왔던 시장개방의 보완대책을 차분하게 정리해야 한다. 자본이 국적이 없다고 정책마저 국적이 없다면, 우리 경제는 어디로 가겠는가. 정갑영 (연세대 경제학 교수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조선일보 2003. 12. 18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