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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주고 뺨 맞고 감옥까지 - 류동길
	2003-12-12
돈주고 뺨 맞고 감옥까지 현찰 150억 원을 실은 트럭을 열쇠와 함께 넘겨받는 일은 상상을 초월한다. '차(車)떼기'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이건 갱영화도 아니고 엽기소설도 아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측이 LG그룹으로부터 검은 돈을 받은 사건이다. SK로부터 받은 돈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는 터에 이번 사건이 또 불거졌고, 삼성으로부터 152억원, 현대차로부터도 거액을 받은 정황이 포착됐다는 것이다. LG 관련 사건에 연루돼 이 후보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서정우 변호사가 구속 수감됐다. 검은 政經고리 영구단절해야 "돈을 전달한 LG측은 돈을 요구한 최돈웅 의원에게서 고압적인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고압적인 느낌을 받았는지는 주관적으로 판단할 일인데 검찰이 굳이 이런 설명을 하는 까닭은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한나라당은 편파수사라고 불만이지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다른 당에서도 그런 자금을 다 받았는데 우리만 당한다고 억울해해도 국민들은 곱게 보지 않는다. 교통규칙 위반자가 "왜 나만 잡느냐"고 항의해도 자신의 잘못은 덮어지는 게 아닌 것과 같다. 사리는 그러하지만 대선이 치러지는 과정을 다 아는 국민은 한나라당만 불법으로 거액의 자금을 받았고, 노무현 후보측은 깨끗했다고 생각지 않는다. 정치자금은 그것이 보험금이든 반대급부를 노린 것이든 당선가능성이 큰 후보에게 쏠리게 마련이다. 후보 단일화 이후 노무현 후보의 지지도가 이회창 후보를 앞섰다는 게 당시 모든 여론조사 결과였다. 국민은 상식과 경험으로 노무현 후보 진영에도 검은돈이 흘러 들어갔다고 믿고 있다. 거액의 당선 축하금이 들어갔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노무현 후보 진영의 대선자금 수수 규모는 지금까지 드러난 것으로는 수십억 원에 불과하다. 그래서 편파수사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검찰은 노무현 후보측에 대한 수사도 진행하고 있다고 하지만 검은 돈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으면 편파수사 시비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야당과 여당에 대한 수사의 형평성 시비는 그렇다 치자. 기업인은 돈 주고 뺨 맞고 감옥에 가는데 정치인은 어디 그런가. 정치인들은 기업에서 돈 뜯어 대선을 치르고 기업과 기업인을 궁지에 몰아넣으면서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서로 잘났다고 싸움질이다. 50보 100보가 아니라 50보 51보인데도 말이다.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여기도 짜가(가짜)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 한때 유행했던 이 노래 말은 오늘 날 우리의 요지경 정치판을 풍자하고 있다. 기업도 권력도 ‘경제’전념하게 한나라당과 이회창 전 대통령 후보는 왜 국민 앞에 벌거벗고 나서지 못하는가. 일이 이 지경까지 왔는데 우물쭈물하고 있을 수 없다. 이미 이회창 후보는 SK비자금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모든 책임은 스스로에게 있다고 하면서 감옥에라도 가겠다고 했다. 이회창 후보가 직접 나서서 국민에게 사죄하고 마땅한 처벌도 받아야 한다. 그러면 노무현 후보측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우리 정치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정치권은 진솔한 고해성사를 하라. 재벌 총수는 스스로 목숨까지 끊었다. 정치인은 언제까지 기업을 윽박지르고 국민을 속이면서 살 수 있는가. 돈주고 죄인 취급받는 재계의 처지는 딱하다. 불법으로 자금을 조성해서 정치인에게 건넨 것은 기업의 잘못이다. 어떤 이유를 대든 잘못은 잘못이다. 하지만 기업이 정치 권력에 의해 운명이 좌우될 정도로 영향을 받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이제 떳떳한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더 이상 부정의 고리에 연결되면 기업도 나라도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내년에 한국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가를 부르는데 한국 경제의 회복 가능성도 경쟁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투명하다. 경제 현안은 제때에 다스리지 않으면 반드시 위기를 맞는다. 우리가 겪은 외환 위기는 이를 설명해주고 있지 않은가. 부정과 부패는 척결돼야 하고 정경유착의 고리는 끊어야 한다. 이럴 때 경제 걱정하고 기업 걱정하면 반(反)개혁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경제를 살려야 한다. 경제는 정치인이 잠자는 밤에 성장한다는 말뜻을 정치인들은 한번이라도 되새겨 보라. 경제 살리는 정치를 펴지 못하면 모두 파멸한다. 류동길 (숭실대 경제학 명예교수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문화일보 2003. 12. 11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