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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관은 선거용이 아니다 - 박효종
	2003-12-05
장관은 선거용이 아니다 내년 총선에서 승부수를 걸기 위해 정부·여권에서 현직 장관들까지 차출하기로 하였다는 언론보도가 나오고 있다. 물론 이것은 내년 총선에 임하는 정부와 여권의 심정이 매우 절박하다는 하나의 반증일 수 있으나 거두절미해서 말한다면 이러한 보도가 오보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가 갖는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선거 승패에 의해서 민의를 가늠할 수 있고 정권도 장악할 수 있으며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정국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 또 선거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 민주사회 정치인이 비민주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치인과 다른 행태를 보이는 소이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선거는 선거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선거란 그 자체로 목적적 가치가 아니라 국정을 운영하기 위한 수단적 가치가 아닐까. 즉 국리민복을 위한 나름대로의 국정 비전을 실현하는 방편이 아니겠는가. 선거의 승리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선거 승리 뒤에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 사실을 혼동한다면 ‘마차를 말 앞에 세우는 것’처럼 앞뒤가 뒤바뀌는 셈이다. 노무현 정부는 지난 대선에서 이긴 다음 국정을 주도하고 있으나 내외의 여건들이 한결 같이 힘들고 도전적이다. 그런데 내각에서 거명되는 인물들을 보면 ‘강효리’ 장관을 비롯하여 인기가 ‘짱’이라고 평가받는 장관 혹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지명도가 높거나 실적도 괜찮고 지역 연고가 있는 장관들이다. 이런 장관들이 국회에 나갈 경우 의정활동을 더 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장관의 업무는 그 자체로 고유한 역할인데 단순히 정부·여권의 힘을 보태 주어야 한다는 논리로 선거에 나선다는 것이 국정의 무책임성을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물론 지금의 노무현 정부가 소수정권으로 국정을 운영함으로써 봉착하거나 체감하고 있는 어려움은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변변한 여당이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근사하고 떳떳한 여당을 가지고 싶어하는 마음은 굴뚝 같을 것이다. 그러나 길이란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 절박할수록 정도를 걸어야 하는 법이다. 정도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명하다. 국가가 직면한 현안 문제의 슬기로운 해결을 위해 고뇌를 거듭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갈등구조와 대립구도를 치유하기 위한 통합과 화해의 노력에 나서는 일, 바닥을 기고 있는 경제 살리기에 나서는 일이다. 이런 일들은 내년 총선에서의 승리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 가뜩이나 산적한 국가 현안들이 많은데 이들을 내버려 두고 총선에만 신경을 쓴다고 한다면 부질 없는 ‘승리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다는 증거이고 ‘염불보다 잿밥’에 신경을 쓴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총선에 과잉 관심을 보이는 것은 과거 정권들에서 비롯된 잘못된 관행이다. 당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라면 국회의 한 석을 더 차지하기 위해 총동원령을 내렸던 것이다. 그러나 의석수가 적어도 순리적인 정치를 하려는 정부의 힘이 강한 법이다. 이 점에서 노무현 정부는 달라야 한다. 성공적인 국정 운영이 총선 승리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온 몸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이미 노 대통령도 내각을 구성하고 장관을 임명하면서 임기내 같이 할 장관의 의미를 강조한 바 있다. 별 잘못도 없는데 1년 임기의 장관이란 너무나 무책임한 일이고 국력 낭비이다. 업무 파악과 업무 장악에도 상당히 시일이 소요되는 법인데, 1년 단명 장관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가. 부디 초심을 유지하면서 국정 챙기기에 우선순위를 두기를 기대한다. 박효종 (서울대 정치학 교수 / 시민회의 정책위원장) 출처 - 세계일보 2003. 12. 5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