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의 김부자 “접견”적 북한접근법 - 신일철 | ||
2003-12-02 | ||
송두율의 김부자 “접견”적 북한접근법 1. 김정일·호네커에 노벨상 안 주었다고 불평하는 “경계인”의 괴변 올해 3월 평양에서는 남북한 해외학자들의 통일토론회가 열렸다. 이번까지 6차에 걸쳐 이 통일포름은 형식상 송두율 재독 사회학자가 주동한 것으로 되어 있다. 송씨는 3월 평양에서 서울대 철학과 선배 윤노빈씨를 만났다. 윤씨는 83년 대만에 연구차 나갔다가 가족과 같이 월북했다. 싱가폴이나 홍콩을 거쳐 북한대사관을 통해 입북했다고 한다. 그후 윤노빈은 주로 대남공작 기구인 “한민전”의 흑색대남방송인 “귀국의 소리” 원고작성자로 있었다(북한국기훈장 1급 수여). 송씨는 윤씨와 만나 “우리 철학자들도 이제는 더 이상 외국 철학의 ‘소매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그의 목소리가 아직도 내 귓가를 맴돌고 있다.”라고. 송씨와 윤씨는 아직도 쇄망해 가는 북한주체 이데올로기의 선전일꾼 “소매상”이란 점에서 코드가 맞는다. 윤씨가 71년 1년간 프랑크프르트대학에 유학했을 때 송씨를 만났고 1973년 송씨는 북한에 가서 북노당에 입당했다. 송씨나 윤씨는 모두 “철학자”가 아니다. 토론과 비판의 자유가 있는데서 철학이 있다. 스탈린주의나 북한의 주체 이데올로기는 독재통치의 정치이념이지 철학이 아니다. “귀국의 소리” 대남흑색방송의 원고작성이 어떻게 “철학”인가. 송두율은 재독 사회학자라 하는데 뮨스터대학 후학기 전5회 특강제목이 “반미주의”(Anti- amerikanismus)이고 그 강의개요에는 “허리우스·코카콜라” 등의 세계화라고 명시되어 있다. “개X철학”이란 속어가 생기게 된다. 올해 3월의 평양통일 토론회에서는 남한과 해외학자들의 발표논문이 북측에 의해 “민족공조”의 내용으로 거의 반 가량이 제멋대로 개작되었다는 사건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이로써 북한당국은 남북학술교류의 상대가 될 수 없는 반문명적 “천민”들임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 분노를 금할 수 없는 황당한 사건에 대해 북한사상의 “소매상”인 송씨·윤씨의 태도가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송씨가 남도 북도 아닌 “경계인”임을 자처해왔다. 그의 책 「경계인의 사색」(2002년)에서 “경계인”(Grenzänger, 境界人)의 본뜻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국경경계에 출몰하는 마적을 뜻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 단어를 남과 북의 경계에서 남북을 넘나들면서 두 세계를 소통시키는 사람의 뜻으로 정착되었다고 한다. 송씨는 남한에 친북사상을 전파하기는 했으나 북한에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경탄스러운 성공을 알린 흔적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그는 6.15 공동선언후 남한에 “김정일 쇼크”가 일어나 김정일의 통치력을 찬양한다고 했으나 북한에는 “김대중 쇼크”는 커녕 남한을 “민족주체가 투쟁해야 할 대상으로 미제국주의, 일본극우반동, 남조선괴뢰” 등으로 “괴리” 험담(송두율, 위의 책, p.134)까지 농하고 남한의 “퇴폐” “양귀문화”가 북한주도의 “민족대단결”의 대남전술을 방해한다는 언어마술을 구사하고 있다. 송씨는 “인권과 민주화”로 받은 김대중 전대통령의 노벨평화상에 대해 “김정일”에게는 노벨평화상을 주지 않은 것은 잘못 되었다는 주장까지 폈다. 한발 더 나가서 브란트의 “동방정책”에 대해 노벨상을 주면서 동독의 호네커서기장에게는 그 상을 동시에 주지 않은 것은 모두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송씨는 동독의 호네커가 “형무소 국가” 동독의 인권유린․강권독재의 원흉인 것도 모르는 것 같이 말한다. 송두율의 “내재적 접근”은 구소련의 스탈린, 나치스의 히틀러도 그들의 내세운 선전선동 문서로 그 독자적 특성을 이해해주어야 하고 모두 노벨상감이 된다는 전체주의 용호자로 일관된 이상스러운 “경계인” 같은 감을 준다. 이런 송씨의 친북적이기 보다 북한체제 대변인적인 글이 대한민국에서 출판되고 읽히게 된 배경에 대해 우리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송씨가 “북한노동당 고위간부”였다는 것을 모르고 감쪽같이 속았다는 것이 과연 변명이나 면책이 될 수 있을까. 김정일이 대남공작에 대한 자신감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면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2. 김일성 “접견”에 감격한 독재 숭배자 송두율씨의 내재적 접근법은 북한 김부자체제에 대한 “내재적 접근”(Immanent approach)이다. 그는 서방측 학자들의 전체주의 모델이나 그밖에 북한 밖에서 보는 북한관은 모두 틀렸다고 배제한다. 북한체제에 대해서는 “외재적” “선험적” 접근은 모두 북한체제가 일인독재다, 폐쇄적 병영국가다, 자유·민주주의·인권이 모두 유린된 인권없는 지옥이란 갖가지 북한관이 “북한사회의 마음의 논리”를 모르는 소치라는 것이다. 송씨는 아렌트의 전체주의 비판 모델도 못마땅하다고 했다. 그는 구소련 등의 사회주의가 레닌주의의 “의식화”로 한나 아렌트가 지적한 바와 같이 “파브로프의 개”와 같은 당사상 조작의 집단주의라는 분석을 일축하는 것이 된다. 그의 북한 “내재적 접근법”은 북한당이나 김부자 독재자가 내건 그들의 정치이념으로 북한을 보라는 것이오 주체사상의 신봉자, 해설일꾼이 되라는 뜻이다. 물론 북한노동당의 고위간부의 입장에서는 북한체제가 왜 2,300만 인민의 아사, 에너지난, 경제총파탄에 이르렀는가의 정책실패 원인을 입에 올릴 수 없고 다만 공식적인 북한주체 이데올로기와 로동신문 등의 신념 공통사설에 의해서 북한을 말하는 이외의 다른 내재적 비판의 자유는 그에게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송씨의 북한 “내재적 접근”은 자기의 북한대변인적 입장을 가지고 한국의 일부 지식인과 젊은 세대에게 “경계인”의 가면을 쓰고 북한체제에 동조하고 찬양하기를 선동하는 그의 비학문성에 문제가 있다. 스탈린주의 소련이나 북한에 대한 내재적 접근은 전체주의적 접근이 규정하는 “개인 우상화”, “일당독재론”은 모두 오류라는 것이다. 그가 어떻게 해서 이처럼 대담무쌍한가. 송씨는 김일성과 나란히 사진을 찍어 로동신문(1991년)에 크게 나오고 김일성 사망때 조문을 가서 느낀 소감을 “김주석이 우리 현대사에 남긴 의미의 가감없는 평가와 더불어 슬퍼하는 북녘 동포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건전한 양식으로부터 우리의 북에 대한 전망도, 그리고 통일에 대한 전망도 열리는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썼다 (, 1994). 그리고 김일성의 영구에 조의를 표하고 김정일의 “접견”을 허락받았다고 그의 글 “김주석 사망 소식을 듣고”에서 당당하게 썼다. 송씨는 북한 “내재적 접근”이 다름 아닌 주체사상에 의해 북한을 보는 것이라고 거침없이 강변하고 있다. 그의 김일성 숭배심은 그의 글에서 “괴테가 나폴레옹을 보고 “여기 한 인간이 있구나”(Voila un hommes)라고 경탄했던 비슷한 숭배의 감정을 김주석과의 개인적 만남에서 얻었노라고 자랑했다(송두율, 「역사는 끝났는가」, p.230). 송씨의 글에서 “김주석의 탁월한 지도력”을 감탄하는 바와 같이 김일성은 그의 카리스마이다. 인민기아등김일성체제의 대실패에는 그는 아랑곳하지않느다. 그는 주체사상이나 주체철학의 원리를 주로 황장엽 선생의 집필로 아들 김정일이 주도해 만들고 김일성은 학식이 없어 ML주의 사상에 대해 무식했다는 것을 송씨는 모르는 것 같다. 송씨는 막스 베버의 카리스마 개념까지 끊어다가 김일성을 카리스마적 영도자로 치켜세우는데 1970년부터 북한 통치의 실권을 아들 김정일이 장악하고 송씨가 만났던 1991년의 김일성은 이미 실권 없는 명예회장격으로 손님접대나 하는 간판격이였음을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송씨의 북한 “내재적 접근”은 결국 북한의 형식적 “수령” 김일성과의 면담에 기초해서 그 마음을 들여다보는 김일성 독심술같기도 하다. 별로 주체철학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김일성의 마음에서 주체철학의 독심술도 말이 안 된다. 3. 동독의 해체 후에 폐물화된 “내재적 접근”을 북한에 적용 송씨는 그의 “내재적 접근”이 자기의 독창이 아니라 서독의 동독연구자 루츠(Ludz) 등의 방법이라고 밝혔다. 그의 “내재적 사회주의 분석방법”은 예를 들어 동독연구가 루츠(P. C. Ludz), 바이머(K. V. Beyme) 그리고 송씨 자신에 의한 소련과 중국 사회주의 연구에 적용되었다고 했다. 여기서 그는 철학이 아닌 사회학에 속했음을 자인한다. 그런데 루츠일파는 사회학적 연구로 동독당국의 허가를 얻어 주민인터뷰, 필드워크 통계 등 “내재적” 사회조사를 했다. 소위 “내재적 접근법”은 동독이나 북한에 들어가 내부적으로 현지 사회 주민에 접근하여 사회조사를 하는 방법이다. 원래 “내재적 접근”은 통치가의 사상해설이 아닌 것이다. 송씨의 북한연구에는 북한에 들어가 주민들과의 인터뷰, 현장조사, 통계작성 등 사회조사를 한 바 없다는 점에서 전혀 북한내부에서 대한 “내재적 접근”이 아니었다. 그는 다만 김일성이나 김정일, 그리고 황장엽 선생과 “접견”적으로 접근했고 주로 북한의 통치도그마인 주체사상 교양도서나 신년사설 등 당·정문헌을 받아다가 남한전파의 주체사상의 전도사 노릇밖에 한 것이 없다. 여기서 그와 루츠파의 “내재적 접근”과 관계되는 문제로서 우선 루츠는 동독 지역연구를 하다가 1979년 9월 2일 변사체로 발견되었는데 통일 후 동독 슈타지의 비밀문서를 압수한 속에 루츠와 동독 슈타지와의 연관이 있다는 혐의가 제기되었다. 다음 루츠의 동독 “내재적 접근”은 1980년말 동부독일의 “국가파산”과 자유시민혁명으로 그 허구가 드러났다. 이 폐기처분된 “내재적 접근”으로 위장된 북한관을 송씨는 1990년대에 남한에 전파한 행위에 대해 그의 동조자들이 그의 소위 “학자적 양심”을 내세울 수 있는가. 이런 “내재적 접근”이 북한과 같이 시민사회가 없고 당지령의 “조직”, 선군(先軍)의 군대조직인 병영국가에서 어떻게 가능한가. “내재적 접근”이 사회학적 조사가 아닌 그 체제의 정치이념으로 접근하는 것이라면 나치스 통치를 히틀러의 “나의 투쟁”으로 접근하는 방법과 다를 바 없는 사이비학문이다. 송씨는 평생 그의 스승 하버마스를 기만하고 욕되게 해온 빗나간 제자이다. 하버마스는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한 바 있으나 1960년대 독일의 과격학생운동에 대해 크게 실망하여 이를 “좌파파시즘”이라고 비판했다. 하버마스는 1981년 “공공성(Offentlichkeit)의 구조전환”에서 “공공적 공간”은 시민들의 자유로운 대화·토론·비판으로 “강제없는 합의”가 가능한 열린사회를 이상으로 제시했다. 그런데 자유언론도 중앙권력에 대한 비판도 할 수 없는, 공공성이 일식된 북한체제의 대변자가 된 송씨가 과연 하버마스의 제자인가. 송씨는 10수차 북한에 가서 거기에 시민사회도 없고 자유언론도 공공성의 열린 공간도 없다는 것을 못 보았다면 김부자만 우러러보는 “친북편향인”에 불과했단 말인가. 4. 송씨는 북한 “주체사상”의 대남 선전선동일꾼 송씨의 북한 “내재적 접근”은 북한의 주체사상으로 북한을 보라는 것인데 사회학자로서 세계사회주의 이데올로기 중에서도 가장 조악한 교조에 대해 비판 없이 찬양만 하고 단 한마디도 문제점이나 비판을 하지 않았다. 남한에서 발표된 그의 책은 주로 북한주체사상을 서유럽의 유명석학들의 이름을 빌려 미화했을 뿐이다. 그는 북한의 “인간중심”의 또는 “민족중심”의 “주체”적 사회주의 이념이 독일에서 발생한 “민족 볼세비즘”(Nationalbolschewismus)에 가깝다는 인상을 갖게끔 한다고 했다. 이는 “국가사회주의”를 내건 나치스 파시즘에 가깝다는 것을 착각해서 잘못 미화한 것 같다. 그러면 그런 “민족 볼세비즘”의 공산주의로 통일하자는 것인가. 우선 그는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에서 인간의 본질적 특성으로 “자주성, 창조성, 그리고 의식성”은 김정일의 “주체사상에 대하여”의 인간정의(定義)를 문자 그대로 옮겨 놓았다. 그가 철학·사회학적 지식이 있다면 인간의 정의에서 1966년 북한의 반소 자주선언의 자주성에서 온 “자주성”이란 정치구호적 표현에 대해서도 그것이 마치 철학적 인간정의인 듯이 착각될만큼 둔감한가. 그는 인간의 자주성은 개인의 자주성 등의 인권을 뜻하지 않고 “집단적 자주성”으로 “집단적 자아”라고까지 나치스적 개념을 빌려다가 내놓았다. 그는 “나”, 개인적 자아, 개인적인 시민적 자유는 외면하고 “북에서 말하는 자주의 중심은 “집단적 자아” 즉 민족과 그 역사이다”라고 민족주의적 해석을 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민족주의”는 브르조아 민족주의라 해서 공식적으로 민족주의를 내세운 바가 전혀 없다. 북한의 “주체”는 개인적 시민적 자유권도 아니고 민족주체도 아닌 김부자 이데올로기에 충성하는 “집단적 주체”요, 따라서 1인 수령 주체이다. 송씨는 인간의 “자주성”이 “의식성” 즉 사상의식으로서 김일성주의 이데올로기로 순치되고 무장된 인간민이 “사람”이라는 북한테제를 오해하고 왜곡하고 있다. 그는 북한의 “인간중심의 세계관”에서 인간의 “의식성”은 수령에 대한 충성과 대를 이어 충성하는 사상감정을 가져야 “사람”이라는 주체철학의 공식을 왜곡하고 있다. 송씨는 주체철학의 기본범주에 “민족”이 결탁(缺落)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북한의 지도체계의 기본은 수령과 당과 대중이 3개1체 관계인데 그 철학적 체계에는 “민족”이 들어갈 자리가 없는 것이다. 2001년 8.15의 통일현장탑 준공식 식사에서 “김일성·김정일 민족”을 명시했다. 1970년대 동독과 같이 북한도 대외적으로 “두개의 민족”론을 제창하고 있다. 그는 1990년대에 제도통일을 반대하면서 우리민족을 “김일성 민족”과 남한의 비김부자 민족으로 2분하는 것도 간파하지 못한 것 같다. 송씨가 북한의 주체사상을 북한지도부의 공식 교조대로 해설하려면 주체철학에는 마르크스주의의 혼이라는 “변증법”장이 삭제되어 있다는 것도 몰랐다면 주체사상 중심의 내재적 접근에는 큰 결점이 드러난 것이 된다. 필자는 황장엽 선생에게 주체철학에는 왜 “변증법”장이 없느냐고 물었다. 이에 황선생은 자신이 맑스주의 철학연구자로서 주체철학의 집필에서 변증법의 3가지 법칙까지 충분히 써넣었으나 철학에 무식한 김정일이 빨간 연필로 변증법 부분을 삭제했다고 알려주었다. 황선생은 한국에 와서 그의 “인간중심 철학” 시리즈에 변증법을 복원시켰다. 송씨도 서울에서 간행된 황장엽 지음 「맑스주의와 인간중심철학」Ⅲ(시대정신)의 “변증법 부분”이라도 구해 읽기를 권해둔다. 송씨의 북한 주체철학 해설부분을 읽어보았으나 역시 변증법이 없는 맑스주의의 북한교조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역시 송씨는 아예 비판적 접근은 기피한 북노당 사상 선동일꾼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이다. 주체철학 속에 변증법의 “부정의 부정”의 법칙을 넣는다면 북한에서는 김부자 독재의 부정에 의해서만이 갱생의 길이 열린다는 북한 “변증법적 접근법”의 길이 열린다. 1990년대 북한의 “고난의 행군”기에 대한 송씨의 글은 참혹한 식량난, 경제파탄 속에서 도그체제가 붕괴되지 않았다고 김정일 통치력을 찬양했다. 그의 글 “고난의 행군, 내재적 읽기”는 그 고난이 “강성대국”을 물질적으로 뒷받침하는 경제건설이라고 대변했다. 그는 북한의 참상에 대해 로동신문의 기사의 “달리던 기차도 드문히 멎어섰다”는 기사만 인용하고 그런 에너지난, 교통난에 대해 그나름의 비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북한의 공식발표이외의 접근은 안한다. 특히 그의 “수령의 영도”론은 일인독재의 찬양인데 진정한 사회주의자라면 당의 당수는 없고 “서기”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스탈린 독재자만이 “수령”을 자칭했다. 여기서도 송씨는 북한독재옹호의 “칼·슈미트”가 되고 있다. 송씨의 “경계인”적 통일론은 “주체사상의 내재적 검토는 남북통일을 위한 새로운 발상의 전환에 도움이 된다”는 주체사상에 기초한 통일론이다. 결국 그 자신이 북한의 대남공작 방침인 “연공(聯共) 연북통일”의 나팔수임을 노출한 것이 된다. “주체농법”이 북한인민을 아사시켰는데 “주체”의 전염병이 남한에까지 번지면 우리민족은 공멸한다는 것을 송씨가 깨달아야 할 것이다. 송씨는 까놓고 말해서 통일문제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못가지고 있다. 그는 북한이 2001년 8.15에 기념탑까지 만든 “조국통일 3대 헌장”이 6.15 공동선언과 연결되는 맥이 있다고 했다. 이 북한이 만든 3대 헌장에는 남북한간에 합의된 7.4공동성명, 1991년 남북합의서, 6.15공동선언의 셋이 모두 빠져 있다. 한국측의 문제제기에 대해 북한측은 그 탑의 둘레가 61.5m라고 해서 궁색한 변명을 했다. 역시 송씨는 경계인은 아니고 가감없는 북한 대변인이다. 그는 대한민국에 대한 “내재적 접근”은 어떻게도 그토록 인색한지, 신흥공업국의 아시아의 네마리 용이된 한국의 경제번영과 민주화에 대해서는 보는 눈이 없는 대한민국부정적인 사고방식으로 깊이 병들어 있다. 황장엽선생은 서울에 와서 일주일후 한국이 상상을 초월하는 대단한 발전이라고 북한당간부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경탄을 금치 못했다. 이와 아주 대조적으로 송씨는 서울의 고통난이 역시 교통지옥이다란 한마디 뿐이었다. 역시 그의 “내재적 접근”은 김부자를 접견하여 그 면상만 바라보며 윙크하는 못된 버릇을 고치지 못하는 “김부자 숭배”의 광신자의 눈일 뿐이다. 2001년 김정일의 러시아 방문때 라남이북의 탄광에서 탄부들의 식량달라는 소요가 일어나 이에 대한 대응으로 “라남의 봉화”가 제기되었다. 송씨는 “라남의 봉화”로 북한경제가 갱생한다고 썼으니 그는 역시 북한내부의 민생고에 대한 내재적 접근에는 까막눈이다. 과거 북한에 그런 인민기만적 봉화가 얼마나 많이 올랐는가. 올해 2월에 김정일마저도 북한인민의 민생고를 해결못해 잠을 자지 못한다는 “인생고백”을 했다고 한다. 송씨는 탈북자, 식량난, 민생고, 인권탄압 속의 북한인민에 대한 따스한 연민의 정마저 매말라 버린 무사상, 무감정의 냉혈적인 북한당 간부형이 아닌가. 인간의 얼굴을 한 좌파로라도 각성하는 자기반성이 앞서야 할 것이다. 신일철 (고려대 철학과 명예교수 / 시민회의 고문) 출처 - 자유공론 2003년 12월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