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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권형 대통령제' 해볼만 - 김석준
2003-11-18
'분권형 대통령제' 해볼만 야당이 내년 초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논의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대통령제, 내각제, 분권형 대통령제 등 각 제도는 나름대로 장·단점을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제도 자체의 우열을 논하는 것은 의미가 작다. 우리나라의 정치현실에 어느 것이 더 적실성이 높은지를 따져 명분을 삼을 뿐이다. 그동안 역대 대통령들이 비극으로 끝나고 ‘제왕적 대통령’의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하자 권력을 분산해 대통령은 외교·국방의 외치를 맡고, 총리가 경제·복지·행정의 내치를 맡자는 것이 분권형 대통령제이다. 이것을 민주당과 자민련에서 제기할 때만 하더라도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았으나 한나라당 중진들이 동참하면서 개헌 논의가 가시권에 들어왔다. 한나라당이 아직 국민의 낮은 지지를 이유로 공식적으로는 논의를 삼가고 있지만 물밑에서는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듯하다. 여야 각 정파의 명분과 실리 계산이 분주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측근비리와 관련해 재신임을 묻겠다고 나설 때만 하더라도 정치권은 아무런 준비 없이 당하는 듯했다. 노 대통령이 명분을 몇 차례 바꿈에 따라 여야 모두 덩달아 입장을 바꾸게 되었다. 수세에 몰렸던 대통령이 정국 주도권을 되찾고 야권이 도리어 수세에 몰리는 역전현상이 벌어졌다. 재신임이라는 ‘깜짝쇼’는 야권을 분열시키고 혼란에 빠지게 한 반면 대통령과 여당은 ‘대성공’을 거두는 듯했다. 측근 비리와는 무관한 대선자금 수사가 본 궤도에 오르면서 야당 후보의 대선자금이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 후보 본인과 당 대표가 국민에게 머리 숙여 사과하고 획기적인 정치개혁 방안을 제시했다. 지구당 폐지, 정치자금 투명화, 선거완전공영제, 전국구 의원 전원 교체 및 정치신인 대거 영입 등의 내용은 파장이 큰 것들이다. 그만큼 야권이 실리를 양보했다. 그러다가 야당이 원기를 회복하고 구 여권 내부 균열과 폭로가 진행되어 노 대통령의 대선자금과 측근비리가 부각되면서 정국은 재역전이 되는 듯하다. 특히 노 대통령 측근 비리 관련 특검법이 야권 3당의 공조로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통과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노 대통령이 또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비치지만 이번에는 빛바랜 무기일 뿐이다. 이제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 가능성은 열려 있다. ‘여소야대’ 국회와 행정부가 함께 사는 길일 수 있다. 이 때문에 노 대통령 본인이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고, 당선 이후에도 조건부로 책임총리제를 약속한 바 있다. 민주당 박상천 대표와 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주도하고 한나라당 중진들이 적극 주장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쉽게 합의할 수 있는 상황이다. 국민의 지지도 정치권의 태도에 따라 변할 수 있다. 이제 노 대통령과 야권이 모두 정략에서 벗어나자. 나만이 국가이익을 대표한다는 오만도 버리자. 내가 하면 ‘구국적 결단’이고 남이 하면 ‘정략’이라는 편견을 벗자. 서로 입장을 달리하여 상대의 주장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자. 그것이 새 정치의 본 모습이다. 재신임과 정치자금 수사로 시작된 정치개혁의 역사적인 흐름이 진정한 새 정치를 열도록 모두 겸허히 양보하고 협력해야 한다. 87년 민주화 이후의 세월이 국가발전과 국민복지에 긍정적이었다면 현행 대통령제를 고수하자. 그렇지 않고 부정적인 측면이 더 많았다면 여건이 미숙하지만 한번 사회협약에 의한 책임총리제나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 논의를 시도해봄 직도 하다. 대통령이 모든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왕적 대통령’의 역할이 컸음은 인정하자. ‘잃어버린 10년’을 넘어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가자. 국민들이 정치개혁의 주인으로 나서서 열린 마음으로 새 정치 논의를 이끌 때이다. 김석준 (이화여대 행정학 교수/ 시민회의 공동대표) 출처 - 세계일보 2003. 11. 18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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