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 > 바른사회 칼럼
한국의 자유주의, 새로운 활로의 개척 - 신일철
2003-10-27
한국의 자유주의, 새로운 활로의 개척 - 대한민국 55년에 대한 자유주의적 역사관을 재정립해야 한다 - 1. 한국의 시장경제·시민사회적 성과가 자유주의의 기반이다. 인간의 “자유”는 온갖 속박, 강제, 구속 등에서 벗어나 자기의 삶을 살고 자기의 자율적 선택과 결정으로 살려는 자아의 자각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이런 인간다움 인간생활의 기본조건인 자유가 개인의 기본권인 인권으로 인식된 것은 근대시민사회의 소산이다. 고대에나 중세 전통사회에도 개인적 자유의 싹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서구의 자유주의 사상, 특히 개화기에 일본, 중국, 한국에 루소의 ｢민약론｣과 J. S 밀의 ｢자유론｣이 소개되기 이전에는 자유주의적 자유의 개념은 없었다. J. S. 밀의 ｢자유론｣은 일본에서 처음 번역할 때 Liberty를 “자유”(自由)라고 번역했으나 청나라 말에 영국에 유학하고 돌아온 엄복(嚴復)은 그 자유론의 “자유”(自由)란 일어번역이 마음에 들지 않아 “군기권계론(群己權界論)”이라 의역했다. 이 책 제목은 군집(群集)과 개인의 권한의 경계의 뜻이다. “군”은 무리 즉 사회와 집단의 뜻이오 기(己)는 개인이다. 동아시아의 세계관은 “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유교이념에 나타난 바와 같이 “身”-“家”-“國”-“天下”의 계층적 질서 속에서 “家”가 기본이고 자아도 사회도 국가의 개념도 없었다. 그런 전통적 중화주의의 개념의 배경으로 인해 한국의 자유주의도 집단주의 정서에서 자기정체성을 세우는데 많은 고난을 겪었다. 개화기의 우리민족이 근대국가의 형성기에 청말의 변법자강파 양계초의 영향으로 먼저 “家”와 “國”과는 다른 서구적 “국가”의 관념이 도입되고 독립협회운동과 개화기 서구사상의 수용으로 왕권에 대한 “민권”의 관념이 싹트게 되었다. 19세기말 동학도들의 보은집회, 교조신원의 집단적 상소를 보고 조정의 일각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현상에 대해 서양의 “民會”와 같다고 보기도 했다. 안창호와 같은 연설군들이 군중앞에 나서서 웅변을 하기 시작한 “민회”가 “만민공동회”였다. 한국근대사의 여명기에 제왕권에 대한 “민권”의 각성이 시작되어 이를 시민사회의 초기 모습으로 볼 수 있겠다. 1907년의 “신민회”의 “신민”(新民)이나 1906년의 대한자강회가 “자강술”을 내세워 국제적인 권력질서에서 민족국가간의 경쟁관계를 진화론적 생존경쟁으로 인식했으나 그 “경쟁”은 국가단위의 약육강식의 경쟁이오 나라안의 시민사회내적 경쟁이나 경쟁시장 시스템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러나 왕권과 같은 중앙권력에 대한 “민권”의 싹이 튼 것이다. 20세기초부터 한국의 자유민권의 싹은 생겼으나 일제강점으로 다시 자생적 자유주의 사상은 억압되고 한일 독립운동의 근대 민족주의속에서 민족주권을 앞세우게 되어 우리민족 사회내의 자유민권의 자유주의는 뒷전으로 밀려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제하의 한국의 사상계는 대체로 우익의 민족주의, 좌익의 사회주의의 단순 2분법에서 샌드위치되어 자유주의의 담론이 자기의 마땅한 공간을 확보하기 힘들었다. 1920, 30년대 한국의 독립운동과 민족주의가 그 민족의 공적을 설정할 때 반제국주의, 항일이데올로기가 주종이었다. 왕정복고의 복벽주의와는 다른 새시대의 한국의 이념좌표는 시민적 민주주의, 특히 자유민권의 자유주의의 “자유”였다. 그러나 1926년 단재 신채호도 그의 “조선혁명선언”에서 애너키즘적인 “반강권”의 자유연합사회의 비젼을 내놓았다. 볼세비르적 강권사회와는 다른 자유시민사회를 지향하기 위해 단재는 국제주의적 애너키즘의 담론으로 편협한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민중의 반강권적 애너키즘적 자유주의의 구상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단재는 개인의 자유권보다 민족주권을 앞세우는 역시 민족주의자였다. 우리 한민족이 근대적 시민사회의 자유사상을 모색하는데는 그 자생적 성장의 여건이 얼마나 험난하고 가혹했는가를 말해준다. 근대적 자유주의의 가치관과 제도는 주로 절대왕권 등 중앙권력의 억압에 대한 시민적 저항의 산물인 점에서 일제하에 자유주의 운동을 민족주의가 대행하는 동안에 자유민권의 자유사상이 그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하기 힘들었다. 자유주의는 이데올로기이기 이전에 시민사회적 자생적 질서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러나 20세기초 개화기에 싹튼 자유주의 이념은 3.1독립운동에서 “제국”을 “민국”으로, 군왕제를 탈피한 민주공화제의 잠재적 기반을 만들고 1920년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헌장에서 자유주의적 이념과 제도가 명문화되었다. 해방후 한국의 사상풍토에서 “민주주의”의 추상적 이념이 정립되었으나 그 기반은 지난 200여년간 인류문명사회가 이룩한 자유민권의 이념과 제도틀로서 권력분립, 입헌주의, “법의 지배” 의회민주주의, 복수정당제, 자유시장경제, 자유언론 등의 자유주의적 전통이었다. 서유럽이나 미국정치에서 “리버럴”(liberal)이나 리버럴리즘이 “콘서버티브(consevertine)”와의 대개념으로 현신과 보수의 구분법이 유행하게 되었다. 현대의 리버럴리즘도 역시 아무리 “리버럴”해도 시민사회적 자유주의의 전통적 토대를 벗어나지는 않는다. “리버럴”이 보수주의와의 대결에서 극좌파로 밀려 사회주의의 범주에 들어가면 어느덧 평등주의적 개혁을 위해서는 국가권력의 비대화를 용인하게 되고 “자유사회의 적”이 되는 것이 말하자면 “진보주의의 변증법”이다. 구사회·공산주의의 진보주의는 어느 덧 “예종에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을 하이예크는 이미 1940년에 간파했다.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적 시민질서의 토대위에 서야 한다. 민주주의가 평화적 정권교체의 정치제도로는 위대한 유산이지만 대중민주주의 시대에 와서 주로 다수결주의의 선거로 왜소화되고 득표를 위해 집단이기주의와 쉽게 결탁함으로서 전체주의적 패시즘을 초래했다. 독일에서 히틀러의 나치스집권은 대중선동의 게르만민족주의와 다수의 대중적 폭력이 그 야만의 길을 열어주었다. 이 뼈져린 역사적 경험에서 하이예크는 민주주의보다 자유주의적 시민사회의 자유질서가 토대요 우선적 가치임을 강파했다. 20세기의 좌우파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적 대안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주의임을 누누히 밝혔다. 따라서 “리버럴 데모크라시”는 자유주의없는 미국주의는 “예종의 길”로 타락함을 경고한 것이 하이예크의 탁견이다. 1990년 구세기말에 구사회주의 70년, 50년간의 역사적 실험이 대실패로 판명되었을 때 전세계적인 이데올로기의 종언과 더불어 국가주의적 “사회”관이 시민사회 중심의 자유주의로의 뒤늦은 발상전환이 감행되는 역사적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 한국의 사회사상과 교육은 이 엄청난 세계사적인 사건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실감있게 이론적으로 설명해 주지 못했다. “인류사회의 진보”를 표방한 “큰 이야기”(리오달)인 구사회주의의 결정적 실패의 근본원인이 200년간의 인류가 이룩한 자유주의적 유산을 부정한 다음, “허공에 유토피아”를 그리려했던 설계주의적 이성의 교만이 저지른 과오였음을 우리 젊은세대들에게 제대로 인식시키지 못했다. 지난 20세기의 갖가지 이데올로기의 난립 속에서 민족주의, 맑스·레닌주의, 사회주의, 파시즘, 모택동주의 등의 각종 “주의”의 대청소와 청산으로 21세기 글러벌세계화의 시민정치의 시대, 신시장의 자유주의질서의 부흥을 널리 알려줄 수 있는 사상적 혼란의 정리작업이 불철저하고 미진했던 것이다. 냉정체제 속에서 주로 1960년대를 전후해서 프랑스의 5월 학생반란, 미국의 과격주의 학생반항, 독일의 과격주의 학생반항 등에서 반문명적 과격주의가 “신좌익” 등의 운동권을 이룩했다. 마오저뚱 치하 중국의 홍위병 난동도 중국의 시민사회의 싹을 퇴보시켰다. 뒤늦게 1970년대의 한국의 유신독재에 대한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서도 군사주의 정치에 대한 반작용으로 좌파적 도그마가 일부 친북 정서적인 “진보주의”로 민주화운동의 궤도를 이탈했다. 여기서 다시 “진보의 변증법”은 북한의 김부자 독재가 민주화의 대안인 듯이 착각하는 이데올로기적 도착이 생긴 것이다. 명백히 “반독재 민주화”의 이념적 좌표는 자유민주주의이어야 하며 자유주의적 가치의 신장이어야 했다. 그런데 일부 좌파운동권은 시장적 자유주의를 부정한 스탈린주의의 아류인 북한체제를 유토피아적 대안으로 보려는 치명적 오류를 범하게 된 것이다. 이는 탈이데올로기 속에서 역사지각으로 생긴 한국적 후진성이기도 하다. 그런 학생 반란기에 서독에서 과격학생운동에 동조했던 프랑크프르트학파의 제2세대 하버마스도 시민적 자유질서를 파괴하려는 과격주의 폭력에 대해 이를 “좌익파시즘”이라고 비판하기에 이르렀다. 하버마스는 1981년 “공공성의 구조전환”에서 브르조아적 시민사회가 만든 “공공성”, 자유로운 대화·토론·비판의 공론공간에 열려진 “자유사회”의 전통을 재긍정하게 되었다. 특히 미국에 망명한 유태계 여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레닌주의적 의식화가 “빠브로프의 개”와 같이 전인민을 전체주의의 조건반사적 로버트로 만든다고 비판했다. 아렌트는 구사회주의의 이데올로기 정치가 공공권(公共圈)을 질식시켜 “정치의 죽음”을 가져왔다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구사회주의와 같이 정치를 계급주의적 적대관계로 규정함으로서 정치가 죽음에 이르는 사투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적대적 사투를 무해화(無害化)하기 위해서는 공공권의 갱생으로 정치를 스포츠게임 모델의 “애고널리티”(agonality)로 승화시킬 것을 제안했다. 오늘의 한국의 “보혁” 이념논쟁에서 한국의 자유주의는 어디에 속하느냐의 물음 앞에 다시 섰다. 진정한 의미의 자유주의는 닫쳐진 이데올로기가 아니며 이념투쟁을 위해 자유주의를 이데올로기화 할 때 오히려 자기왜소화를 결과하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 하이예크는 합리주의의 거부, 자생적 질서의 사회에서의 자연선택적인 “룰”의 진화를 주장한 점에서 진화적 자유주의이다. 그는 관습과 전통이 문명을 창조했고 그것과의 단절은 인간을 부도덕하게 만들고 이성적 교만을 저지른다고 지적한 점에서 진보와 보수의 2분법으로 분류할 수 없게 한다. 특히 그는 권위와 권력을 절대시하는 보수주의자는 아니다. 한국의 자유주의는 이미 지난 100년 특히 8.15해방후의 건국 도상에서 대한민국의 가치관과 제도, 실천속에서 그 최량의 성취물이 자연선택되고 축적된 시민사회, 자유시장질서의 전통의 대명사이다. 한국 현대사에 대한 진보주의의 편파적 역사왜곡은 특히 대한민국 55년의 반세기를 정치권력 중심의 정권사 측면에 초점을 고정시켜 대한민국의 부정을 획책하는 “제2건국”의 발상에서 노정된 바와 같이 마치 우리한국 사회 55년은 보수할 가치가 아무것도 없다는 담론으로 과거 허무주의의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하이예크가 비판하는 좌파적 설계주의의 교만은 한국의 시민사회의 시민생활과 시장경제, 비판언론이 이룩한 자생적질서의 피땀어린 유산을 전면 무시하려는 진보패권의 오만을 꾸짖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무로부터의 진보”의 환상은 그 인재선택이나 경제개혁에서 대단히 위험하고 소모적인 애머추어리즘으로 한국경제의 또 하나의 “한국병”을 만들고 있다고 보여진다. 소위 출신성분에 의한 좌파적인 인간분류, 편가르기는 국민통합을 저해하고 정치를 계급주의적 파벌분쟁으로 오도하게 된다. 오늘날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가 쌓아온 자유민권적 자유의 가치관은 그 재발견이 시급해졌다. 이미 역사의 심판으로 대실패가 드러난 사회주의적인 중앙계획, 중앙지령의 좌파패권이 오히려 좌파보수주의가 되고 대한민국의 자유사회적 질서가 한국의 진보·발전의 도약대임을 깨우치게 하는 사상적 계몽이 시급하게 되었다. 거듭된 시련과 곡절 속에서도 우리 한국이 꾸준히 추구하고 축적해온 자유주의적 시민사회의 유산은 앞으로도 우리 한국의 자유사회 발전의 토대로서 그 어떤 반자유세력 앞에서도 끝내 수호되어야 할 소중한 가치이다. 우리한국의 자유주의적 기본질서는 “노이라트의 배”의 비유와 같이 전면적으로 변혁할 수 있는 그 어떤 도크도 없고 다만 부분적 수정·보완을 거듭하면서 항해하는 배와 같이 우리 자유사회 질서의 전통 위에서 “미완의 프로젝트”를 꾸준히 보완하는 계속적인 노력이 있을 뿐이다. 한국자유주의의 새로운 활로는 “진보주의” 정서가 대안이 아니라 보다 성숙된 자유주의 시민질서의 윤리적 시민정신의 개발에 있다. 2. 한국사회의 성장, 발전은 “자유주의 패라다임”에 기초해야 한다. 지난 50년간의 냉전시대에 한국사회에는 “색깔논쟁”이란 유행어가 생겼다. 특히 6.25전쟁후 한국사회는 자유진영에 속한다고 자부하고 반정부, 반체제 세력에 대해 반공주의의 생각경으로 사상분류를 해왔다. 그것은 성숙한 자유주의적 가치관의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문민정치시대에 들어서면서 다시 지역감정과 “역색깔” 논쟁으로 좌파적 편가르기가 생겼다. 이는 국민통합의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국의 자유언론에 대한 좌파적 패권의 목조르기는 자유시민질서의 기저를 뒤흔드는 표퓰리즘 동원적 도전이기도 하다. 이런 좌우파의 두가지 색깔논쟁을 극복할 수 있는 “제3의 길”은 덩샤오핑의 실용주의에서 시사를 얻을 수 있다. 덩샤오핑은 1962년에 “先富論”과 “자유시장, 자유경영 등의 4자(自)”노선, 특히 “흑묘백묘론”을 제창했다. 흰고양이 검은고양이식 보혁논란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신중국적 역사경험의 깨우침이다. 이데올로기 색깔보다는 어느 것이 더 실용적 가치가 있고 어느 것이 경제적 번영의 길이냐의 보다 건강한 성공·실패의 판단이 앞서야 한다. 이미 세계사의 역사적 실험과 한국의 남북한간의 체제경쟁으로 구사회주의적 개혁모델은 실패했다. 자유시장 경제적 자유주의의 길이 “쥐를 잡는 고양”이라는 것이 명백해졌다.” 하이예크의 진화적 자유주의의 가장 큰 공헌은 자생적질서의 이론이다. 자생적 질서는 개인들의 자유로운 선택과 공정한 룰의 준수에서 자연선택의 진화가 일어난다. 이런 자유사회, 자유시장의 토대가 되는 질서는 중앙권력의 계획, 명령이 아니라 어느 룰이 “성공”이냐 그리고 어느 룰이 실패냐로 자연 선택된다. 덩샤오핑의 실용주의는 구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실패에 눈뜨고 자유기업제도의 성공의 룰을 택한 것이다. 하이예크는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면 좋으냐에 대한 지식은 중앙권력의 지령이 아니라 수많은 개인들에게 소유되어 있는 자유시민사회형 사회만이 보다 많은 정보를 만들고 활용할 수 있다는 시장시스템적 지식론에 기초하고 있었다. 이런 자유사회의 룰은 사회전체의 통제&midddot;관리가 아니라 다만 많은 개인들이 준수해야할 게임룰의 심판기능에 국한되어야 한다. 중앙권력의 명령일하에 움직이는 병영국가형 “조직” 만들기는 역(逆) 유토피아이다. 이렇게 사회관에서 일사불란한 지령의 “조직” 패라다임에 사로잡히면 자유민주주의와 “법의 지배”, 시장경제에서 개인주의적 자유를 무질서한 혼란이라고 느끼고 참다운 사회적 진보와 성숙이 이룩되는 수많은 사건과 사실들마저 거의 눈에 보이지 않게 된다. 신과학철학의 개척자 쿤(Kuhn)은 과학사의 연구에서 “패라다임” 개념을 내놓았다. 비근한 예로 천동설과 지동설은 서로 다른 패라다임이다. 이렇게 패라다임이 서로 다르면 같은 태양도 전혀 다르게 관찰된다. 천동설은 매일 아침해가 떴다 지는 엄연한 “관찰사실”을 내세워 지동설에의 패라다임 전환을 오랫동안 지연시켰다. 근대 시민사회의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 출현 이전에는 자생적 질서의 시장모델은 이해하기 힘들어 발상할 수 없었다. 쿤은 패라다임이 다르면 서로가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과 같다고 했다. 천동설의 통념이 굳어지면 그와 다른 세계관인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돈다는 지동설적 사실이 전혀 관찰되지 않는다. 쿤은 낡은 패라다임에서 새로운 패라다임에의 이론전환이 마치 종교적 개종과 같은 게슈탈트 전환의 발상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좌파의 집단주의적 패라다임은 근대사회 이전의 왕조적 권력지령의 공동체의 노스탈쟈에 바탕을 둔 점에서 전근대적이며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새 패라다임에 대한 거부감만 가진 일종의 종교적 신조에 가깝다. 구사회주의는 스탈린이나 마오져뚱, 북한에서 군대모델과 1인독재의 “대용종교”(代用宗敎)가 된 내원을 알 수 있다. 이미 20세기 후반에 와서는 구소련 등의 일당독재, 중앙계획, 중앙지령의 사회주의 패라다임이 실패한 것이 1980년대에는 판명되었으나 아직도 좌파 패라다임은 발상전환을 못하고 있는 대용종교현상을 우리 한국의 정치현실에서 보게 되었다. 쿤은 과학사 속에서 여러 가지 이론이 경쟁하다가 마침내 하나의 지배적인 패라다임이 과학자 공동체에서 수용되면 그것이 “정상과학”(normal science)이라고 불렸다. “정상과학”에서는 과학자들이 그 기본적 이론틀이나 세계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그 게임룰에 따라 연구를 진행하여 그 “정상과학”의 시기에 과학의 연구성과가 축적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시장적 자유질서도 근대사회의 패라다임이었다. 과학자들이 중구난방으로 기성 패라다임에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하게 된다면 이는 과학의 위기이다. 다시 새로운 패라다임이 정착될 때 까지는 과학의 연구는 중단되고 이론혼란의 공백기를 경과한다고 했다. 사회제도나 경제정책에도 이런 “정상사회제도”를 상정할 수 있고 이는 자유주의적 가치관과 제도의 큰 틀이다. 의회민주주의, 복수정당제, 법의 지배, 자유시장경제, 자유언론 등의 기본패라다임인 자유주의적 큰 틀에 대해서는 그것을 기본 합의의 패라다임으로 합의하고 우리공동체의 자명적 질서로 수용하는 기본조건이 요구된다. 이로 인해 자유주의적 시민사회의 가치관에 대해서는 구태여 그 이데올로기적 정당화가 필요하지 않은 점이 정상적인 자유사회 상태였다. 그러나 구사회주의는 이 자유질서의 대안으로 패라다임 전환을 하는데 실패했다. 한국사회의 특히 경제적 패라다임은 시장자유주의로 정착되었다. 여기서 “개혁”은 자유시장의 룰을 보다 더 공정하게 준수하는 “법의 지배”에서 그것을 준수하지 않는 것만을 시정하는 보다 시장적 원리의 철저한 관철과 성숙노력이 있을 뿐이다. 기성 자유시장 패라다임 그 자체의 체제전환의 변혁을 위한 대안은 실패로 끝나고 아직은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시장자유주의 질서는 사회를 복잡성과 상품가격 등의 예측 불가능성을 가진 캐타락시(catallacy)의 교환적 질서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점에서 사회구조 전체의 설계가 아니라 다만 정의로운 행위의 룰만을 준수하도록 하는 “법의 지배”로 뒷받침되어 있다. 하이예크적인 자유주의 패라다임은 “오르도”(ordo) 리버럴리즘의 “규칙”을 준수하는 경쟁게임으로 보는 발상이 가장 근본적 대전제이다. 하이예크의 진화적 자유주의가 그 토대로 발견한 자성적 질서의 “룰”은 데카르트적의 이성적 법칙과는 구별되는 흄(Hume)의 경험주의적인 자생적 형성물이다. 이성주의적 “진리” 담론은 허위와 대개념이지만 하이예크는 룰의 자연선택에서 그 기준은 “성공”이며 실패의 대개념임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비근한 예로 축구게임은 축구공을 발로만 차고 손으로 던져서는 안된다는 등의 룰로 되어있다. 미국의 미식축구는 사람이 발만이 아니라 손도 있고 손과 발을 다 쓸 수 있는 말하자면 “수족구”(手足球)의 새 룰을 만들었다. 그러나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세계에 통용되는 축구게임은 오히려 “족구”로 건재하고 있다. 우리는 축구는 보수요, 미식축구는 진보라고 “보혁” 색깔구분을 하지 않는다. 이처럼 시장자유주의는 진보·보수의 색깔구분이 무의미하게 하는 문명사회의 자생적 질서로서 글러벌 세계화에서도 지배적 패라다임이 되고 있음을 재확인하는 기본합의에서 오늘의 한국사회의 보혁색깔 논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탈냉전후 유럽 여러 나라의 중도좌파 정권들의 노선도 모두 시장자유주의로 궤도수정을 하고 있는 새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미 1980년대에는 영국에서 노동당 사회주의가 만연시킨 “영국병”을 치유한 대처주의, 구소련의 고르바쵸프의 “페레스트로이카”, 미국의 레이디노믹스가 신보수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동맹으로 성공을 거두어 시장자유주의의 전통이 재확인되었다. 최근에는 통일 독일의 사민당 집권의 게르하르트 슈레더 총리가 밑뚫어진 독에 물붓기식 동부독일 지역에 대한 경제지원과 세계최고 수준의 복지비용, 고임금으로 생긴 “독일병”을 고치기 위해 대담하게 사회적 시장경제의 분배적 사회정책의 종말을 선언했다(03. 9. 14). 과복지정책과 고임금의 중도좌파 정책도 막다른 골목에 이른 것이다. 2003년 신년에는 일본언론도 거품 꺼지기와 데프레션의 15년 허송세월의 만성적 경제불황을 “일본병” 또는 “Nipponensis”이라 이름하고 2년전의 아르헨티나의 경제파탄에 대해 미국의 경제학자 사뮤엘슨 교수는 “강성노조와 포퓰리즘”이 “알젠틴병”의 주된 징상이라고 진단했다. 1997년 한국의 IMF 금융위기에서 이미 정경유착과 부실기업, 정부의 과보호적 간섭주의가 일으킨 “한국병”에 대해 김대중 정권은 IMF 금융지원의 컨피셔널리로 수락한 “구조조정”, 기업합병 등의 경제개혁을 추진했는데 그 정책의 기조가 다름아닌 “신자유주의”였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개혁을 반자유주의적 진보정치 정서로 집행하는 표리부동과 경제적 난제를 남북관계의 햇볕정책으로 일괄 타결하려는 정치논리로 인해 자유주의적 정책의 운영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IMF 경제위기에서 탄생한 김대중 정권이 아니러니컬하게도 햇볕정책의 실패로 그 종말을 장식하게 되었다. 이 역시 반자유적 “진보” 정서가 가져온 업보이다. 오늘의 노무현 정부는 다시 진보주의정서로 정책적 애머추어리즘을 되풀이하면서 “안젠틴병”과 동병상린하는 강성노조와 표퓰리즘으로 경제적 불황의 늪에 빠져든 감이 없지 않다. 오늘의 참여정부는 다시 깊어진 “한국병” 중 특히 강성노조와, 포퓰리즘, 고임금, 저효율, 과복지의 병폐에 대해 그 치유를 위해서는 하이예크의 시장자유주의적 처방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하이예크는 자유주의적 경쟁질서에 대한 대단히 중대한 위협은 노조에 부여된 지나친 특권이라고 경고했다. 임금의 결정을 경쟁적 노동시장에서 배제한 결과로 생긴 실업은 정부를 뒤흔들고 마침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가격통제를 강행케 했던 전례를 상기시켜 주고 있다. 하이예크는 “만일 경쟁적 가격결정이 임금에 적용될 수 없게 된다면, 시장경제가 유지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Hayek, New Studies in Philosophly, Politics, Economics and the History of Ideas, 1978, p.146)고 깊은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더욱이 노조가 집단주의적인 형태로 “경영참가”까지 요구한다면 자유시장 질서는 무너질 위기에 처할 것이다. 임금, 인사결정권이 단체적 노조의 참가로 인해 교섭대상이 교섭주체로 둔갑하는 관계혼란에 빠지고 기업경영의 성패의 책임에 대한 리스크면제적인 노조의 경영참가는 대단히 불공정한 게임이 되어 버린다. 이는 새로운 대안도 없이 자유시장 패라다임을 뒤흔드는 “위기”이다. 날로 심각해지는 노동문제에서 자유주의적 기본질서와 “법의 지배”의 게임룰이 준수되지 않을 때 자유시장 경제의 기틀은 심대한 위협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이예크가 시장자유주의를 “자유방임”의 자본주의를 옹호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강조했다. 하이예크는 “자유방임”이나 “자본주의”가 모두 자유주의적 자유의 정신을 크게 오해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자유방임의 자본주의의 용어는 주로 자본가의 이익만을 옹호하는 허위의식의 이념이 되었기 때문에 자유주의에 대한 모략이다. ｢예종에의 길｣에서 하이예크는 “아마도 몇몇 자유주의자들이 이런 종류의 조야한 룰, 특히 자유방임의 원리를 바보스럽게 강조한 것만큼 자유주의의 주장을 손상시킨 것이 없을 것이다.”(The Rord to Serfdom, 1944, p.4)라고 개탄했다. 법의 지배하의 자유주의는 “자유방임”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하이예크는 자생적 질서 규칙의 준수와 “법의 지배”의 “법”은 어떤 중앙권력이나 자본가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한 불공정한 “명령”이 아니라고 분명히 규정했다. 참다운 자유주의의 게임룰인 “법”은 자생적 질서의 기초에 기반을 두고 제정법의 법규범보다는 오히려 도덕, 윤리의 의미까지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건전한 자유주의 질서의 수호를 위해서는 탐욕적 치부욕을 “자유방임”으로 정당화해주어서는 안되며 “천민적 자본주의”(막스·베버)적 잔재를 청산하는 거듭나는 자기정체성의 재발견이 요청된다. 자유주의적 “자유”가 특정 정치·경제적 집단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한 자유가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자유는 공정한 룰이 있는 게임이고 하이예크는 주로 지식론적으로 “발견의 절차”로서 자유경쟁을 정당화하는데 중점을 둔 지식론적 자유주의였다. 자유주의적 자유는 개인의 이기주의나 완전한 이타주의에 대해서도 보다 깊은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개인의 자유도 어떤 이기심, 이기주의적 의미로 해석되어서는 안된다. 자유는 윤리적 의미, 즉 “그것이 대부분의 도덕적 가치의 원천이고 또한 그 조건이다”라고 하이예크는 거듭 강조했다. 여기서 우리는 하이예크의 “법의 지배”하의 자유의 윤리가 칸트의 도덕적 인격의 자율성에 기초한 자유임을 재확인할 수 있다. 3. “형무소국가” 북한과 한국의 자유질서의 체제차이를 진보·보수의 구획기준으로 재단해서는 안된다. 오늘날 한국의 자유주의적 시장질서는 뜻하지 아니한 보수·진보의 냉전적 허위의식에 말려들어 자기의 정당한 입지를 재확인하지 못하고 있다는 일종의 정체성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이미 1990년을 기해 구사회주의의 해체는 자유시장경제의 승리를 확신시켜 주었고 좌파의 구체제 수구주의는 이미 진보의 담론을 내세울 수 있는 자격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탈냉전후 한국사회에서는 주로 대북 햇볕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침북=진보와 반북=보수의 시대각오적 2분법이 나타나 일부 진보주의 패권은 자당자파이외의 모든 대한민국 수호세력을 싸잡아 “보수”로 몰아부치는 표퓰리즘으로 기왕의 지역감정보다 더 골이 깊은 이데올로기 정치를 재연시킨 감이 없지 않다. 객관적으로 남북한의 두 체제간의 경쟁에서 우리 한국의 자유주의적 시장경제는 북한의 군사독재를 압도하는 자유주의적 질서의 성공이 분명해졌다. 더욱이 북한의 “반근대화”의 군사주의에대해 한국의 “근대화” 경제번영은 “아시아의 4종”으로 아시아 후발개발국들의 비젼이 되었다. 일예로 말레이시아식 “East Look” 정책은 주로 한국의 개발독재형 근대화의 모범을 따르자는 구호였다. 신중국을 비롯하여 후발개발국의 경제성장모델이었던 한국의 근대화 성공은 체제실패의 북한을 위해서도 갱생을 위한 새모델이 될 수 있다. 김대중정권의 대북 햇볕정책도 북한의 개혁개방 유도를 표방한 점에서 시장적 자유주의의 북한전파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자유주의는 개발독재하에 경제적 번영을 일으킨 기본적인 원동력이 시민사회적 자유주의 시장시스템이었음을 인식·계몽하기를 게을리했다. 특히 통일문제에 대해서도 한국의 자유주의 세력은 남북한의 평화적 재통일은 북한의 중앙계획·지령주의를 자유시장 경제로 유도하는 “민족통일 시장”의 선행임을 내세워야 했을 것이다. 동서독 통일의 실마리가 화폐통일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북한체제의 근간인 계획경제가 붕괴되고 “고난의 강행군” 기간에 척박한 북한경제 풍토에서 자생적으로 생긴 “장마당 자본주의”의 새싹에 대해 한국의 자유주의자들을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동독 등 동유럽의 자유시민혁명은 북한땅에서 일어날 수 없었으나 그동안 “고난의 행군”기를 그나마 간신히 연명하게 한 것은 자생적 암시장의 역할이었다. 남북한간의 쟁점이 된 “민족”의 담론에 대해서도 민족사적 정통성과 3.1독립운동 이래의 근대민족주의의 정통적 계승자인 대한민국의 헌법의 의미를 능동적으로 내세우지 못했다. 북한의 체제실패는 55년만에 되돌아볼 때 보수할 것은 기아와 경제파탄 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은 민주화와 경제번영에서 보수할 것이 북한보다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한국의 보수주의는 마치 한국 55년에 보수할 가치가 없는 듯이 착각했다. 그 주된 착각의 원인은 근대화의 경제번영이 주로 정치적 독재의 산물이라 믿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한국의 시민사회가 이룩한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의 위력을 깊이있게 깨닫지 못한 때문이었다. 한때 여론조사에서는 “주관적 중산층”으로 자임하는 인구가 7,80%에 이른 적이 있다. 이 산업화에 의한 신중산층이 반독재 민주화의 저력이었다. 우리 한국에서는 “자유주의”는 맑스·레닌주의가 그의 계급주의적으로 격하시켰던 좌파적 통념인 “자본가의 경제적 자유”의 옹호 이데올로기라는 허구개념의 포로가 되어 자유주의적 시민적 가치관의 진보적 성격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상적 빈곤에 빠져 있었다. 구사회주의의 좌파적 오류는 권력분산, 의회민주주의, 복수정당제, “법의 지배”, 자유시장 시스템, 자유언론등의 자유주의적 가치와 제도의 기반위에서 진보적 이상을 실현하려고 하지 않고 자유주의적 자유를 질식시키고 시민사회적 전통을 압살한데서 그 참담한 실패가 비롯된 것이다. 자유주의 전통의 기본가치인 개인의 자유권, 교환적 시장, “법의 지배”, 비판언론 등의 중앙권력의 견제의 “작은 정부” 모델을 무시할 때 그런 자유주의적 토대가 없는 사회주의는 “조직”의 주의가 되고 “법치”가 아닌 1인 독재형의 “인치”의 수렁에 빠지게 됨을 우리의 한국현대사에서도 역사적 체험을 가지게 되었다. 북한체제가 55년전 시민적 자유도 무시하고 시장없는 맑스·레닌주의를 채용한 결과, 민간의 시민사회가 말살되고 오직 군대조직만 남은 “선군”의 군사독재의 말로로 귀착되었다. 자유주의적 정치철학의 근간인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인민주권론에서 북한체제를 보면 일당독재의 자동조절 인형은 있으나 시민사회의 구성원인 국민이 없는 점에서 북한에는 주권자인 “인민”도 없고 당조직에서 독립된 시민사회의 토대가 아무 것도 없다. 이런 국민주권과 시민사회 없는 북한체제가 한국의 좌파패권의 유토피아적 대안인 듯이 관념 도착된 이념혼란은 햇볕정책에서 정부당국배제의 “민간교류”의 허구를 연출해온 데서 기인하는 면이 적지 않다. 평화통일의 기본적 접근을 정치권력의 차원에 치중된 “조직”의 논리로서는 그 기반다지기가 불가능하고 시민사회, 민간차원의 교류가 되어야 한다. 하이예크의 “조직”과 “자생적 질서”의 구분에서 우리는 “평화적 공존”이 “조직”으로는 안되고 두 개의 국민(Nation)간의 상호방문과 경제적 문화적 교류에서 남북한의 민족 각 개인의 자유선택권을 보장하여 시장적 경쟁원리에 맡기는 것이 평화적 공존과 평화통일의 기본적 정도이다. 적어도 이산가족 상봉, 우편교환, 인적교류에서 철저한 상호주의 원칙이 지켜지고 대북 경제지원에 대해서도 북한의 인권개선과 연계시켜 상호주의 원칙을 다시 살려나가야 할 것이다. 3.1독립운동의 기본이념은 민족자결주의였다. 우리의 헌법전문에도 명문화된 3.1정신은 이와같은 민족의 자기결정권의 선언이고 거기에는 개인의 자기선택, 자기결정의 자유주의 철학이 밑받침되어 있다. 3.1독립선언의 선언주체가 군왕과 같은 공권력이 아니라 민간의 “민족대표”였고 그 시민적 자유연합의 시민적 민권(民權) 대표의 성격을 가졌던 것이다. 미구에 대망되는 평화적 민족통일과 평화공존의 기본틀에 대해서도 다양한 개인들의 다양한 가치를 전제로해서 서로 침해하지 않고 각자의 인생설계와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강제없는 합의”의 게임룰을 존중하는 자유주의적 발상법이 남북한 관계개선에서도 대전제가 되어야 한다. ｢정의론｣을 내놓은 존·롤즈는 그의 “정치적 자유주의” 즉 복지지향적 리버럴리즘의 정의의 원칙을 도출하기 위해 “사고실험”의 가정적 방법을 내놓았다. 롤즈이론에 대항했던 리버타리안적인 노직(Nozick)의 자유주의 철학은 “다원적 유토피아의 틀”을 내놓고 구소련식 사회주의 국가형은 “유일 유토피아”의 허상을 강권으로 강제하는 유토피아 제국주의라고 비판했다. 노직은 “다양한 유토피아 공동체”의 다원적 틀을 “사고실험”으로 내놓고 거기에는 이스라엘의 깁츠(Kibtz)와 같은 공상제공동체도 있고 자유주의 공동체도 있고 심지어 재즈 등 특정한 음악을 같이 즐기려는 공동체 등 유토피아는 다양하고 다원적인 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그 어떤 공동체에서나 그 입퇴의 자유선택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면 경쟁원리에 따라 흥하는 유토피아도 쇠망하는 유토피아도 있게 된다는 자유주의적 자생적 질서의 발상에 기초해 있다. 반세기가 경과된 국토·민족분단 상태에 대한 자유주의적 해법도 남북한의 자유왕래와 거주지선택의 자유를 허용하고 경제적 민족통일시장의 예비과정으로서 먼저 노동시장부터 열어 북한지역의 동족에게 근로의 자유권을 보장한다면 평화로운 공존과 통일의 자생적질서가 형성될 것이다. 이런 “다원적 유토피아”의 사고실험을 전제로 한다면 “허공의 유토피아”를 그리는 허위의식적 진보·보수논쟁은 그만두고 우리 자유민주적 질서에 반대하는 친북주의자들로부터 솔선해서 자유롭게 북한으로 이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한 방안이 된다. 여기서는 상호주의적으로 북한공민 중에서도 남한체제로 이주해올 수 있는 거주선택권의 보장이 상호 이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발상은 이미 “베를린 장벽”을 쌓기 전에 공식절차로도 동독주민 약 4,50만이 서독으로 이주한 전례가 있다. 동독정권이 수립된 1949년 12만9천명, 1950년 9만9천명, 1951년 18만2000명, 1953년에는 33만1000명이 이주했는데 이를 동독은 “공화국도망”(Republikfluck)이라 한다. 이같은 서독에의 탈출을 막기위해 동독은 “형무소국가”로 되었던 것이다. 동독출신의 반체제 작가인 베르벨 볼러는 “1700만이 형무소에 갇혀있다”고 동독을 형무소국가라고 규탄했다. “형무소국가”인 북한과 한국의 자유질서의 차이가 진보·보수의 구획기준이 되고 있다면 이는 대단히 우스꽝스러운 이념적 착각이 아닐 수 없다. 한국내의 진보주의 패권은 냉전형 이데올로기의 낡은 발상을 버리지 못하고 구사회주의 몰락 후에는 진보의 유토피아를 잃고 불행하게도 마지막 남은 좌파 파시즘 북한에 대한 친북정서로 대단히 치명적인 친북=진보의 함정에 빠져 허덕이고 있다. 이는 한국진보주의의 사상적 빈곤의 업보이다. 바로 이 함정의 대실책을 온 국민이 깨우치게 하여 한국의 자유질서와 자유시장경제의 수호를 위해 모든 국민의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1980년대이래 한국운동권에서는 독일의 친북주의 통일론의 “내재적 접근”의 궤변이 유행했다. 이 “내재적 접근”은 북한에 대한 반공주의적 편견을 버리고 북한 자체의 내재적 가치를 북한의 논리만으로 이해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 체제는 민간사회가 없어 북한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도 자유언론도 없는 일당지령의 “조직”이다. 결국 “북한”에 대한 “내재적 접근”은 김부자의 북노당의 교양·선전문서를 그대로 믿으라는 북노당 대변론에 불과하다. 만일 남한에 대한 “내재적 접근”을 한다면 시민사회도 있고 자유언론도 있어 참다운 내재적 접근에 열려 있다. 오히려 남한에 대한 내재적 접근은 경제 번영을 일으킨 박정희 개발 독재의 합리화에서 큰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친북좌파의 북한 “내재적 접근”의 허위의식은 아직도 구사회주의 해체의 근본원인을 외면한 대남통일전선전술의 하수인의 “대남공작”의 레토릭에 불과하다는 정체가 들어났다. 한국의 보수주의는 정치권력, 기득권 등의 “정치악”에 편중된 정치권력·정권사적인 역사관에 사로잡혀 소위 “반독재민주화”의 구호 앞에서 대한민국 55년의 현대사에서 보수할 가치를 제대로 찾아세우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보수주의가 중앙권력과 시민사회의 자유주의적 2분법에서 대한민국 55년의 시민사회적 보수가치를 찾는다면 자유사회의 시민의식, 경제적 번영의 시장경제적 성공, 특히 신흥공업국가로서 개발도상국의 모범이 된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개선된 코리아의 이미지 등 보수할 가치가 너무 많다. 한국현대사에 대한 시민사회적 자유주의의 역사관의 안목으로 대한민국 55년을 다시 본다면 한국의 진보·발전기반이 그동안 축적된 시민사회적 자유질서의 성공적 유산임을 재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기업경영의 노하우와 글로벌 세계에서 그동안 수출입국 정책에서 체득한 마케팅 등의 기업가정신의 거대한 유산은 북한체제와 비교가 안되는 한국의 국보적 가치이다. 진보주의의 “개혁”도 이와같은 대한민국의 자유주의적 자생적 전통에 기초하지 않는 “허구의 유토피아”의 미신에 사로잡혀있는 한, 애머추어리즘의 “슬로건” 동원주의로 다시 이 나라를 퇴보시킬 “위기”를 조성하게 될 것이다. 한국현대사에 대한 자유주의 사관의 정립이 시급해졌다. 1960년에 유엔통계에서 우리한국은 연간 개인소득 80달러의 최빈국이었다. 이런 가난하고 후진된 나라를 개인소득 1만불의 선진국 문턱까지 진보·약진시킨 대한민국의 성공적 가치와 제도에 대해 이제는 그 위업과 위력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위력과 위업을 제대로 설명,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정치악” 편중의 정치권력사관이 아니라 자유민권, 시민사회, 시장경제 성장에 중점을 두는 자유주의 역사관의 몫이다. 진보주의의 “개혁”은 이 대한민국 55년의 성공적 위업을 전면 부정하는 과거 허무주의의 좌파 미신만을 전파시켜온 자유주의 시민사회 가치관의 반대파에 불과하고 보수할 가치를 못 가진 정신적 정책실천적 경험빈곤으로 인해 르쌍치망만을 키워 온데서 그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보여진다. 한국자유주의 전통은 “근대화” 정책의 한계에서 생긴 국제적 기업경쟁력, 고용문제, 노동문제, 소득구조의 악화, 청년실업, 청소년 범죄 등의 새로운 정책과제에 대한 자유주의의 한국적 해법을 찾기 위한 다원적인 싱크탱크시스템의 개발에서 신세기한국의 각종 경제, 사회적 문제의 해결에 성공적인 게임룰의 개발에서 다시 그 위력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신용카드의 316만 신용불량자 양산은 시장질서의 기반인 “신용”의 덕목을 타락시켜 반자유주의 정서의 온상이 되게 했다. 쿤의 패라다임론에서는 “정상과학”에서는 그 패라다임 안에서 “당신의 패라다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진지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패라다임이 틀린 것이 아니라 그 기틀에서 올바른 “퍼즐풀이”가 안된 것이라고 반성하라고 권고했다. 퀴즈 등 퍼즐에는 반듯이 정답이 있는 것과 같다. 자유주의적 시민사회와 시장경제의 패라다임에서 문제해결의 정답을 못 찾는다면 그 패라다임을 탓하지 말고 자기의 착오, 오류 등의 잘못이오 능력부족이라고 자성하라는 뜻이 된다. 쿤의 패라다임은 우리말로 “모범예” 또는 “모범적 해법”의 기본틀이라고 의역할 수 있다. 따라서 패라다임은 합리적인 이론, 가설, 연구방법뿐만 아니라 실행과 수련의 과정에서 몸으로 터득하는 임상수련에서와 같은 체험적인 노하우도 포함되어 있다. 사회·경제·행정분야에서는 합리적 이론지(理論知)보다 현장인의 “현장지”를 존중하는데서 진보주의적 애머추어리즘이 극복되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패라다임에 대한 대안인 듯이 거창하게 등장했던 구사회주의의 “진보” 허위의식은 패라다임 전환에 실패했다. 우리 한국의 자유주의의 게임룰은 우리 한국의 경제적 번영의 성공을 가져다 주었다. 이 자유주의 패라다임내에서 온갖 문제해결의 정답을 찾아야 하고 그 대안이 되는데 실패한 구사회주의 “개혁” 정서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 우리 한국 55년의 자유질서 안에서 모든 과제의 정답을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이다. 도목수는 그가 명장인이라면 연장을 탓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하이예크가 그토록 자유주의의 시장원리를 탐구하는데 온 정력을 쏟은 근본목표는 경제번영보다는 자유사회와 시민사회의 자유수호였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신일철 (고려대 철학과 명예교수 / 시민회의 고문) 출처 - 항에크소시예티 자유주의 정책심포지엄 2003. 10. 24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