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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인들, 공중목욕탕에 가라 - 박효종
	2003-10-24
정치인들, 공중목욕탕에 가라 상대 얼굴에 묻은 때만 보이나 … 여·야, SK자금 공동고백해야 지금 우리는 3류 천민(賤民)정치의 현주소를 보고 있는 중이다. 대선을 치를 때는 누구보다도 깨끗하다고 강변하던 사람들이 전전긍긍이다. 대선이 끝나면 언젠가 터질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막상 이렇게 터지고 보니 너무 추악해 어안이 벙벙하다. SK로부터 100억원의 돈을 받았다고 시인한 최돈웅 의원 문제와 관련, 한나라당은 석고대죄해야 한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국회의 책임 있는 다수당이 왜 부정부패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명색이 정치자금이라고 하지만, 쇼핑백에 담아 주차장에서 전달하는 정치자금이 과연 있는가. 그것은 우선 돈을 받은 본인이 검은 돈임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일 터이다. 돈 거래가 주차장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졌다고 해도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데”, 어떻게 비밀이 보장되리라고 생각했을까. 이 문제가 행여 밝혀지게 되면 정치적 음모라고 밀어붙일 심산이었을까. 그 돈이 대선에서 승기를 잡고 있었을 때 들어온 돈이라면, 적어도 집권을 꿈꾼 천하의 공당(公黨)이 조폭이나 마약거래자와 같은 검은 뒷거래를 했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최도술 전 비서관이 11억원 수수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나 신당, 민주당 쪽에서는 액수가 그보다 적다고 자위할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검은 돈 액수의 다과만이 문제는 아니다. 전쟁터에서 50보 도망과 100보 도망은 차이가 있지만 도망간 사실은 같다. 또 미혼모의 임신 1개월과 임신 7개월이 월 수에 있어서는 다르지만 임신했다는 사실에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면, 액수의 다과를 따지며 깨끗함을 가늠하는 것은 구차스러운 일이다. 더욱이 대선이 끝난 다음에 받았다면 더 심각한 문제다. '무늬만 정치자금'일 뿐, 뇌물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여야가 서로 간에 누구의 얼굴에 더 시커먼 검댕이 묻었는가 하며 설전을 벌이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상대방의 얼굴에 묻은 검댕이 더럽다고 탓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 묻은 검댕을 보면서 자신의 얼굴에 묻어있는 검댕이 얼마나 더러운가를 자책해야 한다. 똑같이 대선이라는 검은 굴뚝에서 나왔는데, 누구는 '백로'처럼 희고 누구는 '까마귀'처럼 검다는 주장이 과연 의미가 있기는 한가. 이 백년하청(百年河淸)의 정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동안 이런 문제만 터지면 거론된 몇 사람만을 희생양으로 삼아 사법처리를 함으로써 들끓는 공분도 가라앉혔다. 하지만 정도는 아니다. 미꾸라지 한두 마리가 온 연못을 흐리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정치인이 흙탕물을 일으키는 미꾸라지가 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 공개적으로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들통이 날까봐 잠 못 이루는 정치인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모두의 얼굴에 검댕이 묻었다면 검댕을 닦아야 한다. 그러자면 같이 목욕탕에 가야 한다. 이를 위해 공동고백을 제안한다. 공중목욕탕에서 검댕을 벗기자는 것이다. 공동고백을 한다고 해서 사법처리에서 면제를 받을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 된다. 국회의원이면 발언에 면책특권이 있는 것이지, 불법정치자금 수수에 면책특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정치자금법을 만든 것이 그들 아닌가. 검찰에 의해 조사를 받고 처음에는 완강히 부인하다가 나중에 검찰이 증거를 들이대면 마지못해 시인하는 비겁한 방식보다 진솔하게 고백하고 벌을 자원하는 편이 떳떳하다. 그럴 경우 장엄한 정치적 이벤트가 될 수 있고 유권자의 의식혁명을 수반한 정치개혁의 도화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왕 지은 죄에서 도피할 생각을 하기보다 그 죄를 뉘우치면서 공개적으로 참회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지은 죄를 속죄하는 방식이 아닐까. 정치인들이여! 더 이상 마음을 졸이며 검찰 조사를 기다리지 말고 공동으로 고백하라. 그 다음에 국민들의 냉엄한 심판을 기다리라. 박효종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 시민회의 정책위원장) 출처 - 조선일보 2003. 10. 24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