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사회시민회의

> 자료 > 바른사회 칼럼

	공정위 권한 강화, 신중해야 - 조동근
	2003-10-15
공정위 권한 강화, 신중해야 공정거래위원회의 권한 강화를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계좌추적권 5년 연장을 위한 공정위의 입법예고와 공정위 조사요원에 대한 강제조사권 부여를 내용으로 하는 국회발의안이 그것이다. 공정위는 대규모 기업집단의 부당내부거래가 근절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금융거래를 통해 은밀하게 우회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부당내부거래 단속을 위해 계좌추적권 연장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화폐경제에서 모든 거래는 화폐의 수수를 동반하기 때문에 부당내부거래가 금융거래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쟁점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쟁점은 부당내부거래의 인정범위와 현재 상황에서 계좌추적권을 굳이 연장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한편, 국회발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기업이 공정위의 조사를 거부하거나 방해하는 사례가 빈발해 부당 공동행위에 대한 공정위 조사기능의 실효성 제고 차원에서 압수·수색권의 부여가 필요하다고 적시하고 있다. 국회발의안이 정당화되려면 공정위의 물리적 강제력 부족이 담합 등 공동행위를 적발하는 데 있어 결정적 애로 요인임이 입증돼야 한다. 계좌추적권은 기업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해 1999년에 한시적으로 도입되었다. 당시 계좌추적권이 금융실명제법의 예외조치로서 인정된 데에는, 금융실명제법의 정착보다 경제위기 극복이 더 시급했고 계열사간 교차보조 등 부당지원행위로 부실계열사 매각 등 구조조정이 실질적으로 지체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기업구조조정은 정부주도가 아닌 시장규율의 몫이 되었다. 그리고 이해관계자의 견제와 금융시장 규율을 통한 부당내부거래 감시 장치가 상당부분 정비된 이상 계좌추적권 같은 특수상황 아래에서의 ‘일몰(日沒) 규제’는 법의 안정성을 위해서 시한 만료시 종료되는 것이 순리다. 더욱이 내부거래 중 지원성 내부거래 비율과 지원성 거래규모에 대비한 과징금 비율이 현저히 낮아진 현재, 부당내부거래가 ‘근절’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좌추적권 연장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공정위의 계좌추적권 연장 주장은 부당내부거래와 공정경쟁에 대한 편향된 인식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경쟁행위는 경쟁자의 배제를 전제로 하며 경쟁이 치열할수록 경쟁자의 지위와 생존은 위협받게 된다. 이는 경쟁자의 불이익이 불공정의 판단기준이 될 수 없으며, 경쟁촉진은 사업자간의 관계가 아닌 사업자와 소비자간의 관계 즉 소비자 후생증진 여부로 판단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같은 관점에서 지원성 거래가 경쟁자를 배제하고 신규기업의 진입을 막는 주범이라는 인식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기업집단 계열기업간의 내부거래가 정히 문제된다면, 규제회피 차원에서 계열사를 사업부 조직으로 전환시킬 수도 있다. 물론,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내부거래를 ‘부당’이라는 이름으로 원칙적으로 불법화할 것이 아니라 내부거래의 효율증진 효과를 감안한 ‘합리의 원칙’에 의거, 부당성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지원성거래 규제의 1차적 목표는 조세회피와 지배주주의 사익추구 차단으로 옮겨져야 한다. 그렇다면 계좌추적권은 굳이 더 연장될 이유가 없다 하겠다. 한편, 공정위의 강제력 부족이 공동행위를 적발치 못하게 하는 요인은 아니다. 공정위는 이미 현장조사권, 자료영치권 등 실질적으로 사법수사권과 다를 바 없는 조사와 이행수단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행위를 적발하는 데 있어 관건은 물리력 확보가 아닌 ‘전문성 제고’다. 따라서 공정위는 담합의 정황적 증거 확보 차원에서 상시 정보수집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공동행위로 피해를 본 당사자가 법원에 직접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적소송이 활성화되도록 해야 한다. 사적소송은 담합 등 부당공동행위에 대한 민관 공동전선(戰線)을 구축해 공정거래법의 집행저변을 확대하는 효과를 가질 수 있다. 개정안이 원안대로 통과되면 공정위는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된다. 그러나 공정위는 ‘경제경찰’ 이전에 ‘경제판관(判官)’이므로 권한 강화가 규제의 권위를 높이는 것은 아니다. 계좌추적권과 압수·수색권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업을 위축시킬 여지가 있다. 따라서 공정위는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기업에게 그 당위성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 시민회의 경제제도연구센터 소장) 출처 - 파이낸셜뉴스 2003. 10. 13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