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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서울시교육청이 예산 부족을 이유로 해마다 실시해온 전국단위의 학력평가(연합평가)를 올해 후반기에는 실시할 수 없다고 일선 고교에 통보한 사실이 밝혀졌다. 전임 문용린 교육감이 연합평가를 위해 책정한 35억원의 예산을 11억원으로 서울시의회가 삭감했기 때문에 올 하반기에 예정돼 있는 2회의 평가를 시행할 재정(財政)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터무니없이 예산을 깎은 서울시의회는 “전국단위의 학력평가가 별 효과도 없이 학생들에게 과도한 부담만 준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연합평가에 대한 속단이자 곡해다.
우선, 연합평가의 효과에 대한 판단은 교육 전문가들의 몫이지 서울시의회가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그리고 평가란 원래 학생들에게 부담을 줌으로써 학습동기를 유발하는 교육 활동이다. 평가를 하지 않으면 학생들은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평가의 부담으로부터 학생들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발상은 학생들에게 공부를 시킬 필요가 없다는 생각과 다름없다.
우리의 교육을 평가 중심의 교육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선진국의 교육이 우리에 비해 자유롭고 개방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필자의 경험상 미국의 명문대 학생들이 평가에 대해 느끼는 중압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평가가 다다익선의 도구는 아니지만, 이는 분명 학생들을 지적으로 연단(鍊鍛)시키는 효과가 있다. 더욱이 연합평가의 초점은 학생들 간의 경쟁에 있는 게 아니다. 학업성취도를 전국에 걸쳐 파악함으로써 특정 학교나 지역의 취약점을 보완하고 국가의 교육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진국들은 예외 없이 우리의 연합평가와 유사한 형태의 평가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서울시의회의 예산 삭감은 교육에 대한 전문적 식견 부족으로 치부할 수 있다고 해도, 이 때문에 연합평가를 실시하지 않겠다는 서울시교육청의 결정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서울교육청은 정치적 조직이 아니라 대한민국 수도의 교육을 관장하는 전문 기관이고 교육청의 관계자들은 모두 교육에 대한 전문가들이다. 이들이 평가의 중요성이나 연합평가의 의의를 모른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따라서 ‘돈이 없어서 연합평가를 못한다’는 식의 주장은 군색할 뿐 아니라 매우 무책임한 변명이다. 게다가 이같은 결정이 연합평가를 부정적으로 보는 좌파 진영의 조희연 교육감 취임 직후 내려진 것은 과연 우연인가. 항간에는 ‘조희연 교육감이 예산 부족을 핑계로 연합평가 자체를 거부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떠돌고 있다.
사실 이러한 추측을 근거 없는 풍문으로 일축할 수만은 없는 이유가 있다. 조 교육감은 취임 직후 “10개의 혁신학교를 증설해 학교당 1억 원씩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더욱이 서울시의 자사고 교장들을 모아놓고 “일반고로 전환하는 학교에 14억 원을 보조하겠다”고도 공언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애초 조 교육감의 계획대로 자사고를 폐지할 경우, 서울시교육청은 1000억 원 정도의 예산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6억 원이 없어 연합평가를 실시하지 않는다’는 서울시교육청의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지 모르겠다.
최근 세계적으로 품격 있는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국가들 간의 교육 격차를 비교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이 기사 속에서 교육의 질적 향상을 시급한 당면 과제로 설정한 남미의 몇몇 나라가 전국단위의 학력평가를 통해 교사와 학교의 책무성을 평가하는 제도를 도입한다고 보도했다. 외국에서는 대한민국 교육의 우수성을 부러워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 남미 국가가 ‘예산이 없어 연합평가를 못한다’는 서울시교육청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교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이성호 (중앙대 교수·교육학 / 바른사회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14. 8. 6 포럼
<원문>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408060107393719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