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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를 혁파하자며 대통령이 직접 끝장토론을 이끌었던 때가 3월 20일, 넉 달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세월호 사태에 가려진 때문인지 언제 그랬나 싶다.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진돗개처럼 집요하게 규제 개혁을 이뤄내자던 결의도 흐지부지된 듯한 느낌이다.
큰일이다. 규제개혁에 손을 놓고 있는 사이에 안 그래도 낮은 성장률은 더욱 낮아지고 있다. 한국은행도 지난 10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4.0%에서 3.8%로 낮춰 발표했다. 앞으로 더 낮아질지도 모른다. 낮은 성장률은 그저 단순한 숫자놀음이 아니다. 웅진그룹, 동양그룹, STX그룹처럼 부도날 것 같지 않던 대기업들조차 부도를 내는 것이 낮은 경제성장의 구체적 모습이다. 그나마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같은 기업이 수출을 잘 해서 이 정도 유지하고 있는데, 그마저도 환율이 낮아져 지금 같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환율이 내려서 수출이 어려워지면 내수가 좋아지는 게 순리인데, 우리나라는 그조차 여의치 않다. 사람들이 눈치보느라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돈을 쓰기 때문에 환율 하락의 효과는 외국의 관광업체와 쇼핑업체들에 돌아간다. 유통업이나 관광 등의 서비스 산업이 부실한 것도 내수가 살지 않는 또 다른 원인이다.
이제 무엇으로 경제를 살려낼 것인가? 돈을 풀어서 경제를 살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선 그럴 만한 돈이 없다. 복지 재정을 확대하느라 안 그래도 돈이 모자라는 판이다. 그렇다고 빚을 내서 쓰다 보면 국가부채가 쌓여 결국 신용불량국가로 전락할 수 있다. 무엇보다 돈 풀어서 경기를 자극하는 것은 마약을 투약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따라서 경제를 살리기 위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규제 혁파뿐이다. 규제를 풀어서 기업과 국민에게 경제활동의 자유를 주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다.
자유는 사람들이 가진 잠재력을 펼칠 수 있게 해준다. 1964년 수출의 날 제정 이후 수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었던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나서서 수출에 장해가 되는 규제들을 과감히 걷어냈기 때문이다. 그러자, 사람들은 별별 것을 다 내다 팔아서 돈을 벌어왔다.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을 수출했고, 쥐가죽을 밍크털처럼 가공해서 외화를 벌기도 했다. 새로 주어진 자유가 우리 스스로도 몰랐던 잠재력을 끄집어내 준 것이다. 규제혁파는 그래서 필요하다.
물론 모든 규제는 저마다 이유를 가지고 있다. 먹는 샘물 공장에서는 탄산수를 생산할 수 없다는 황당한 규제조차도 이유가 있다. 탄산수 제조 설비를 같은 공장에 두었다가 생수에 섞여 들어갈까봐 생긴 규제다. 기존 공장에 탄산가스 주입 설비만 들이면 될 일을 이 규제 때문에 엄청난 비용을 들여서 별도의 탄산수 공장을 짓게 만든다. 탄산수를 원하는 소비자들도 그만큼 더 비싼 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생수에 탄산수가 섞여 들어갈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 정도는 기업이 알아서 할 수 있다. 작은 위험을 막기 위해 너무 큰 비용을 강요한다. 규제들의 대다수는 이런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폐지해야 한다.
세상 모든 일은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술은 적당히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사람들과 친해지기 쉽다. 그러나 지나치면 알코올중독이 된다. 규제론자들은 알코올중독을 막기 위해 금주령의 유혹을 느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회식 자리의 즐거움도, 식당과 술회사의 일자리도 사라져 버린다. 알코올중독자를 100% 없애자면 즐거운 회식의 즐거움도 따라서 사라진다.
규제 개혁의 기치를 다시 올려야 한다. 사소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 우리의 잠재력을 사장(死藏)시키는 규제들을 걷어내야 한다. 그리하여 한국경제가 다시 한번 도약하게 해야 한다.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 바른사회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14. 7. 14 포럼
<원문>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407140107313719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