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 > 바른사회 칼럼
> 자료 > 바른사회 칼럼
움직이는 것은 계속 움직이려 하고 정지한 것은 계속 정지하려 한다. ‘관성의 법칙’은 경제에도 적용된다. 최근 우리 경제의 문제는 ‘저(低)성장’이다. 저성장은 저성장을 부른다. ‘저성장의 구조화’가 그것이다. 우리 경제는 갈 길이 먼 청년경제다. 1인당 2만5000달러 소득에서 ‘성장판’이 닫혀서는 안 된다.
최근 실질성장률 추이를 살펴보자. 우리나라는 2009년에 0.3%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2009년은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엄습한 해였다. 같은 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3.2%였다. 우리가 2010년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의장국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여기에 연유한다. 2010년에는 6.3%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전년도의 저성장에 따른 ‘기저효과(base effect)’로 폄훼해서는 안 된다. 6%대의 성장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정치논리가 경제에 끼어들 틈’이 없었기에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2011년에는 양상이 달라진다. 201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경제민주화’가 나오면서 성장률은 고꾸라졌다. 2011, 2012년 성장률은 2.7%와 2.0%였다. 2013년의 성장률도 2.8%로 3%를 넘지 못했다. 이른바 3%가 ‘마(魔)의 성장률 고지’가 되고 말았다. 우리나라는 최근 몇 년간 잠재성장률 이하의 성장률을 실현하고 있다. 경제 자원이 그만큼 사장되고 있는 것이다.
‘잠재성장률 이하의 저성장’이 가져오는 기회 손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성장률이 낮으면 그만큼 분배되는 소득이 작아지고, 분배된 소득이 작아지면 소비도 줄어든다. 이는 다시 성장률을 낮춘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3월, 민간 소비가 부진하지 않았다면 최근 10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0.5%포인트 더 높아지고 일자리도 연평균 11만5000개가 더 생겼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숫자 자체에 크게 구애받을 필요는 없지만, ‘저성장의 기회 손실’ 자체를 백안시해서는 안 된다. 프레데리크 바스티아의 경구(警句)대로 ‘보이지 않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박근혜정부 2기 경제정책의 기조는 분명해 보인다. 성장 페달을 밟아 경제를 성장 궤도에 안착시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책의 방향성을 확실히할 필요가 있다. 세월호 사고 이전, 규제 혁신으로의 방향 전환은 ‘경제정책에서 경제민주화의 정치논리를 걷어낸’ 적합한 조치다. 정책 과제는 규제 혁신을 통해 내수 기반을 공고히 하는 것이어야 한다. 내수는 민간 부문의 지출로 ‘기업투자와 가계소비’로 구성된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기업 투자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입지 덩어리 규제가 해소되지 않는 한 기업의 해외 탈출은 계속될 것이다.
민간 소비를 진작시키려면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가계부채의 핵은 부동산 담보 대출이다. 따라서 부동산 관련 대출 규제 완화를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규제를 완화하더라도, 부동산 가격이 오를 것으로 여겨 무리하게 집을 사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거래 활성화는 은행 빚을 안고 산 사람들에게 집을 처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부동산은 더 이상 특별한 재화가 아니다.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중심을 잡아야 한다. 지난해 8월 정부가 내놓은 ‘세법 개정안’이 그 전형이다. 기획재정부는 복지 재원 확충 등을 위해 연소득 3450만 원 이상 근로자의 세 부담을 늘리는 ‘증세안’을 내놨다. 대다수 중산층의 세 부담 증가액은 월 1만∼2만 원이었고 고소득층의 세 부담이 늘어나는 방식이었다. 잘 만든 세법 개정안이었음에도 야당이 ‘세금 폭탄’이라고 맹공을 퍼붓자 여당도 덩달아 등을 돌렸다. ‘보편적 복지’를 요구하면서 이 정도의 증세를 세금 폭탄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또 포퓰리즘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성장해야 분배 여력이 있다’는 철학을 견지하고, 규제 혁신과 기업가정신 고양을 통해 성장률을 끌어올려야 한다.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한 “나에게 유턴은 없다”는 말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이는 고집이 아니다. 철학이 부재하고 지향하는 가치가 실종되면, 정책이랄 것도 없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 / 바른사회 공동대표)
출처 - 문화일보 2014. 6. 17 시론
<원문>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406170107303719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