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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대한민국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 사람을 바꾸고 조직을 개편하고 제도를 새로 만들면 대한민국은 개조되는가. 단언할 수 없다. 사고와 의식은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고 와중에 서울에서 지하철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원인은 ‘신호 연동장치 오류’였다. 신호팀 직원이 신호기계실에서 신호 오류를 확인했지만 통상적 오류로 생각해 적시(適時) 조치를 하지 않았다. 사고 당일 선행 기관사는 문이 정상적으로 닫히지 않아 약 1분30초 지연 출발했지만 관제소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 열차 간격이 위험한 수준으로 좁아졌지만 관제소도 적극적 조치를 하지 않았다. 추돌사고는 ‘신호기기 작동 오류에 관제소와 기관사의 안이한 대처’가 더해진 전형적 ‘인재(人災)’였다.
지하철 노조는 ‘인력 감축과 비용 절감에 눈먼 역행’이 이번 사고의 한 원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책임을 ‘외주업체’에 돌리고 있다. 신호 데이터 수정도 외주업체가 맡았다는 것이다. 평소에도 기존 열차 자동정지장치(ATS) 시스템에 열차 자동운전장치(ATO) 시스템이 병설돼 그만큼 신호가 꼬일 위험이 높다는 게 노조 주장이다. ATO 시스템은 현 2인 승무 체제를 단독 승무나 무인 운전으로 바꾸기 위해 2000년대 초부터 도입됐다. ‘이윤을 내세우는 논리가 안전보다 먼저였기 때문에’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일부 좌편향 언론 매체도 지하철 노조와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탐욕에 눈먼 자본이 불러온 예고된 재난’이었다는 것이다. ‘외주화로 안전과 사람은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것이다.
사건·사고의 ‘기저’에 깔린 원인(遠因)을 찾아내는 것은 언론의 기능이다. 하지만 설득력을 가져야 한다. 신호 오류를 빨리 감지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무사안일’과 기관사의 ‘주의부족’에서 비롯된 사고에 ‘자본의 탐욕’이 왜 나오는지 의아스러울 뿐이다. ‘자본의 탐욕’은 ‘남 탓하기’의 전형을 이룬다.
노조의 ‘외주가 사고를 불렀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외주를 적절히 활용하지 않으면 내부 조직은 팽창하고 비효율이 쌓인다. ‘관(官)피아’가 문제다. 신호기 관리업체 대표가 국토교통부 산하 사단법인 한국철도신호기술협회의 감사로 드러났다. 신호기술협회는 신호기술과 관련된 유일한 협회이며, 협회 회장은 철도청 출신이다. 외주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운영이 잘못된 것이다. 퇴직관료와 공기업 간의 유착 관계가 문제를 빚은 것으로 보는 것이 객관적인 시각일 것이다.
노조는 이번 사고에서 신호 시스템을 불안정하게 만든 원인 가운데 하나로 ATO를 지목한다. ATO는 기관사 ‘1인 승무’를 위해 도입된 시스템이다. 지하철 5~8호선은 벌써 1인 승무 체제를 도입한 데 이어 무인 운전을 준비 중이다. 신분당선은 무인 운전을 시행 중이다. 따라서 1인 승무를 위한 시스템 도입을 ‘비용 절감에 눈먼 역행’으로 몰아세울 일은 아니다.
서울메트로는 방만 운영에 대한 수술이 시급한 상황이다. 최근 3년(2010~2012)간 적자는 6400억 원 수준이다. 민간 기업이라면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임금 동결부터 했겠지만 이 기간에 2000억 원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만약 서울메트로의 성과급 파티가 ‘안전’을 뒤로 미룬 대가였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탐욕에 눈먼 자본’을 말하기 전에 자신의 ‘도덕적 해이’를 자성해야 한다. 또 서울메트로의 사외이사 구성은 그동안 지적돼 왔던 ‘낙하산 인사’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 인연, 의원 보좌관 등을 디딤돌로 사외이사에 합류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지하철 안전 및 공기업 경영과 거리가 먼 인사들인 만큼 안전에 대한 투자나 경영진에 대한 견제가 제대로 될 리 없다. 서울시와 서울메트로는 ‘서울지하철 운영 시스템 10대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그리고 적자를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무임수송 보전 등 국고 지원을 요구했다. 서울메트로의 자구노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는 경영이 아니다.
‘탐욕스러운 자본’으로 인해 지하철 사고가 났는가. 그러니 문제의 본질이 흐려진다. ‘닥치고 주장’을 접고 진실(眞實)을 봐야 한다. 그 길이 국가 개조의 길이다.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 / 바른사회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14. 5. 20 시평
<원문>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405200103303719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