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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협착(狹窄)해 찾는 이가 적다.”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과 ‘입법(立法)의 문’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입법과 관련해 정부 발의는 ‘관계기관 사전 협의, 입법예고, 규제 심사, 법제처 심사, 국무회의 심의’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의원입법은 국회의원 10인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발의할 수 있고 입법예고나 규제 심사를 받을 의무가 없다. 예산이나 기금상의 조치를 수반하는 법안의 경우 비용추계서를 첨부하면 족하다. 의원입법은 ‘넓은 문’이자 ‘지름길’이다. 제19대 국회 들어 2013년 5월 기준 의원발의 법안은 4443건으로 정부 제출 법안 313건의 14배나 됐다.
2013년 세밑 하루 동안 113개의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 가운데서 65개 법안이 가결 당일 또는 전날 제안된 것이다. 신중한 검토는 난망(難望)이다. ‘묻지마 법안’ 처리가 아닐 수 없다. 그 가운데는 규제영향평가를 우회하기 위한 정부의 ‘대리(代理) 입법’도 상당수 포함됐을 것으로 판단된다. ‘묻지마’와 ‘대리’가 우리의 입법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국회에서 방망이를 두드리면 법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간주된다. 여야(與野)가 합의하면 못할 것이 없다. 하지만 ‘입법’과 ‘법치주의’에서의 ‘법’은 다르다. 법치의 법은 지배자를 포함, 모든 사회 구성원의 행동을 규율하는 ‘일반적 행동준칙’으로서의 ‘자연질서법’이다. 오랫동안 형성된 상거래 관습을 성문화한 상법이 한 범주다. 반면 입법에서의 법은 일반적 행동준칙이 아닌 특정 집단에만 적용되는, 입법자가 의도하는 구체적 목적에 봉사하는 ‘조직법’이다. 따라서 입법부에 의해 제정된 법률은 ‘사적자치’와 ‘자유의 본질’을 침해할 여지가 다분하다. 입법부의 ‘무소불위 권력화’를 적극 경계해야 할 이유다.
의원입법은 그동안 ‘규제 양산(量産)’의 주범이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제18대 국회를 대상으로 분석한 ‘규제 관련 의원입법 개선 과제’ 보고서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의원입법안이 정부 제출 법안에 비해 규제 신설 및 강화 성향을 뚜렷이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의원입법의 규제 성향은 규제영향평가 절차가 생략된 점이 가장 큰 이유라는 것이다.
박근혜정부는 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으로 한국경제를 질적으로 한 단계 도약시키겠다고 한다. 그 혁신의 중심에 규제 개혁이 있다. 따라서 의원입법이 더 이상 규제 양산의 통로(通路)가 돼서는 안 된다. 규제 지향의 의원입법 관행을 이제는 떨쳐야 한다. 이 같은 배경에서 의원입법도 규제영향평가를 받게 해야 한다는 국회법 개정안이 제출된 것이다.
‘재원(財源)대책 없이 세출확대 없다’는 페이고(pay-go) 원칙의 의원입법 적용 여부를 놓고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여권은 4월 임시국회에서 이를 처리하겠다는 입장이고, 야당은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반대 논거는 의원입법 시 나름대로 재정 추계를 충실히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12년 국회가 의결한 법률 943건 중 48.7%인 459건이 재정 수반 법률이었다. 이 중 비용추계서를 첨부한 법안은 43건에 불과해 야당의 반대논리는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정치인의 포퓰리즘 입법은 재정의 잠복 위험이 아닐 수 없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무상버스,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대학입학금 폐지 등 선심성 공약이 나오고 있다. 현재까지의 공약 이행에만 30조 원이 든다고 한다. 이들 법안이 재원 대책 없이 통과되면 고스란히 정부의 재정 부담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의원입법에 ‘페이고’ 원칙 적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것이다.
의원입법에 ‘규제영향평가’와 ‘페이고’를 도입하는 것에 대해 야권은 ‘입법권 침해’라며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여권은 재정 건전성 차원에서 페이고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본질을 비껴간 것이다. 재정 건전성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규제영향평가와 재원 조달 방안을 검토하는 것은 책임 있는 입법 활동을 위한 최소한의 원칙인 것이다. 국회는 이제 책임성 제고에 눈을 돌려야 한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 / 바른사회 공동대표)
출처 - 문화일보 2014. 4. 17 시론
<원문>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404170103303719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