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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사 교과서를 발행하는 어느 출판사가 ‘교과서 채택을 둘러싼 대형 출판사들의 금품 제공 등 불공정 행위 때문에 피해를 당했다’는 취지로 공정거래위원회에 분쟁조정을 신청하면서, 교과서 시장에서의 불법(不法) 로비 및 뇌물 수수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논란이 확산되자 주무 기관인 교육부는 교과서를 공급하는 과정에서 금품 제공 등 출판사들의 불법·탈법 행위에 대해 전수조사를 한 뒤 혐의가 드러나면 모두 경찰에 수사 의뢰한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교과서의 선정과 관련된 추문과 불법행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특정 교과서를 채택하는 교사들에게 해당 출판사가 현금으로 이른바 ‘리베이트’를 주는 일이 비일비재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과거에 비해 이런 비리(非理)가 많이 줄었다곤 하지만, 교과서의 채택 과정이 완전히 투명해진 건 아니라는 게 교육계의 지배적인 견해다.
현재 우리나라의 교과서 공급은 시장의 원리에 의해 이뤄진다. 물론 교과서의 질을 관리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지만, 소정의 심사과정을 통과한 다양한 교과서들에 대한 선택권은 개별 학교에 있다. 학교에서는 과목별 교사협의회를 거쳐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심의한 뒤 교장의 최종 결재를 통해 특정 교과서를 채택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출판사들이 그들의 판매책인 이른바 ‘총판’을 통해 자신들의 교과서를 ‘홍보’하는 방법은 천태만상이다. 교과 담당 교사의 자녀를 위한 참고서 세트를 선물한 경우도 있고, 교사에게 베스트셀러 소설책을 선사한 일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 교사들에게 주말마다 골프 접대를 하거나, 직접 교장을 찾아가 교과서 채택을 ‘섭외’한 총판도 있다고 한다.
해당 출판사들이 실제로 그렇게 로비를 시도했는지, 또 성공했는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하지만 설령 그들의 시도가 교과서 채택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는 명백한 탈법(脫法)행위다. 영리를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출판사들은 엄중한 법의 잣대로 심판해야 한다. 그러나 이에 연루된 교육자들의 경우 그들이 비록 소수라 할지라도, 이는 법적인 판결만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직업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한 윤리 기준이 요구돼 왔다. 서양철학의 대부라는 플라톤의 위대한 스승 소크라테스는 청소년들을 가르치며 그에 대한 대가를 돈으로 받는 소피스트들의 소행을 비도덕적이라고 비판했었다. 가르치는 것을 그만큼 신성시했다는 뜻이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의 공포에도 굴하지 않고 탈옥의 유혹을 뿌리치는 고결한 행동으로 그의 제자들과 후세에 귀감(龜鑑)이 됐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하늘이 맺어준 인연으로 여겼다. 자신의 스승을 부모에 비긴 것이다. 이는 제자가 스승에게 순종하라는 뜻보다는, 스승은 제자들에게 부모와 같이 중요한 사람이므로 모든 면에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물론 지금은 플라톤이나 사대부들이 살던 시대와 다르다. 더욱이 교사들은 성직자가 아니다. 그러나 교직이 아무리 세속화했다 하더라도 교사들이 신뢰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들은 더 이상 교단에 설 자격이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교사들이 향유하는 권위는 교과와 관련된 전문지식에만 기초하는 게 아니다. 그들의 윤리적 기준이 훼손되고 품위가 손상될 때 그들은 더 이상 스승으로 존경받을 수 없다.
아울러 교과서 채택과 관련해 교육부는 물론 시도(市道)교육청들이 감독이나 관리를 소홀히 하지는 않았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록을 받는 공복으로서의 업무 수행에 소홀함이 없었는지를 성찰해 보라는 뜻이다.
이성호 (중앙대 교수·교육학 / 바른사회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14. 4. 3 포럼
<원문>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404030103313719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