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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회와 교류 뒷전, 양복입고 나이아가라폭포 관광도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최근 여야는 경쟁적으로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내려놓아야 할 여러 가지 특권 중 단골로 등장하는 것 중 하나가 ‘국회의원 외교활동 투명화 방안’이다. “국민의 세금을 국회의원 외유에 낭비한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국회의원이 해외출장을 갈 때 ‘국회의원 윤리감독위원회’에 사전승인-사후보고를 하고 국제-국내선 공항과 철도역사의 귀빈실 이용 등을 금지해 국회의원의 특권을 내려놓도록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안은 현 국회의원 의회외교의 실태와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우선 국회의원 특권이라는 것은 면책특권이나 불체포특권처럼 국회의원이 특수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국회의원직’만 누리는 권리다. 일반 공무원이 국외출장을 갈 때 사전승인을 받고 사후 서면보고 후 내용을 공개하는 것과는 달리, 현 국회의원 외교는 사전에 허가받을 필요도 없고 보고서도 ‘비공개’라는 사유를 달면 적절히 면제될 수 있으니 국회의원만의 특권은 특권이다.
여기에 더해 의원외교의 가장 큰 특권은 외교활동의 근본취지를 무시하고 ‘의원외교’를 ‘의원외유’로 변질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의원외교(또는 의회외교)는 정부외교-민간외교와 함께 ‘3대 외교’로 불린다. ‘외국 의회와의 협력증진, 특정사안에 대한 운영경험 상호 전수, 외교 현안에 대한 국제적인 지지 확보 등을 목적으로 의회차원에서 실시하는 것’이라고 국회사무처는 규정하고 있다. 글로벌 시대에 딱 맞는 취지다.
그러나 실상과 관행은 어떨까? 매년 정치싸움을 일삼다가 12월의 예산결산 법정 기일을 넘기고, 벼락치기 밤샘 심사를 한 후 이듬해 1월엔 산뜻한 마음으로 ‘의회외교’에 나선다. 고생했으니 좀 쉬어야겠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매년 1월엔 공항 출국장이 의원들로 가장 붐빈다. 임시국회나 정기국회가 열리지 않는 따뜻한 5월과 바캉스 시즌인 8월도 의원들이 바깥바람 쐬기 좋은 철이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의회외교 본래 목적은 간데없고, ‘교민-재외공관, 현지 한국기업인, 유학생들 애로사항 청취’가 만만한 출장명목이 돼버렸다. 국내뿐만 아니라 재외동포까지 챙기니 세계에서 제일 친절한 의원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상하원 의원들이 외국에 있는 미국 사람들의 애로사항을 들으러 세금으로 출장 가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
의회외교 특권은 또 있다. 현지 공관 직원들은 국회의원들이 출장 오면 ‘국회의원 해외여행 시 예우에 관한 지침’에 따라 공항 환영-환송, 현지 방문에 따른 업무협조 등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방문 장소로 인기가 높은 남미나 유럽의 도시들에서는 대부분 대사관이 아니라 영사관이 교민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소수의 직원들이 근무하는 영사관에 국회의원들이 특정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방문하면 과연 국회의원 뒷바라지 하며 고유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필자가 몇 년 전 공직에 있을 때 북미 어느 도시에 실지조사 건으로 출장 중 현지 영사로부터 웃지 못 할 에피소드를 들었다. 본국의 국회의원들이 그곳을 방문할 때 가장 난처한 점이 ‘나이아가라 폭포 가이드‘인데, 나이아가라는 세계적인 관광지라서 사시사철 입구에 긴 줄이 선다고 한다. 붐비는 관광지에 단체로 양복을 빼입고 등장한 것도 당황스러운데(다른 나라 관광객은 캐주얼 차림), 줄은 안서고 빨리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을 요구하니 난감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폭포 관리직원 입장에서는 한국의 국회의원이든 중국 관광객이든 똑같이 줄서서 기다리는 것이 당연한 터에 뭐라 말할 수도 없고...
물론 이런 의원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18대 어느 의원은 북한인권과 관련해 북미지역에 인권외교를 펼치면서, 한국의 민간단체가 준비했던 미국 하원 전시납북자결의안 발의가 지지부진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에 의원외교를 활용해 친한파 의원들을 직접 만나 설득함으로써 미국하원 최초로 납북자결의안이 통과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최근 우리나라 국회의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외국의 정치인이나 관련 인사들의 방문이 잦다. 우리 국회의원들도 이제는 의원외교의 본래 취지를 살려야 할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 의원외교의 어떤 부분이 특권인지를 잘 진단하여 과감하게 내려놔야 한다. 단순히 공항 의전실을 안 쓰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무슨 대단한 특권 내려놓기인 양 떠벌이는 모양새가 우습다. 공항 의전실을 ‘포기’해도 국회의원들은 비지니스석 승객을 위한 훨씬 럭셔리한 항공사 라운지가 있으니까.
이옥남 (바른사회 정치실장)
출처 - 미디어펜 2014. 3. 26 칼럼
<원문>http://www.mediapen.com/news/articleView.html?idxno=24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