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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게리 베커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승자의 저주’를 노동시장에 응용했다. 노조가 잘 조직되고 고용을 보호하는 법제가 잘 정비된 나라일수록 실업률이 오히려 높다는 것이다. 승자가 스스로 자신의 발등을 찍은 셈이다. 제도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7일 쌍용차 정리해고 항소심 판결이 있었다. “쌍용차 정리해고는 무효다”라는 판결에 관계자들은 귀를 의심했다고 한다. 해고자 쪽 방청객은 눈물 바다를 이루었다. 귀를 의심했다는 것은 ‘뜻밖의 판결’이었다는 말이다. 물론 모든 판결이 예측 가능한 것은 아니다. 판결은 법률과 양심에 따라 이뤄진다. 하지만 다른 쪽의 이해 관계자를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후속적인 열띤 법리 공방이 예상된다.
항소심의 정리해고 무효 판결의 논거는 ‘쌍용차 자산평가와 정리해고 적정 규모 등 회계적·경영적 판단에 대해 (반드시) 옳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당시 상황이 정리해고를 정당화시킬 만큼 긴절한 상황이라고 보기 어려우며, 또한 정리해고자 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항소심 논거의 타당성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쌍용차가 처했던 당시의 상황과 취한 조치 등을 복기(復棋)할 필요가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직격탄을 맞은 쌍용차는 판매 격감과 신차 개발 부진으로 거의 부도 지경이었다. 현금은 바닥났고, 제품력·영업력·비용구조 면에서 쌍용차는 이미 경쟁력을 잃었다. 돈을 빌려줄 금융기관도, 인수할 기업도 없었다. 쌍용차는 파산을 피하기 위해 이듬해인 2009년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회생법원은 회생 조건으로 임금동결·정리해고 등 과감한 인력 감축과 자산 매각을 요구했으며, 쌍용차는 이러한 인가(認可) 내용을 충실히 따랐다. 구조조정 후 인도 마힌드라 그룹에 매각돼 새 주인을 찾음으로써 회생절차를 종결하게 된다.
정리해고는 당시 파산법원이 내건 조건으로, 쌍용차는 이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를 무효화한 이번 항소심은 파산법원의 결정을 부정한 것이다. 그리고 법정관리 상태에서 2646명의 구조 대상 인원을 고통 분담을 통해 165명으로 줄인 것에 대해서조차 정리해고 ‘회피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은 지나친 주문이 아닐 수 없다.
구조조정은 기업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死鬪)다. 파산을 피하고 해외 인수자를 찾기 위한 최후 수단으로 단행한 정리해고가 ‘무효’라면, ‘선(先) 고용조정, 후(後) 인수·합병’ 방식으로 기업을 회생시키는 것은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것이다. 기업은 ‘계속 기업’으로 남을 때 가치를 지닌다. 따라서 이번 항소심 판결은 구조조정을 통한 기업 가치 제고(turn around)를 부정하는 것이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을 부정하면, 법정관리에 들어가지 않은 기업들은 어떤 자구 노력도 할 수 없게 된다. 이는 사적 자치를 제약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번 판결은 국제적 마찰을 빚을 수도 있다. 고등법원이 느닷없이 마힌드라가 인수하기 전에 쌍용차가 정리해고한 근로자를 전원 복직시키라는 요구를 마힌드라에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국제적 기업 인수·합병(R&D)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번 항소심의 파장은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해고자들은 국회와 청와대를 압박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법원의 무효 판결에 대해 국회와 청와대가 답할 차례’라는 요지의 기자회견도 그 일환인 것이다. 노동계의 연대투쟁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 박근혜정부 출범 1주년인 25일을 기해 ‘국민 총파업’을 벌이겠다는 민주노총의 선언은 항소심 판결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신호일 수 있다.
일자리는 법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법적으로 누군가의 일자리를 보호해 줬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의 잠재적인 ‘일자리 기회’를 앗아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보이는’ 전자만 보고, ‘보이지 않는’ 후자를 보지 못할 뿐이다. 일자리는 소비자의 지갑에서부터 나온다. 그리고 고용을 유지시켜 주는 것은 재화의 품질과 경쟁력이다. 일자리는 노사(勞使) 간 신뢰와 산업 평화를 전제로 한다. 자동차 생산 근로자는 상시적으로 고용되고 있다. 153명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근본적 이유가 해소될 필요가 있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 / 바른사회 공동대표)
출처 - 한국경제 2014. 2. 20 시평
<원문>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402200103303719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