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사회시민회의

> 자료 > 바른사회 칼럼

	美式대통령제 성공조건 - 박효종
	2003-08-29
美式대통령제 성공조건 취임 6개월을 맞은 지난 25일 노무현 대통령은 공무원과의 '온라인' 대화에서 미국식 대통령제로 국정을 운영할 뜻을 비쳤다. 여기에는 "당파를 초월해 직접 국회 및 여야의원들과 대화, 타협에 나서겠다"는 뜻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청와대 대변인은 풀이했다. 대통령의 국정에 대한 포부와 의욕을 인정하는 데 인색할 필요는 없지만, 몇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동안 한국의 대통령제가 저급한 제왕적 대통령제로 전락했던 까닭은 미국식 대통령제를 왜곡 운영해 왔던 탓인데, 그 기억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통령제는 미국 이외의 곳에서는 실패했다는 평이 자자하다. 독재나 권위주의 정치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대통령제가 성공한 것은 비교적 엄격한 견제와 균형의 정신에 입각한 삼권분립, 특히 자율적인 의회와 사법부 덕분이다. 의회는 이미 닉슨 대통령 당시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는 힘을 충분히 과시한 바 있다. 또 2000년 대선에서는 대법원이 대통령을 결정할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지 않았던가. 한편 자율적으로 활성화된 시민사회도 그 열쇠가 아닐 수 없다. 이미 1830년대 토크빌은 미국식 민주주의 성공의 비밀을 수많은 자발적 결사체들의 존재에서 찾고 있었다. 따라서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한 것이 사실이지만, 수많은 견제장치로 말미암아 무소부재의 권력이란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에는 선거에 의해 뽑힌 민선 대통령이 왕정시대의 '나랏님'으로 투영되면서 임기동안 무한 권력을 행사하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는 '무책임한 대통령'으로 군림해 왔다. '동료들간의 일인자'가 아니라 초법적인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존재로 간주되어온 것이다. 대통령은 여론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인사권을 통하여 국세청이나 검찰 등 권부를 장악해 왔으며, 여당의 총재를 겸임하면서 입법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시도때도없이 사면권을 남발하여 사법부를 위축시키고 준법정신을 훼손했다. 이처럼 제왕적 대통령은 청산되어야 할 낡은 정치의 상징이기도 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점은 미국식 대통령제의 운영이 우리 헌법정신과 맞지 않는다는 데 있다. 우리 헌법에서 규정한 권력구조는 대통령책임제와 내각책임제를 혼용한 방식이다. 따라서 책임총리제야말로 우리 헌법에 부합하는 제도인데, 대통령의 그늘에서 일인지하(一人之下)로 처신하며 안주해온 국무총리는 유감스러운 관행일 뿐이다. 노 대통령은 오랫동안 제왕적 대통령에 식상한 국민들의 정서에 유념한 나머지 내년 총선에서 승리한 다수당에서 총리를 뽑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했고 대통령직 인수위에서도 책임총리제 운영을 자랑스럽게 약속한 바 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을 바꾼 이유가 궁금하다. 6개월간의 국정 경험에서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일까. 정치권이 대통령의 이원집정제 구상에 호응하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내년 총선 결과에 자신이 없어서일까. 혹은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여당과의 관계, 대립각을 세운 야당과의 껄끄러운 관계, 소수정권의 한계 때문에 정당정치를 포기하고 행정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세운 것일까. 현 시점에서 우려되는 것은 미국식 대통령제의 선호가 제왕적 대통령제로의 회귀로 이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 아무리 미국식 대통령제에 대한 선호가 당정분리나 당파 초월이라는 선의와 명분에서 출발했다고 하더라도, 노 대통령은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약속을 깼다는 부담을 져야 할 것이다. 또한 그것이 기존 정당과의 껄끄러운 관계를 정상화시키지 못한 소수정권의 한계에서 나온 편의주의적 발상이라면, 순수한 의도나 당당한 명분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셈이다. 朴孝鍾 (서울대 정치학 교수 / 시민회의 정책위원장) 출처 - 세계일보 2003. 8. 29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