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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국회 선진화법’이라 불리는 국회법 내용을 두고 여론이 분분하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법을 불과 1년여 만에 그 당사자들이 재론하는 것이 타당한지는 제쳐두고, 그런 법이 만들어진 배경과 찬반 논의가 전개되는 이유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순서다.
지난해 5월 선진화법이 제정된 데는 국회에서 여야 간 협의 조정 기능이 반신불수 상태에 빠져 몸싸움과 일방적 처리가 다반사였던 데 원인이 있다. 하지만 그 직접적 계기는 전기톱과 해머가 난무하고 최루탄이 터지는 비상식적 폭력 행태에 있다. 이는 법안의 제안 이유를 보면 더욱 뚜렷해진다. ‘…물리적 충돌을 방지하고 안건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심의되며…예산안 등에 대하여는 법정 기한 내 처리될 수 있도록 보완하려는 것’이 구체적인 법안 제안 사유다. 너무도 당연한 것들이 법안으로 만들어져야만 하는 이유로 제시된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법안심사와 예산심사의 순리적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법을 만들어 이를 강제해야만 하는 후진 국회임을 자인한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여와 야로 나뉘어 건건이 충돌하는 모습은 상대방의 주장은 귀담아듣지 않는 유아적 행태이거나, 나는 선 너는 악이라고 하는 이분법적 주관적 행태로 보인다. 어찌 보면 자신들의 지지자에게 보여주려는 지극히 정치적인 일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부터 고착화하기 시작한,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갈등 구조를 정치권이 풀어나가긴커녕 앞장서 확대시키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적지 않다. 최근 한 방송사의 오락 프로그램에 다수의 국회의원이 짝을 지어 나와 개그맨 이상으로 서로 웃고 웃기는 언변을 뽐내던 모습은 불편하고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모습을 국회에서 볼 수 있다면 선진화법처럼 후진 탈피를 위해 법의 도움을 받을 필요는 아예 없었을 것이다.
선진화법이 새삼 도마에 오른 것은 야당(野黨)의 협조 없이 어렵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겠다는 야당 원내대표의 솔직한(?) 발언에 직접적 이유가 있다. 그런 말을 듣고 지지자들은 손뼉치고 기뻐할진 몰라도, 우리 모두를 위해 진지하게 법안을 심사하고 예산안을 검증하는 자세가 아니라 반대를 위한 반대로 비칠 수 있다. 이는 선진화법을 만든 본래 취지와도 거리가 먼 것으로, 입법자들 스스로 자신들의 의도를 무색하게 만드는 일이다.
국회의원들이 이를 조정하고 풀어나가는 역할을 충실히하는 모습을 본 지 너무 오래다. 오히려 자신들의 지지자 편에서만 보려는 일방적인 대처만이 있었을 뿐, 비난을 감수하고 양극단의 갈등 집단을 오가며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안을 고민하고 제시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국회의원은 자신의 지지자들도 염두에 둬야 하지만, 모두의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가는 입법 기능과 예산안 심의 등 행정부 견제의 본원적 역할을 다해야 한다.
선진화법이 재론되는 데는, 정기국회 개회 1개월이 가깝도록 일정조차 합의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현실에도 원인이 있다. 그런데 우리 국민은 오랫동안 봐온 경험을 잊지 않고 있다. 저리 싸우다가도 어느 순간 극적 타결을 보고, 부족한 시간에 쫓겨 수백 개의 법안이 한꺼번에 상정돼 깊이 있는 검토 없이 통과 또는 폐기되고, 350조 원을 웃도는 예산안이 수박 겉핥기 식으로 처리돼 국민의 대의기관으로서의 기능이 초라해질 대로 초라해져 왔던 경험 말이다.
전광석화처럼 통과된 법률이 국민의 삶을 더욱 팍팍하게 만들고, 졸속으로 심의된 예산이 효율적으로 집행되지 못한다면 국회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극적 타결을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지금 당장 머리를 맞대고 협의해서 국민을 위해 일하는 참된 대의(代議)기관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성재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바른사회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13. 9. 30 포럼
<원문>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09270103393719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