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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활력 뺏는 임금체계 - 김태기
	2003-08-19
노동활력 뺏는 임금체계 필자에게 노동경제학 수업을 들었던 졸업생이 얼마 전에 임금 수준은 노동생산성의 가치에 따라 결정된다는 이론이 정말 맞느냐고 질문한 적이 있다.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입사한 지 5년이 지났고 직급이 대리인데 같은 해에 입사한 생산직 사원보다 급여가 적고, 자기는 일이 쌓여 불만이 있어도 어디에 하소연하기 어려운데, 회사는 생산직 사원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한다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최근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기업 생산직 사원의 고액 연봉이 화제가 되고 있다. 필자 주변의 교수는 물론이고 아직 밀려 나지 않고 용케 직장에서 버티고 있는 친구들과 만나 소주 한 잔 기울이다 보면 으레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듯한 이야기가 오간다. 자기는 그 나름대로 착실히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생활비 대기도 힘들다는 이야기부터 고등학교 졸업후 진로를 잘못 선택했다는 이야기까지 거침없이 나오고 있다. 때로는 그 화살을 필자에게 돌리기도 한다. 노동 문제 똑바로 공부하라는 질책까지 한다. 아마도 대부분 임금 근로자들은 이런 얘기가 나오면 맥이 풀리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임금은 일의 대가를 의미한다. 비슷한 일을 하면서도 하청 기업에 근무하거나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데도 비정규직이다 보니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 임금의 절반 정도만 받는 근로자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임금을 많이 받고 있는 근로자들이 직장 생활에 만족하는 것 같지도 않다. 자기보다 임금 수준이 조금이라도 더 높은 직장만 쳐다보고, 그렇지 못한 근로자들의 사정은 외면하면서 임금 인상을 위해 파업을 선택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임금 체계 왜곡의 문제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임금은 노동력이 적소(適所)에 배치되도록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임금 체계가 잘못 되다보니 노동시장이 급격히 활력을 잃고 있다. 대기업 근로자의 이직은 찾아보기 어려운 반면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능력을 갖춰도 고임금 일자리로 갈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한번 비정규직 노동시장에 들어가면 정규직이 되기 어렵다. 노동시장이 양극화 되다 보니 소수의 귀족 근로자와 다수의 일반 근로자로 구분되는 새로운 신분 사회가 도래하고 있다. 이러한 임금 체계의 왜곡은 국가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임금은 젊은 사람들에게는 진로나 직업 선택의 나침반이 된다. 이과계열의 고등학교 학생들이라면 대부분 의대를 진학하려고 한다. 또한 공부 좀 한다고 하는 대학생들은 고시에 매달리고 있고 대학원에 진학을 해 연구원이나 교수가 될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이공계 출신인 엔지니어들은 공장에 근무하기가 싫어 전직까지 준비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러다 보니 국가의 성장 엔진이라고 할 수 있는 기술 개발과 지식 창출의 능력은 후퇴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 생산직 사원의 고액 연봉에 대한 논란을 계기로 노사정은 임금 체계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 지혜를 모아야 한다. 임금을 많이 받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성을 탓하기보다는 노동시장의 공정한 경쟁 질서를 확립해 시스템이 견제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공정한 경쟁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근로자들이 취업을 하는 데 부당한 장애물에 부딪치지 않도록 제도적 여건을 개선해야 할 것이다. 또한 근로자 개인의 이익과 사회 전체의 이익이 일치해 인적 자원이 각 부문에 골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독과점의 문제나 하청 관계의 문제 등 생산물 시장의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 임금 체계의 문제점을 초래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생산물 시장의 경쟁 질서 왜곡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정부는 공정거래 기능을 강화하여 독점 기업의 인건비 상승 부담이 제품 가격 상승으로 소비자에게 전가되거나, 하청단가 하락으로 하청 중소기업에 전가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정부는 이러한 혐의가 있는 기업의 제품 가격 결정 요인을 조사하고 시장 지배력을 남용했다면 시정명령을 내릴 필요가 있다. 기업 차원에서도 임금 체계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 노사 모두가 협력해야 할 것이다. 연공 서열에만 의존해 임금이 결정되는 한 사용자는 인건비 증가 때문에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근로자도 자기 모순에 빠지게 된다. 정규직 근로자의 임금 인상 요구가 커질수록 기업은 비정규직의 활용을 늘려 인건비 증가의 부담을 극복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로자가 맡고 있는 일의 성격이나 근로자가 가지고 있는 능력 등을 임금 결정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 교수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03. 8. 19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