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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대화에 ‘級과 格’이 중요한 이유 - 정진영
2013-06-14
남북대화에 ‘級과 格’이 중요한 이유 남북당국회담이 수석대표의 ‘급(級)과 격(格)’ 문제로 무산되자 국내에서 야당을 중심으로 북한도 잘못했지만 우리 정부도 잘못했다는 양비론(兩非論)이 제기되고 있다. 남북대화 재개가 중요한데 왜 격식(格式)을 따져 모처럼 찾아온 좋은 기회를 놓치느냐고 우리 정부를 비판하는 시각이다. 북한 당국이 격식 문제로 남북대화를 무산시키며 노렸던 게 바로 이 같은 우리 내부의 분열이다. 대남(對南) 협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대한민국 민주정치의 현실이고, 정부가 더욱 신중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북한은 요즘 국제적으로 사면초가(四面楚歌) 상태다. 지난해 12월과 올 2월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3차 핵실험으로 유엔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강력해졌고, 생명줄인 중국마저 시진핑 주석의 취임 이후 북한을 대하는 태도가 사뭇 강경해졌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한·미·중 3국 공조도 어느 때보다 견고해져 가고 있다. 며칠 전에 있었던 미·중 정상회담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점과 비핵화를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을 천명했다. 헌법에까지 핵 보유를 명시한 북한 당국에는 청천벽력과 같은 경고다. 이런 북한이 만만하게 보고 쉽게 돌파구를 찾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북한은 자기들이 원하면 언제든지 남북대화를 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북대화는 곧 돈이라는 공식이 어느새 정립됐다. 한·미·중의 3국 공조를 흔들 수 있는 묘수도 남북대화에서 찾을 수 있다. 남북대화는 북한이 위기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카드인 셈이다. 그런데 지금 북한은 바로 그 카드가 절실한 상황이다. 다만, 그러한 사실을 속이고 국제적으로 약화된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상황 조성이 필요한 것이다. 곧, 대한민국의 내부 분열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 남북협상에서 자기들이 원하는 것은 많이 챙기고 우리가 원하는 건 주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남북대화의 ‘급과 격’에 목을 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자기들은 노동당 외곽단체의 국장급을 수석대표로 내세우며 한국 정부의 차관은 안 되고 장관이 나오라는 억지는 치밀한 실리계산에 기초한 저들의 협상 전술이다. 우선, 북한은 우리가 원하는 비핵화 이슈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의 책임 문제를 남북대화 자리에서 다루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예 이런 문제를 갖고 대화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은 사람을 수석대표로 내세운다. 그들은 오로지 돈이 되는 개성공단 재가동, 금강산 관광 재개,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이슈들만 다루는 회담을 원한다. 수석대표의 격으로 회담의 의제를 통제하려는 것이다. 다음으로, 회담의 성과를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우리의 수석대표로 장관이 나오기를 고집하는 이유는 회담 성공에 더 많은 정치적 책임을 느끼고 더 많은 양보를 받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자신들의 수석대표로 외곽 단체의 중급 인사를 고집하는 이유는 양보는 적게 하면서 회담 결과를 언제든지 걷어찰 수 있기 때문이다. 수석대표의 격으로 회담의 결과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전략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처럼, 회담의 형식이 내용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격이 맞지 않고 불평등한 회담 결과로 신뢰가 쌓일 수 없고 정상적인 남북관계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 지금 남북대화가 더 절실한 쪽은 북한이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대화 그 자체가 아니라 대화의 내용과 성과다. 지금이야말로 북한으로 하여금 남북대화에 성의를 갖고 격식을 갖춰 임하도록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정진영 (경희대 국제대학원장 / 바른사회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13. 6. 13 포럼 <원문>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06130107313719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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