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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자기개발·도전 전파 - 남정욱
2013-06-05
끝없는 자기개발·도전 전파… 新자유주의 드라마 '직장의 神' 김병만을 스타로 만든 건 '달인'이라는 코너였다. 매주 일반인이라면 엄두도 못 낼 미션에 도전해서 감탄과 웃음을 선사했는데 소생이 그 코너에서 본 것은 신자유주의의 노골적인 프로파간다(선전)였다. 끝없이 이어지는 자기 개발과 도전이야말로 신자유주의가 요구하는 대표적인 덕목 아니던가. 박수를 보낸 방청객들은 그 불편한 진실을 알고나 환호했는지 모르겠다. 트렌드에 둔하고 게을러서 드라마 '직장의 신'도 이제야 봤다. 소문은 일찌감치 들었으나 평생을 비정규직으로 살아서 그런지 빤하게 느껴진 까닭도 있겠다. 봤더니 이건 '달인'보다 한 수 위의 신자유주의 드라마 아닌가(좌파 매체들도 이 드라마를 칭찬하던데 대체 뭘 보는지 모르겠다). 주인공 미스 김의 스펙은 어마어마하다. 사무에 필요한 워드프로세서 자격증은 물론이고 한식·양식·일식· 중식 조리사 자격증에 중장비 기사 자격증까지 무려 124개라니 거의 카탈로그 수준이다. 이런 만능의 을이 정규직을 고집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을 택해 준다면 기업의 입장에서는 그 이상 고마울 일이 없겠다(유식한 말로 노동시장 유연성). 드라마 속 비정규직의 이야기는 그저 양념이다. 프리랜서 '수퍼 우먼'을 현실 세계에 접붙이기 위한 장치일 뿐이고 비정규직의 비애라기보다는 제발 '착취'를 당하게 해 달라는 88만원 세대의 절규에 가깝다. 드라마는 끊임없이 암시하고 주문한다. 살아남고 싶다면, 성공하고 싶다면 죽어라 노력해서 더 나은 스펙을 확보하라. '직장의 신'은 직장에서 '신'이 되고 싶다면 그녀처럼 되라는 끔찍한 미션이 펼쳐지는 드라마다. 아니면 서글픈 현실을 감수하든가. 이 헐렁한 드라마를 꾹 참고 몇 회 연달아 본 것은 미스 김 역의 김혜수 때문이다. 팬은 아니다. 그러기는커녕 몇 년 전 스포츠신문에 칼럼을 썼다가 그녀의 소속사로부터 항의를 받은 적도 있다. 영화 '바람난 가족'에서 문소리가 맡은 '호정'이라는 역할은 한국 영화사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멋지고 쿨한 캐릭터다. 원래 이 역할의 주인공은 김혜수였다. 아마 노출 때문에 고사한 것 같은데 각종 시상식에는 아슬아슬하게 입고 나오면서 영화에서만 유독 꺼리는 이유를 알 수 없었고 그래서 슬쩍 꼬집었다. 영화배우라고 하기엔 도대체 뾰족한 대표작도 없는데 다른 연기자들을 다 몰살시키고 단독으로 뜰 만큼 강한 캐릭터를 피해 간 김혜수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운운하면서(화날 만한가?). 김혜수의 화면 장악력은 대단했다. 도무지 합쳐지기 어려운 만화 같은 모습(직장)과 트라우마 있는 내면(카페)의 조화에서 그녀는 성공했다. 상처라는 설정만 있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 내면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을 때, 그걸 디테일로 살려낼 수 있을 때 시청자의 지지가 생긴다. 연기 지침 중에 '눈을 뜨고 울어라'라는 게 있다. 그래야 그 눈물이 보는 이의 가슴을 치기 때문이다. 이번에 하나 새로 배웠다. 눈을 뜨고 우는 것보다 더 파괴력이 큰 것은 울음을 참는 거다. 김혜수는 울지 않았고 울기 직전의 눈으로 그걸 다 표현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녀가 아름답다는 사실도 처음 느꼈다. '직장의 신'에는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이 들어 있다. 입사 동기지만 승승장구하는 황 부장과 정리해고 대상인 고 과장은 이기적이고 뻔뻔한 장규직(오지호 분)과 인간적이고 따뜻한 무정한(이희준 분)의 미래다. 결말은 별로 궁금하지 않다.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 바른사회 운영위원) 출처 - 조선일보 2013. 5. 18 남정욱 교수의 명랑笑說 <원문>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5/17/201305170080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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