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 > 바른사회 칼럼
퍼포먼스의 기본을 알기나 하나? - 남정욱
2013-04-30
퍼포먼스의 기본을 알기나 하나?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은 왜 보나. 선사의 말씀인데 세상에는 이 손가락 때문에 예상치 못한 결과가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1980년대 초반 북한 방송에서는 5·18 기록 영상을 심심찮게 틀어줬다. 이유는 빤한데 문제는 북한 주민이 달이 아니라 '손가락'에 주목했다는 거다. 정확히는 손가락이 아니라 '손목'에. 이럴 수가. 당 간부나 차고 다니는 시계가 시위대의 손목마다 달려 있었던 것이다. 그러잖아도 가끔 해안으로 밀려온 남쪽의 '때깔' 좋은 라면 봉지를 보며 혹시 남쪽이 잘사는 건 아닐까 품었던 의구심에 확신을 심어 준 셈이다. 편성 담당자는 지금쯤 볕 안 드는 어디 외진 산골에서 맨손으로 돌을 깨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88 서울올림픽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은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이유로 자유 진영이 불참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은 그에 대한 보복으로 사회주의권이 외면했다. 다들 이러니 IOC에서 중재에 나섰고 그 결과 어렵게 성사된 것이 12년 만에 동서 양진영이 만나는 88올림픽이었다. 소련의 속셈은 88올림픽을 선전의 장으로 삼아 의식주 걱정 없이 사는 사회주의 소련 인민들의 행복한 삶을 세계에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기획 의도와는 달리 정작 소련 인민들의 시선을 빨아들인 것은 경기장 밖 언뜻언뜻 비치는 서울의 화려하고 역동적인 모습이었다. 서구가 잘사는 건 제국주의적 착취 때문이고 그나마도 일부 계층에 한정된 것이라던 논리에 금이 쨍 갔다. 후일 소련 공산당 간부들은 88올림픽이 뇌사 상태에 빠져있던 소련 사회주의에서 인공호흡기를 제거해 버린 사건이었다고 고백했다. 실제로 3년 뒤 소련이라는 최초이자 최강의 사회주의 국가는 간판을 내렸다. 이 신문 러시아 특파원을 지냈던 동원대 황성준 교수의 책, '유령과의 역사 투쟁'에서 읽은 얘기다. '고양이 받침대' 낸시랭과 그 일당이 얼마 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를 방문해 퍼포먼스를 펼쳤다. 낸시랭은 대통령 사진의 뺨에 뽀뽀를 했고 일당 중 하나는 육영수 여사의 얼굴에 가운뎃손가락을 들이밀었다. 논란이 일자 낸시랭은 예의 손가락 타령을 늘어놓았다. 손가락이 육영수 여사가 아니라 '무지와 폭력'에 물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거라는 설명이다. 무지와 폭력에 물든 사람들이라, 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지난 18대 대선, 여당의 무덤이라는 전남에서 이변이 벌어졌다. 고흥군 도양읍 투표소에서 박근혜 득표율이 60%를 넘은 것이다. 어디냐면 나환자들이 모여 사는 소록도로 육영수 여사가 세칭 '문둥이'들의 눈물과 고름을 닦아주었던 곳이다. 그러니까 육 여사에 대한 보은으로 표를 몰아주었다며 소록도 주민을 '무지'와 폭력에 물든 사람들로 비하한 것이다. 한편 낸시랭의 키스 퍼포먼스는 영화 '보니 앤드 클라이드(한국 제목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를 베낀 것으로 보인다. 영화 속에서 여성 강도 보니는 사로잡은 보안관의 뺨에 키스를 선물한다. '당신, 나한테 진 거야' 하는 모멸의 뉘앙스다.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뭘 해도 상관없다. 망자를 욕되게 하는 건 예절하고는 담 쌓고 산다는 증거다. 낸시랭, 억울하다며 특유의 잡아떼기로 이렇게 항변할지 모르겠다. "어머, 상상력도 풍부하셔. 제가 언제 그런 깊은 생각을 했다고 그러세요. 그리고 저, 보니 앤드 클라이드라는 영화는 처음 들어봐요. 그런데 영화에서 보니는 어떻게 돼요?" 소생, 낸시랭의 평소 말투를 빌려 요렇게 대꾸해주고 싶다. "죽어요~ 앙."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 바른사회 운영위원) 출처 - 조선일보 2013. 4. 20 남정욱 교수의 명랑笑說 <원문>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4/19/2013041901453.html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