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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금리 시대, 금융의 맥(脈) 짚는다 - 윤창현
	2012-12-18
저금리 시대, 금융의 맥(脈) 짚는다 "가계 부채, 지뢰밭 수준…단계적 해결책 필요" "금융, 혼내더라도 제 역할 돕는 당근이 있어야" 글로벌 금융 위기로 촉발된 경제 한파주의보는 금융업이라고 해서 비껴가지 않았다. 저금리, 저성장 국면은 금융업에도 위기의식을 불러오고 있다. 이 같은 시점에서 금융정책의 맥(脈)을 과외 선생님처럼 콕콕 짚어주는 곳이 바로 한국금융연구원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지난 1991년 국내 최초의 금융 전문 연구 기관으로 설립된 뒤 최근까지 금융정책 당국과 보조를 맞춰 방향성을 제시하는 싱크 탱크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오고 있다. 현재 한국금융연구원의 수장을 맡고 있는 이는 한국 경제학의 대표 주자로 손꼽히는 윤창현 원장. 그는 "학술지에 실리는 연구 내용도 중요하지만 현장을 중심으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는 금융 현안에 대한 해법을 찾아 경제의 미래를 제시해야 하는 것이 연구 기관에 내려진 과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직관적인 해석과 거침없는 입담으로 유명한 윤 원장을 찾아, 조세일보는 금융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 학술지용 금융 연구 'No'…현실 대안 모색 'Yes' = 올해 3월 취임한 윤창현 원장은 지난 한 해에 대해 "'대과(大過) 없이'라는 말의 의미를 새삼 깨달았다'는 말로 소회를 전했다. 큰 잘못이나 큰 일이 없이 조직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조직을 이끌며 새삼 느끼게 됐다는 것. 윤 원장이 취임 이후 목표했던 것은 외부에서 용역을 받아 수행하는 수동적 연구와 중·장기 계획에 의한 능동적 연구의 비중을 균형 있게 맞추는 것이었다. 금융위원회 등 정부에서 정책 방향의 수립을 위해 긴급하게 연구 과제를 맡긴 경우에는 그에 대한 즉답을 해야 하고, 자체적으로 금융 현안을 발굴해 연구 및 발표를 하게 되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서를 통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 양보할 수 없는 중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윤 원장은 올해 연구 과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가계 부채에 대한 미시적 분석'을 꼽았다. 정부의 요청으로 인구 50만명의 데이터를 분석해 연구원이 내놓은 미시 분석 보고서는 다양한 각도에서 가계 부채의 문제와 대안을 제시해 눈길을 끈 바 있다. 그는 "지난 5~6월부터 연구를 시작해 상당 기간 연구가 진행됐는데 전 국민적 관심 사항이라는 점에서 하반기 통틀어 가장 중요한 연구로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연구원 자체의 연구 과제로는 '채권시장에서 외국인의 원화 표시 국채 매입의 동향 분석'을 꼽았다. 연구원에서 '투박스'(Two Park's)로 불리는 박성욱, 박해식 박사가 진행한 이 연구는 한국 등 아시아의 주요 국가의 외국인 국채 매입이 늘면서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훼손되는 부분을 지적했는데, 검토가 거의 끝나 곧 출간될 예정이다. 윤 원장은 "학술지에 실리는 연구 중에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며 "연구원은 일종의 '범위의 경제'(Economies of scope)를 추구하며 거시, 국제, 은행, 증권, 보험, 자본시장 등 금융에 속한 수많은 과제들을 망라하며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보고서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규모의 경제'는 클수록 효율성이 높아지고, '범위의 경제'는 다양한 범위를 다룰수록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는데, 연구원의 경우 금융을 보다 폭넓게 보면서 현장을 중심으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제 역할이라는 설명이다. 그의 말대로 연구원에는 다양한 분야에 정통하면서 정예화된 연구원이 40여명에 이른다. 일부는 금융위원회를 비롯해 기획재정부, 금융감독원에 자문관으로 파견돼 있고, 아시아개발은행(ADB) 부설 연구소에 파견도 돼 있다. ■ 가계 부채, 지뢰밭 수준…"성급한 대안은 금물" = 윤 원장은 한국 금융의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윤 원장은 "기본적으로 주식 등의 볼륨이 줄어들고 있으며, 보험회사의 경우 저금리 기조 탓에 이자가 축소돼 어떻게 돈을 굴려 가입자를 만족시킬까 하는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또 "은행은 가계 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며 "권역별로 각자의 생존 전략을 추구해야 할 만큼 힘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가계 부채 문제를 '지뢰밭'에 비유하며 성급한 대안을 내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윤 원장은 "한국의 가계 부채 문제가 당장 집값이 폭락하고 경제가 엉망이 될 정도는 아니지만 리스크가 상당 부분 상존한다"며 "가계 부채는 지뢰밭과 같아서 금세 터지지 않지만 잠재적 위험이 상당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930조원에 달하는 가계 부채는 정부의 재정으로 해결하기에 너무나 위중하다"며 "정부는 뒤에서 정책 조율을 하고 금융회사들이 각각의 가계 부채에 주치의가 되어야한다"고 말했다. 단기 채무 조정 프로그램인 프리워크아웃(pre-workout)이나 신용 회복 제도 등을 통해서 단계적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뜻이다.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의가 활발한 금융 감독 체계 개편과 경제 민주화에 대해서도 윤 원장은 가시 있는 충고를 해 눈길을 끌었다. 윤 원장은 "금융회사의 건전성 규제와 금융 소비자 보호 내지 영업 행위 규제를 나눠서 금융 감독 기관을 독립시키자는 주장이 최근 나오고 있다"며 "이 경우 피감 기관 입장에서는 시어머니가 둘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이에 소요되는 비용은 지금의 1.5~2배가 될 것이며, 서로 다른 정책 방향으로 피감 기관에 혼선을 줄 뿐만 아니라 문제가 터지면 서로의 잘못으로 미루는 상황도 예견된다는 것이 그의 예상이다. 그는 "저축은행 부실 사태를 보면서 도대체 감독을 어떻게 했기에 저 모양일까 분노한 적이 있었다"며 "지난 1990년 외환 위기 때 감독이 제대로 안됐다는 반성에서 금융 감독 기관을 하나로 통합했는데, 이를 다시 분리한다고 좋은 결과가 나올지는 잘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최근 대선 후보들이 앞다퉈 경제 민주화를 강조하는데 사실 이 용어는 정의 자체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며 "경제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정리된 정책들에 누군가 반대를 했을 때 '민주화를 하지 말자는 거냐'며 반민주 인사로 몰릴 수 있다"고 그 위험성을 전했다. ■ 금융에 관한 오해 혹은 진실 = 윤 원장은 최근 금융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들에 대해서도 '오해'가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은 시대적 흐름이라고 하지만 금융업 자체를 부도덕하게 보고 단죄하려는 분위기에는 잘못된 편견이 존재한다는 것. 윤 원장은 "금융 등 서비스업에 대해 우리 사회는 묘한 편견을 가진 게 사실"이라며 "금융은 눈에 안 보이는 서비스를 제공하며, 금융회사가 수수료 등으로 이익을 내는 것을 나쁘게만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또 "서비스는 절대로 공짜가 아니다. 예를 들어 은행들의 무인점포는 목이 가장 좋은 곳에 있고, 냉난방 시설이나 CCTV 등 수많은 비용을 통해 유지되고 있는데, 간혹 사람도 없으면서 왜 송금 수수료를 받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무형의 서비스에 대해서도 적절한 보상을 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강변했다. 최근 서민금융, 가계 부채, 따뜻한 금융이 주된 관심사로 떠오르자, 금융 산업을 건전하게 육성하자는 논의는 물밑으로 가라앉아 있다는 것이 그의 지적. 그는 현행 정부의 금융 규제와 관련해서도 "바젤 규준이나 금융안정위원회 조치 등 선진국에서 주도하는 금융 규제의 흐름들이 우리나라에도 거의 그대로 도입되고 있다"며 "금융을 어떻게 키워 나갈지를 고민하고, 혼내더라도 제 역할을 잘할 수 있게 하는 당근도 있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윤 원장은 자신이 보수주의의 대표 논객으로 알려진데 대해서도 일부 오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 바른사회시민회의 등 보수 성향의 단체에서 사무총장 등을 지내며 기업 정책에 대한 소신 발언을 했는데, 이때 이른바 '오른쪽'으로 분류됐다"며 "하지만 아스팔트 우파식의 '김정일 때려잡자' 등 극우적 발언을 한 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육성되는 과정은 극적이었는데 잘 키워놓고 미워만 하는 것은 아닌지, 자꾸 배를 가르려고 드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며 "일부 대기업들이 황제, 세습, 선단 경영을 한다고 욕하는데 이는 일부 타당한 면도 있으며, 이로 인해 과감하고 신속한 결정이 이뤄지는 장점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지배 구조든 항상 장단점이 혼합돼 나타나는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어 경쟁력이 있으면서도 지배 구조가 투명한 기업은 '모두가 잘사는 아름다운 세상'처럼 비현실적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 대자보로 바뀐 인생…미국서 신(新) 금융을 보다 = 윤 원장이 택한 인생의 첫 경로는 금융이 아닌 물리학이었다. 윤 원장은 1960년 7월생으로 대전고를 거쳐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그가 인생의 방향타를 바꾼 것은 당시 대학 내를 가득히 메웠던 대자보. 당시 대학가는 한국의 자본주의와 국가의 근본적 성격을 둘러싸고 벌였던 사회구성체 논쟁으로 시끄러웠고, 학내 대자보에는 붉고 파란 매직펜으로 적은 '신(新) 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라는 글씨가 넘쳐 났다. 이 같은 대자보들을 보며 그는 경제의 중요성을 새삼 인식했고, 학사 편입 시험을 통해 경제학과에 편입했다. 이후 대학원을 거쳐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하며 일생일대의 전환점을 맞는다. 당시 그는 선물과 옵션 등, 국내에서 생소한 개념의 파생 상품 금융거래를 공부하게 됐고, 이에 상당한 흥미를 느꼈다. 졸업논문도 '선물 가격 안에 들어있는 리스크 프리미엄의 크기 측정'이라는 주제를 다뤘다. 마침내 그가 귀국해 한국금융연구원에 부연구위원으로 취직했을 당시 국내 자본시장은 거래소를 어떻게 만들지와 선물·옵션을 어떻게 도입하느냐로 분주했고, 이 같은 상황에서 그는 주가지수 선물(1996년)과 옵션(1997년)의 도입을 위한 초기 연구를 맡아 당시 재정경제부 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윤 원장은 "금융을 학문으로 하기도 하고 실제로 하기도 하는데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면 학문이든 현업이든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앞으로 새로운 차원에서 금융이 발전해야 하는데 사회의 다른 분야와 평화를 유지하면서 갈등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금융은 사회의 다른 분야와 공조를 잘하면서 수익성과 건전성을 추구하고, 동시에 금융 소비자 보호 같은 가치도 추구해야 한다"며 "이들의 비중을 잘 조정하는 문제는 어렵지만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전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바른사회 운영위원) 출처 - 조세일보 2012. 12. 18 종합 <원문>http://www.joseilbo.com/news/htmls/2012/12/2012121816492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