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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친아'에서 '반면교사' 된 日원전 - 손양훈
2012-03-13
'엄친아'에서 '반면교사' 된 日원전 日 원전사고 이후 원자력 산업 큰 위기… 한국, 사용후 핵연료 아무 정책도 안 정해 전기 싸게 쓴 만큼 걸맞은 책임도 져야 원자력에서 일본은 우리에게 교과서 같은 존재였다. 두 나라는 동아시아 지역에 있는 이웃이고 처지도 비슷하다. 부존 에너지도 별로 없고 고도 산업화로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일본은 여러모로 우리보다 앞서가는 나라였고 베끼고 따라 하고 싶은 모델이었다. 말하자면 요즘 말로 얄밉고도 부러운 '엄친아'였다.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 원자력을 시작하였고 원자력 발전소도 우리보다 두 배 이상 많다. 일찍이 미·일 원자력협정을 개정하여 재처리에도 착수하였다. 더 나아가 재처리한 플루토늄을 사용하는 고속증식로도 만들어 이른바 핵연료 주기를 완성했다. 이는 원전 연료 농축에서 원자력발전,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와 고속증식로, 폐기물 저장과 관리, 유리화와 영구 처분 같은 전 과정을 자기 힘으로 완성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최근 일본은 감당하기 어려운 곤경에 처해 있다. 지난해 봄 발생한 후쿠시마의 원전 사고는 원전 중심 에너지 정책에 대한 일본 국민의 신뢰를 흔들고 있다. 원전은 사고 이후 대부분 멈춰 있고 언제 재가동할지 모르는 상태이다. 고속증식로는 화재 이후 가동 중지 상태로 남아 있다. 일본의 원자력 산업은 총체적인 위기 국면을 맞고 있다. 우리나라의 원자력 산업은 원자력발전에만 주로 한정되어 있다. 최근 UAE에 원전을 수출하는 개가를 올리면서 우쭐하고 있다. 하지만 핵을 사용한 이후를 책임지는 사후 과정에 대한 준비는 일본에 비해 아직 멀었다. 일본이 대학생이라면 우리는 초등학교 졸업반쯤 된다. 우리는 겨우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건설 중이고, 고준위 폐기물 관리는 아무런 정책도 정해진 바가 없다. 재처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영구 처분하는 것으로 방향을 정한 것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사용 후 핵연료를 현재까지 발전소에 임시 저장하고 있다. 물론 조만간 가득 찰 것이며 이를 어떻게 할 것인지 방향을 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렵고 난감한 상황이다. 사용 후 핵연료 처리 문제는 모두가 관심을 갖지 않은 상태에서 미루다가 어느덧 그렇게 되어버렸다. 일본의 정치는 이 문제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다루었다. 반면에 우리 정치가들은 이런 문제는 표가 안 된다고 덮어 두고 싶어했다. 전기를 싼값에 쓰는 데만 열중했지 책임은 외면해온 것이다. 원전이 좋든 싫든 값싼 전기는 우리가 썼고 이제는 책임을 져야 한다. 방사성폐기물 관리는 원전 찬성 여부와 상관없는 문제이다. 전기를 쓴 사람이면 친핵(親核)이든 반핵(反核)이든 혹은 비핵(非核)이거나 탈핵(脫核)이라도 피해갈 수 없는 엄중한 책임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일주년을 지나며 우리의 엄친아는 지금 엄청난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지금 와서 쉽게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에너지 정책의 대전환도 예고하고 있다. 일본이 선택했던 핵연료 처리 방법은 엄청난 돈을 썼지만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다. 이웃 나라의 어려움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님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일본이 선택한 방법이 아니라면 우리에게 맞는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자원 빈국인 데다가 인구에 비하여 국토가 좁다. 에너지 안보를 위한 선택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원자력발전과 관련하여 엄청난 사회적 갈등도 겪었고 현재도 진행형이다. 다양한 이해관계와 극단적으로 서로 다른 의견들을 조정해야 한다. 이는 정치의 몫이다.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는 갈등을 조정하고 합의해서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다. 정치의 계절이 오고 있다. 이런 문제를 정면에서 제기하고 공론화하는 정치, 국가의 미래를 염려하는 정치를 보고 싶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 바른사회 운영위원) 출처 - 조선일보 2012. 3. 10 기고 <원문>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3/11/201203110149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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