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 G9 한국' 아직 갈 길이 멀다

 '남한이 경제 기적(economic miracle)을 이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포린어페어스(Foreign Affairs)지의 1961년 10월호에 실린 미국 명문대 유명 석학의 단언이다. 그는 이런 비관적 전망의 근거로 1960년의 남한 총수출은 평균 2000만달러인 데 비해 군사물자를 제외한 총수입은 2억달러에 달하는 당시 무역 상황을 들었다. 대한민국은 주로 오징어와 생사, 무연탄과 텅스텐, 철광석 등을 팔아 1964년에야 총수출 1억달러를 달성했다. 그랬던 대한민국이 이제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무역 1조달러 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무역으로 다져진 경제적 저력을 바탕으로 작년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개발원조기구(DAC)에 가입함으로써 역사상 처음으로 원조 수혜국에서 원조 공여국이 되었다. 대한민국은 세계 경제발전사에 기록될 경제기적을 일구어 냈을 뿐 아니라 개발도상국가 발전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것이다. 우리 국민 모두가 큰 자부심을 가져 마땅한 일이다. 세계 곳곳을 누빈 기업인, 국내외 생산현장에서 피땀 나게 일한 근로자와 경영인, 무역 주도의 국가 발전전략을 수립하고 정책적 지원을 위해 최선을 다한 정부와 공무원, 묵묵히 참고 저축해온 시민과 농어민, 어느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가야 할 길이 멀고, 자만할 겨를이 없다. 무역 1조달러 달성 이후의 새로운 무역 지평을 열어 빠른 시일 내에 일류 선진국 대열에 합류해야 한다. 오늘날 세계 무역환경은 과거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경쟁 속에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 추진이 지연된 가운데,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국가 간 혹은 지역 간 협력을 위한 지역주의 추세가 가속화되고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이러한 추세를 외면하지 않고 공세적인 전략으로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동아시아 지역의 자유무역협정(FTA) 허브로 부상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경제권인 유럽연합(EU)과의 FTA가 이미 발효 중이며, 세계 최대 단일시장인 미국과의 FTA가 내년 초 발효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큰 발전 잠재력을 갖춘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과 인도와의 FTA가 이미 발효 중이다. 이제 우리 업계는 이들 FTA가 제공하는 잠재적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여야 한다. 무역 G9으로 발돋움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무역기반을 넓혀나가는 일은 힘들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무역전략으로 서비스 산업 경쟁력 제고가 중요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상품수출은 세계 7위국이지만, 서비스수출은 세계 15위로 저조하다. 상품과 서비스 수출의 균형 있는 무역구조가 될 수 있도록 정책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취업 유발효과가 상품수출의 두 배가 넘는 서비스수출을 늘려 더 많은 고부가가치의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보건·의료, 교육, 관광, 컨벤션, 물류 등 발전 잠재력이 큰 서비스 분야의 과감한 규제개혁과 자율화가 시급하다. 또 앞으로 세계적으로 수요가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는 녹색산업의 수출산업화도 중요하다. 한편 국제무역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협업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물론 모든 면에서 우월한 입장에 있는 대기업이 이 일에 앞장서야 한다. 이것은 중소기업뿐 아니라 대기업 스스로를 위하는 길이기도 하다.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 바른사회 고문)

출처 - 조선일보 2011. 12. 7 기고 <원문>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12/06/201112060296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