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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의 결단을 바란다 - 김일영
	2003-06-02
대통령의 결단을 바란다 노무현 정부가 어려운 상황에서 취임 100일을 맞고 있다. 국정에서 취임 100일은 참으로 중요한 시기이다. 이 기간에 대통령은 새로운 비전과 국정 구상을 내놓고 그것을 추진할 수 있는 잠재적 역량이 있음을 국내외에 과시해야 한다. 이를 통해 대통령은 국제사회에 신뢰를 심어주고 자국민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갖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난 100일 동안 노무현 정부가 보여준 모습은 신뢰구축이나 희망형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회집단은 제 목소리 내기에 바빴고, 경제는 곤두박질쳤으며, 정치는 밥그릇싸움에 몰두했고, 행정은 갈팡질팡했다. 시행착오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노 대통령에게는 아직 만회할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이를 위해 노 대통령은 지나간 100일에서 적어도 다음 두 가지 교훈을 얻었으면 좋겠다. 첫째, 모든 정책에는 공짜가 없다는 점이다. 인간사회에는 희소한 가치의 배분을 둘러싸고 갈등과 대립이 있게 마련이다. 이러한 가치배분을 둘러싼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정치다. 그러나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정치나 정책은 없다. 그래서 정치지도자는 결단을 내려야 하고 정책결정자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러한 결단과 선택에는 반드시 비용이 따른다는 점이다. 대미관계 회복에 주력하면 국제신인도는 높아질 수 있으나 대북관계에서 부담을 안게 되고, 노 대통령의 지지층으로부터 섭섭한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노사문제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을 둘러싼 대립에서도 어느 한편을 들면 다른 쪽으로부터 볼멘소리를 듣게 되고, 그로 인한 경제적·사회적 부담 또한 져야 한다. 그래도 노 대통령은 결단과 선택 및 그에 따른 비용 지급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것을 피하거나 후임자에게 전가하려 할 때 그는 포퓰리즘에 빠지게 된다. 그럴 경우 국가는 장기적으로 더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하며,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게 된다. 둘째, 정치는 시간의 예술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좋은 정치적 결단이나 선택도 적절한 때를 놓치면 효과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이 점에서 우선 급한 것이 노 대통령의 친인척 및 측근이 관련된 의혹을 해명하는 일이다. 이런 문제는 방치하면 눈덩이효과를 일으키면서 5년 내내 국정의 발목을 잡게 된다. 김대중 정부 5년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당시 정부는 옷로비, 가신, 아들 비리의혹 등 친인척과 측근이 관련된 문제에서 적절한 처방 시기를 놓쳤다. 그 결과 호미로 막아도 될 문제를 가래로도 못 막는 것으로 키우고 말았다. 사실 이 문제는 대통령 자신과 형, 그리고 후원회장 등 측근 인사가 서로 보증과 변제관계로 얽혀 있는 상당히 복잡한 문제다. 따라서 대부분의 국민들은 의혹이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지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국민들은 먹고살기도 어려운 판국에 또 대통령과 관련된 의혹이 불거져 나왔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 짜증나 있다. 그 사이 대통령이 몸소 나서 한 차례 해명을 시도했지만, 국민들의 의혹을 풀어주는 효과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이런 상태에서 관련자들이 모두 잠적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대통령과 관련 당사자들이 모두 나와서 사실관계를 진솔하게 밝히고 사과할 건 사과하며,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진실은 언젠가는 드러나게 마련이므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우리 경제는 한은 총재 스스로가 “위기상황이 심화되고 있다”고 토로할 정도로 좋지 않다. 따라서 대통령은 이런 사소한 문제를 하루빨리 떨어버리고 경제 살리기에 매진해야 한다. 이를 위한, 대통령의 실기(失機)하지 않는 결단을 기대해 본다. 김일영 (성균관대 정치학 교수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조선일보 2003. 6. 2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