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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지배구조도 개선하자 - 이석연
	2003-05-27
국정지배구조도 개선하자 그 동안 정부와 시민단체는 경제계에 대해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면서 기업의 투명 경영과 사회적 책임, 소액주주의 권익 보호를 강조해 왔다. 그 개선책으로 주주대표소송제, 집중투표제, 사외이사제, 출자총액제한제도 등을 실시하고 있으며, 증권집단소송제의 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제 증권집단소송제의 도입을 계기로 권력 행사 과정의 헌법, 법률 적합성과 투명성, 책임성을 강조할 시점이 됐다고 생각한다. 즉,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 요구에 상응한 국정지배구조(government governance)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 　 국정지배구조 개선의 요체는 권력을 담당하고 있는 각 주체가 헌법과 법률이 정한 권한에 맞게 그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우리 사회의 권력 집중 현상을 개선, 기업의 소액주주에 해당하는 국민이 주권자로서의 제 역할을 하는 구조로 바꾸는 것이다(임영철 변호사의 `대통령의 나라에서 국민의 나라로' 참조). 제왕적 대통령제는 우리 헌법 구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헌법과 법률이 정한 권한과 절차를 무시하고 역대 대통령(또는 대통령비서실)이 권력을 행사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에 규정된 권한만 행사하고 책임도 그에 상응하여 지면 된다. 총리나 장관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권한은 헌법상 국군 통수권, 영전 수여권, 고위 공직자의 인사권, 사면권 등의 고유 권한과 법률상 총리, 장관 등 중앙행정기관의 장에 대한 지휘, 감독권에 한정된다.나머지 정부의 모든 권한은 각 법률에서 행정 각 부처의 장관 등의 권한으로 정해져 있다. 정부조직법도 이 점을 명백히 하고 있다(제11조 제1항). 따라서 대통령이 행정 각 부처의 장관의 권한에 속하는 개별 사안에 대해 일일이 직접 관여하는 것은 위법일 뿐만 아니라 대통령직의 과부하(過負荷) 현상을 낳게 하는 요인이 된다. 또한 장관이 법률상 자신의 권한에 속하는 사안에 대해 대통령의 눈치나 보면서 지시를 기다리는 것은 직무유기다. 한 마디로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다. 대통령비서실 도 대통령의 권한만을 보좌하는 기능에 그쳐야지(정부조직법 제14조) 지금까지처럼 정부의 `몸통' 노릇을 하는 잘못된 폐단은 시정돼야 한다. 헌법과 법률 어디에도 대통령비서실에다 행정 각 부처에 속하는 일에 대해 간섭하고 각 부처를 대신하여 정책 사항을 발표하라는 규정은 없다. 이에 필자는 정부와 시민사회에 대해 국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법률의 제정 운동을 제안한다. 첫째, 기록남기기 운동과 전자결재법의 제정이다. 기업의 경영 실적이 투명하게 공개돼야 하듯이 사후 책임 소재를 따지기 위해서라도 모든 공적 조직에서는 그 권한 행사를 모두 기록하고 그 기록을 보존,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주권자인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이기도 하다. 우리의 경우 선조들에게 부끄러울 정도로 권력 행사 과정에 대한 공적인 기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 기록부실공화국의 반열에 서 있다. 예컨대 대형 국책사업만 하더라도 그 추진 배경, 결정 주체 등에 관한 회의록 등 기록이 전무하여 사후에 그 책임 소재를 따지기가 어렵다. 각종 국정 현안에 대해서 누가 어떤 권한을 어떻게 행사했는지를 명백히 기록으로 남겨 놓음으로써 숨어서 권한을 남용하는 행태를 없애야 한다. 대면결재를 금지하고 모든 문제를 전자결재로 통일시켜야 한다. 전재결재를 하게 되면 사후에 문서를 조작한다거나 의도적으로 문서를 파기하는 등의 비리는 최소한 막을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장관급 이상 고위공직자의 집무실에서의 대화와 전화통화는 모두 녹음해서 보존했다가 일정 기간이 경과한 뒤에 공개하는 방법도 필요하다고 본다. 이것이 투명행정, 책임행정의 지름길이자 공무원에 대한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전제가 된다. 이를 위하여 공적기록의 보존 및 공개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전자결재법 정도는 제정할 필요성이 시급하다. 　 둘째, 판공비 폐지에 관한 법률제정운동이다. 장관이나 공기업의 장, 지방자치 단체장 등 각종 기관장들이 한 해 쓰는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이르는 각종 판공비는 그 내역이 불투명한 기관장의 비자금에 불과하다. 무슨 이유로 공금을 자기 돈 쓰듯 먹고, 마시는 데 쓰는 것인지 국민적 설득력이 전혀 없다. 명목상 판공비뿐만 아니라 온갖 명목으로 숨겨져 있는 판공비는 선진 외국의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폐지돼야 한다. 우리의 정치 문화적 풍토에서 공직이나 공기업 기관장 자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온갖 작태의 하나가 봉급의 몇 배, 몇십 배에 달하는 판공비란 잿밥의 마력도 그 한 몫을 하고 있다. 우선, 청와대부터 판공비를 없애야 한다. 그러면 다른 정부기관도 따를 것이고 결국 민간기업의 비자금 조성 관행과 분식회계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물론 국가원수의 정당한 업무수행에 필요한 돈은 예산의 범위 내에서 얼마든지 투명하게 집행할 수 있다. 　 오랜 관행으로 자리잡은 판공비를 예산편성 때 없애는 것이 사실상 어려운 점을 감안하여 판공비를 폐지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대신 판공비에 쓰는 예산을 공무원의 봉급으로 편입시켜 생활비로 돌려주어야 한다. 다만 직원들이 경조사를 당한 경우 등 기관 운영비가 필요하다면 일정액을 기관예산으로 편성, 그 용도로 사용하면 된다. 당장 판공비를 폐지할 수 없다면 그 사용 내역을 사용한 다음날 그 기관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국민대표소송법 내지 납세자소송법 제정의 필요성이다. 권력 담당자들의 책임 의식을 고취하고 정책결정 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서, 정책결정자들의 잘못(고의, 과실)으로 예산이 낭비되거나 권한의 남용 등으로 국가나 개인에게 손해를 끼쳤을 때에는 국민이 직접 소송의 당사자가 되어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국민대표소송법' 내지 `납세자소송법'의 제정이 이뤄져야 하리라고 본다. 현행 법제상 선심행정, 즉흥행정 등으로 인한 예산 낭비, 현저한 권한 남용 행위 등에 대해 납세자인 국민이 직접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전무하다. 납세자인 국민의 입장에서는 행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은 기업의 투명경영과 책임경영 못지 않게 중요한 문제다. 　 정책 판단의 잘못 등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거나 사법적 판단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마치 확립된 이론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권력 행사 과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의 확보라는 헌법적 요청에 우선하지 못한다. 정책결정과 집행 과정이 다양하고 일률적인 잣대로 판단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권한 행사 과정의 기록이 투명하게 남아 있는 한 법률로 유형화하여 책임 추궁을 하는 것은 가능하고 또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이석연 (변호사 / 前경실련 사무총장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문화일보 2003. 5. 27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