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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정수도 밀어붙일 일인가 - 류동길
	2003-04-15
행정수도 밀어붙일 일인가 수도를 옮기는 일이 기정사실로 굳어지려 한다. 건설교통부는 ‘올 상반기 현지조사→2004년 상반기 대상지 결정→2007년 착공→2010년 수도이전’ 계획을 발표하고 수도 이전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충청권 의원들은 물론 자민련 의원들은 이 문제를 놓고 힘겨루기 양상을 보인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표 계산을 하고 있다.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정치인들의 사정을 아무리 이해하더라도, 국가적 대사가 특정 지역 출신들의 정치적 입지 강화에 이용된다면 이거야말로 큰일이다. 행정수도 이전은 바람직한가, 그렇다고 해도 지금 서둘러야 하는가, 이전하면 현재 서울이 안고 있는 문제들이 해소될 수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느 질문에도 그렇다는 답변은 나오지 않는다. 왜 그런가. 첫째, 수도 이전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없다는 점이다. 주로 지역이기주의에 바탕을 둔 주장이 무성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행정수도 이전을 대선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됐으니 이미 국민적 합의를 얻은 것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노무현 후보는 집권하면 국민투표를 통해 이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국민투표를 거치지 않았으니 국민적 합의는 도출됐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이제 국민투표라는 말도 꺼내지 않고 기정사실화해서 밀어붙이려 한다. 전문가들의 분석과 검토를 거쳐 국론을 모으고 경제적 부담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절차를 거치든 국민의 뜻을 물어야 한다. 둘째, 수도 이전 문제는 지금의 상황에서 서두를 과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에게는 당장 풀어가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지금의 경제 상황은 1997년에 버금가는 위기 상황이다. 세계 경제 불황과 북핵(北核) 등 환경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한국 경제는 경쟁력을 잃고 있다는 게 문제다. 국력을 수도 이전에 쏟을 때가 아니다. 우리에게 그럴 여력도 없다. 수도 이전을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이 계획 추진에 큰 무리가 없다고 주장한다. 착공 시기는 2007년 하반기니까 그때까지 이전 계획을 단계적으로 추진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경제 사정을 탓하며 시기상조라고 몰아붙일 수 없다고 한다. 문제의 본질은 시기가 아니다. 천문학적으로 들어갈 경제적 부담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그보다도 수도 이전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도 형성되지 않았는데 이를 추진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다. 셋째, 수도를 이전하더라도 현재 서울이 안고 있는 문제가 해소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이전에 따르는 분산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수도권 집중의 해소와 국토의 균형 발전을 위해 수도권 기능을 분산해야 한다는 주장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수도 이전이 해결책은 아니다. 소설가 이호철은 ‘서울은 만원이다’에서 산업화·도시화로 개발 시대의 막이 오르던 1960년대 중반, 그늘진 서울의 밑바닥 인생을 해학적으로 그려낸 바 있다. 소설의 제목이 말해주듯 서울은 오래 전에 만원이 됐다. 그러나 서울의 과밀화를 푸는 길을 수도 이전에서만 찾으려는 것은 너무 단순한 논리다. 불과 인구 50여만 명을 수용하는 행정수도 건설로 서울의 과밀 해소가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어리석은 일 아닌가. 수도 이전보다 중앙권력의 지방분산으로 지역 균형 발전을 꾀하는 게 옳다. 넷째, 수도 이전은 국가적 백년대계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역이기주의가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수도를 제대로 건설하는 데 수십 년이 걸린다. 5년 임기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에 맡길 일이 아니다. 건교부가 앞장서서 서두를 일은 더욱 아니다. 땅 파고 건물 짓는 공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시작하고 보자는 것은 위험하기 그지없다. 만일 행정수도 건설 사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중단되는 일이라도 생긴다면 국력의 낭비는 어쩔 것인가. 경부고속철도의 경우, 이미 오래 전에 숱한 검토를 거쳐 노선이 확정됐고 공사가 진행돼 왔다. 그런데 이미 확정된 노선이 환경 문제 등으로 논란이 일자 노무현 대통령은 공사 중단과 재협상을 지시하지 않았는가. 이런 것을 보더라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가적 사업이 중단되거나 변경되는 등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백년대계의 사업을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통일된 나라의 미래를 생각해보자. 그때 수도가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류동길 (숭실대 경제학 교수/시민회의 회원) 출처 - 문화일보 2003. 4. 15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