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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총련부터 변해야 - 박효종
2003-03-20
한총련부터 변해야 노무현 대통령은 법무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강금실 법무부 장관에게 한국대학생총연합(한총련))의 법적 문제에 대하여 전향적으로 검토해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대통령의 주의환기가 아니더라도 수배자가 되어 오랫동안 도피생활을 하면서 건강진단조차 받을 수 없을 정도로 고생하고 있는 대학생들의 모습은 가슴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상황이 절박하다고 해도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절박하다고 해서 '우물에 가서 숭늉을 찾을 수'는 없으며, '바늘 허리에 실을 매어 쓸 수'도 없다. 전대협을 모체로 출범한 한총련은 남한을 미제국주의 식민지로 규정하고 북한의 인민민주주의 혁명과 궤를 같이하는 주장마저 개의치 않았다. 그 결과 대법원도 1997년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하게 되었다. 또한 단순히 이적단체의 강령과 규약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지난 96년 화염병을 사용한 과격한 시위를 벌여 사람들을 다치게 하였다. 이러한 한총련의 폭력적 행위가 법과 시민들에게서 지탄을 받은 것은 당연하다. 물론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다원주의 사회고 관용의 사회다. 또한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존중하는 사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가치가 관용되고 모든 행위가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어디까지나 '좋은 질서를 가진 사회'로 자리매김하려면 구성원들은 기본적인 가치에 대한 공유를 전제로 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롤즈(J.Rawls)가 말한 '합리적인 다원주의(reasonable pluralism)'의 본질이다. 자유민주주의가 모든 것을 허용한다고 하여 폭력혁명을 주장하고 이를 위한 과격한 행동까지 마다않는 사람들까지 포용할 수는 없다. 그것은 마치 민주주의 사회에서 노예제의 도입을 주장하는 사람을 포용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즉 불관용을 주장하는 사람들까지 관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해서 일본의 옴진리교처럼 공공질서를 파괴하려는 종교의 자유까지 허용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우리 사회는 자유민주주의에 걸맞은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에 살면서 결사의 자유를 향유하고 사상의 자유를 만끽하려면, 그 기본적 가치와 게임의 룰을 존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무한정으로 다원주의를 허용했을 때의 결과는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의 비극에서 엿볼 수 있다. 모든 것을 허용했던 바이마르 공화국은 결국 스스로의 무덤을 팠고 을씨년스러운 나치스의 독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동안 한총련 수배자의 고통도 적지 않았고 한총련 산하대학에서 당선된 학생회장이 이적단체의 대의원이 되어 수배를 받았던 현실은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한총련은 법과 사회의 온정을 기대하기 전에 먼저 변해야 한다. 합법화를 들고 나오기 전에 비폭력 운동을 실천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적 가치에 부합하는 결사체임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사실 지금도 온정주의는 계속되고 있다. 한총련 수배자는 체포되더라도 한총련 탈퇴서를 쓰면 기소유예로 풀려나고 있지 않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한총련 수배자들이 국가보안법에 대한 불복종 행위자로 자처하면서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부당하게 억압받은 사람들로 생각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그보다는 자신들의 가치관과 행위에 대하여 예의 성찰하며 자유민주주의에 걸맞은 학생운동의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의 결사체라면,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받아들이는 선에서 그 권리를 향유하는 것이지, 그 가치를 부정하는 선에서 결사의 자유만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야말로 한총련 구성원들이 먼저 변신함으로써 양심과 사상의 자유의 가치를 입증해야 할 이유가 될 것이다. 박효종 (서울대 정치학 교수 / 시민회의 정책위원장) 출처 - 세계일보 2003. 3. 20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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