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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구전략 구상, 빠르지 않다 - 조동근
	2009-11-01
출구전략 구상, 빠르지 않다 I. 출구전략(Exit Strategy)은 ‘신중론’이 여전히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보수적 정책 행태를 보일 수밖에 없는 정부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민간부문 역시 내심으론 출구전략을 꺼리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이유는 경기부양책을 거둬들였을 때 느껴지는 ‘한기’(寒氣)일 터이다. 민간부문이 경기부양책을 마다할 리 없기 때문에 여론동향을 따른다면 출구전략은 결코 시행될 수 없다. 또한 출구전략은 정부 입장에서 볼 때 ‘국가 개입과 통제’의 끈을 놓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정부의 자발적인 출구전략 시행을 기대하기 어렵다. 출구전략의 ‘신중론’은 구조적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대세를 이루어온 ‘신중론’의 논리를 점검하고 그 논거가 설득력을 갖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만약 설득력이 구체적이고 충분치 않다면, 출구전략에 대한 ‘다른 대안’을 선택해야 한다. 즉 출구전략을 시행해야 한다. 만약 당장 출구전략을 시행하기 어렵다면, 최소한 로드맵을 통해 출구전략의 시행을 예고할 필요가 있다. ‘신중론’은 ‘쿠퍼효과’(Cooper effect)를 강조한다. 쿠퍼효과는 정책효과가 나타나는 시차의 ‘비대칭’을 지칭한다. 경기부양을 위한 확장적 재정 및 금융정책의 외부시차는 6~9개월이지만, 경기를 진정시키는 긴축정책의 외부시차는 훨씬 짧다. 출구전략을 시행하는 경우 그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출구전략을 구사하려면 경기회복에 대해 ‘상당한’ 확신이 서야 한다. 섣부른 출구전략 시행은 회복조짐을 보이는 경제를 다시 침체시켜 ‘더블 딥’에 빠지게 한다. ‘신중론’은 최근의 경기 회복조짐이 확장적 재정․금융정책 및 환율효과에 의한 것으로 인식한다. 즉 자력에 의한 그리고 내생적인 회복이 아닌 정책에 의해 지탱된 경기회복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출구전략 시행은 목발을 짚는 환자에게서 목발을 뺏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본의 경험을 그 사례로 적시하고 있다. 1990년대 불황극복을 위해 엄청난 재정을 쏟아 부어 성장률을 끌어올렸지만, 성급한 재정긴축과 금리 및 소비세 인상으로 디플레를 불러오면서 ‘잃어버린 10년’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또한 신중론은 출구전략의 국제공조를 강조한다. 국제공조는 G20의 암묵적 합의이기 때문에 신의차원에서 공조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마다 개별 국가 차원에서 이해득실을 따져 정책 대응을 하면 세계경제의 회복세가 탄력을 잃게 돼, 결국 어떤 나라도 이익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글로벌 경제에서 국제 공조 원칙을 지키는 것이 실제 국익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II. 출구전략 신중론은 논리정연해 보이지만 대단히 ‘원론적’이다. 바꾸어 말하면 한국의 경제상황에 비춰 신중론은 ‘구체적’ 상황증거력이 부족하다. ‘쿠퍼효과’는 이미 예전부터 존재 해왔으며, 우리나라의 ‘더블 딥’ 가능성은 높지 않다. 우리나라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앙지가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에 비춰볼 때, 출구전략의 국제공조를 앞장서 외칠 필요는 없다. 출구전략이란 용어 자체가 가진 ‘현상유지 편향’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출구전략은 주지하다시피 ‘군사용어’이다. ‘발을 빼는 것’으로 비처지고 있다. 그리고 “한번 발을 빼면 다시는 개입할 수 없는 것”으로 느껴지게 된다. 따라서 출구전략을 미루는 것이, 즉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한 것처럼 보이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출구전략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취했던 금리 인하, 정책자금 공급 등 비상조치들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정책을 말한다. 즉 ‘정상화’ 조치이다. ‘정상화’는 정책기조의 변화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출구전략은 ‘정책기조’의 변화를 의미할 뿐이다. 정책기조의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의성 즉 ‘타이밍’이다. 출구전략 시행의 때를 놓치면 더 큰 ‘기회손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출구전략을 마냥 지체할 수만은 없다. 오히려 출구전략 ‘신중론’에 반(反)하는 상황증거와 정책 논리를 경청해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노출된 경제충격은 다라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수년간에 걸쳐 축적된 거품이 소멸되는 과정에 있는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빠른 경기회복 과정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IMF 외환위기와 달리 우리의 ‘실화’(失火)가 아닌 ‘옮겨 붙은 불’이다. 우리나라는 오히려 글로벌 금융위기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역(逆) 샌드위치’론을 펼쳐야 한다. 금리 인상 등 정책효과가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정책수단은 신중해야 하지만, 각종 비상조치들을 하루 빨리 정상화시켜야 한다. 위기상황에서는 시장을 진정시키고 기업들의 파산을 억제함으로써 경기급락 및 실업급증을 완충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비상조치들은 위기상황에서의 대증요법으로 ‘친시장적’일 수 없다. 예컨대 중소기업 대출의 대부분은 신속조치(Fast Track)에 의해 거의 대부분 전액 만기연장이 이루어졌다. 구제금융은 ‘좀비 기업’들을 존속시켜 이들 기업으로 하여금 경제 내의 ‘한정된 자원’을 사용하게 함으로써 건실한 기업들의 자원 사용비용을 증가시켜 결국 투자를 위축시킨다. 또한 확장적 재정금융정책은 ‘구조조정’을 지체시킨다. 경기침체기는 산업 내 그리고 산업 간의 과오투자가 교정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구조조정이 지체되면 중장기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비상조치가 장시간 지속될 경우 도덕적 해이를 낳고 ‘정부에의 의존’을 키울 뿐이다. 출구전략 지체의 ‘숨은 기회비용’을 직시해야 한다. 출구전략의 국제 공조는 생각보다 어렵다. 국가별로 경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국제 공조를 지나치게 고집하다가는 정책 집행에서 실기(失機)할 수 있다. 출구전략의 시행은 ‘전략적 요소’를 갖고 있다. 출구전략의 국제 공조 상황에서, 출구전략을 늦게 시행하는 국가일수록 손해를 보게 된다. 출구전략을 먼저 시행하면 자국의 긴축이 외국의 경기부양책으로 상쇄되지만, 나중에 시행하면 자국의 긴축에 여타 국가의 긴축효과가 더해져 이중고를 겪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제공조는 구조적으로 깨어지게 되어 있다. 만약 우리나라가 “세계경제의 흐름을 책임지는 위치의 국가”가 아니라면, 국제 공조에 함몰될 이유는 없다. 우리나라 국익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실패의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미국의 실패 사례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통화정책의 정상화가 적기(適期)에 이루어지 않아 문제를 키운 것이다. IT버블이 붕괴되고 9.11테러가 발생했던 2001~2002년에 공격적으로 인하했던 금리를 경기가 반등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에도 정상화하지 않고 지나치게 장기간 저금리 상태를 유지한 것이 주택가격 버블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서브 프라임 발(發) 금융위기는 출구전략의 지체가 가져온 폐해의 단적인 사례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촉발시킨 것도 저금리 정책과 분리해 생각하기 어렵다. 1985년 플라자 협약이후 엔화가치가 급격히 상승하자 경기가 하강하고 물가가 안정됐다. 그러자 목표금리를 대폭 내렸다. 1988년 이후 경기가 회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금리정상화를 지연시킴으로써 부동산 버블이 심화되는 계기를 제공했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은 구조조정을 미루고 재정을 쏟아 부어 성장률을 관리하려했기 때문이다. 결국 국가부채가 폭증하여 재정건전성 마저 해치게 되었다. 최근 우리나라 재정운영은 일본을 빼닮은 꼴이다. 재정지출확대로 성장률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정책 사고는 위험하기까지 하다. 재정지출 확대는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다. 우리나라의 정책금리 2%도 초저금리가 아닐 수 없다. ‘달러 캐리 자금’의 국내유입으로 유동성이 넘치고 있다. 부동산 시장으로의 자금유입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금리를 인상할 필요가 있다. 금리의 소폭인상을 굳이 출구전략 시행으로 읽을 필요는 없다. 금리의 소폭인상은 정책의 미조정에 지나지 않는다. III. 최근 출구전략 ‘신중론’은 ‘시기상조론’으로 치닫고 있다. 26일 윤증현 장관의 세계경영연구원 정책포럼 강연 내용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신중’과 ‘시기상조’는 분명 다르다. ‘신중론’은 출구전략을 시행하는 시기를 잘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지만 ‘시기상조론’은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출구전략은 미룰수록 좋은가. 그렇지는 않다. 출구전략 시행의 ‘객관적 조건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출구전략은 고도의 정책적 판단을 요한다. 결국 출구전략의 시행은 정책당국의 ‘의지’에 달린 것이다. ‘시기상조론’은 ‘현실고착의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혁신과 도약은 정상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지기 어렵다. 정상상태에서 2등이 1등을 추월하기 어렵고, 1등이 2등과의 차이를 확대할 수 없다. 하지만 위기상황에서는 이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최근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글로벌 위기 상황에서 더욱 강해졌다. 만약 국가보호에 안주하고 위험관리에 함몰되었다면 이 같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경영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출구전략 시행을 통해 경제운영의 정상화를 선언함으로써 경제주체에 긴장감을 불어 넣어줄 필요가 있다. 출구전략의 조기 시행 의지는 ‘역(逆)샌드위치론’에 비견될 수 있다. 출구전략은 역설적으로 글로벌 위기 상황에서 한국경제의 위상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유효한 전략이 될 수 있다. 출구전략의 구상, 결코 빠르지 않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 바른사회 공동대표) 출처 - 자유경제school 2009. 10.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