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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든 챔피언' 중견기업을 키워야 - 안종범
	2009-08-02
'히든 챔피언' 중견기업을 키워야 1980년대 필자가 미국 유학 시절, 대형 가전백화점에서 한국 기업의 가전제품 하나가 진열된 것을 보고는 기뻐하던 기억이 난다. 일본이나 미국의 유명 제품보다 반값 이하로 싸게 팔리고는 있었어도 나름대로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얼마 전, 당시 그 매장에 다시 가보고는 무척 놀랐다. 진열된 TV,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 대부분이 한국 제품이고 과거 맹위를 떨치던 일본과 미국 제품은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였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가 여기까지 온 것은 한국 기업들이 두 번에 걸친 오일쇼크와 외환위기에도 민족 특유의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슬기롭게 극복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 경제에는 기업은 대기업 아니면 중소기업만 있었다. 국제시장에서 한국 대기업이 성공함으로써 한국 경제가 여기까지 왔고 또 대기업에 협력하는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대기업 성공의 견인차 역할을 했었다. 이러한 성공의 과실을 골고루 나눈다는 차원에서 중소기업은 늘 지원과 보호의 대상으로 인식된 반면, 과다한 지대를 추구하지 못하도록 대기업은 늘 규제의 대상이 돼 왔다. 그 때문에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중소기업기본법, 대기업을 규제하기 위해서는 공정거래법 등을 만들었다. 중소기업기본법상 제조업 기준 상시 근로자가 300명 미만이거나 자본금이 80억원 이하의 기업은 중소기업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일단 이 기준을 넘어 국제적으로도 상당한 경쟁력과 시장점유율을 확보하는 ‘중견기업’이 되는 순간 지원의 대상에서 규제의 대상이 돼 버린다. 마치 하루아침에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와 같이 취급되는 것이다. 중견기업이라는 용어가 있고 또 실체는 있어도 한국의 법 체제에서는 중견기업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중견기업은 대략 2000여개에 달한다고 한다. 이들 중견기업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채 대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더 이상 국제경쟁력을 유지하면서 대기업으로 성장해가는 데 한계가 있다. 한국 경제의 허리격인 중견기업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샌드위치가 되어 자꾸만 줄어 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글로벌 경제위기의 극복과 잠재성장률 제고를 기대하기가 힘들다. ‘히든 챔피언’의 저자인 세계적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은 최근 “수출 강국으로 성장하는 힘은 대기업이 아니라 중견기업에서 나오는데, 한국에는 이런 ‘히든 챔피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큰 기업이 많다”고 했다. 한국의 미래 성장동력의 핵심이 바로 중견기업이라는 점에서, 중견기업의 성패에 한국 경제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것이다. 대한상의는 최근 상시 근로자 수 1000명 미만 또는 자본금 1000억원 이하 기업을 중견기업으로 설정해 지원할 법적 근거를 마련하자고 정부에 건의했다. 이 법을 통해 중견기업의 연구·개발(R&D) 지원을 지속적으로 하고 대기업에 적용되는 규제 대상에서 제외시킬 것을 건의하기도 했다. 세금 문제에 있어서도 중견기업은 샌드위치 신세다. 중소기업에서 벗어나는 순간 각종 세금 혜택에서 멀어짐과 동시에 국민으로부터 부자로 인식돼 감세 혜택을 받는 것에 대한 강한 저항에 부닥친다. 상속세의 감면에 대해서도 더 이상 어떤 관심도 배려도 얻어내지 못하게 된다. 그동안 급격히 이뤄진 상속세 강화의 부담을 중소기업의 경우 덜어주기 위해 가업 승계시 감면 혜택을 주어 왔다. 그런데 이런 가업 승계 공제 혜택 역시 중견기업이 되는 순간 사라져 버린다. 한국 경제의 도약을 위해 중견기업에 대한 법적 지원 근거를 마련함과 동시에 국민의 인식 전환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 바른사회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09. 8. 1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