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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DJ경제`의 교훈 - 류동길
2003-02-13
`실패한 DJ경제`의 교훈 김대중정부는 이제 곧 퇴장한다. 대북 송금문제를 둘러싼 소리가 요란한 걸 보면 대통령의 힘이 빠진 것일까. 진상을 알고 싶은 국민은 ‘통치행위’와 ‘국익’이라는 단어에 혼란스럽다. 윌슨 미국 대통령은 “대통령은 법률상으로나 양심상으로나 능력껏 위대해질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위대해질 수 있는 시대적 상황에서 등장했다. 그는 거덜난 경제를 살릴 ‘경제의 구원투수’로 자임했고, 국민은 ‘준비된 대통령’이라던 그에게 기대가 쏠렸다.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는 경제를 물려받은 것은 정치적으로 보면 행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취임한 1998년의 경제 실적은 참담했다. 그러나 잘못된 모든 것은 전임자에게 그 탓이 돌아갔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는 불행한 일이었지만 우리 경제의 잘못된 구조를 바로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체감경기는 IMF 때보다 더 심각하다는 비명이 들리기도 하는 요즘이다. 지난 5년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아쉬운 점을 들어보자. 첫째, 구조개혁의 기회를 살리지 못한 점이다. 공공부문·노동부문의 구조개혁을 더욱 강하게 추진했어야 했다. 대통령이 “1년 반 안에 위기를 완전히 극복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하자 정부 정책은 구조조정보다 급속한 성장 쪽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1999년 성장률은 전년의 마이너스에서 10.9%, 2000년에는 9.3%의 고성장으로 나타났다. 2001년의 저성장을 거쳐 2002년에는 세계 각국이 침체를 겪는 가운데 6%를 넘는 성장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것은 경기부양에 치중한 부동산정책과 소비 진작에 뒷받침된 거품 성격이 짙다. 그 때문에 전셋값·집값은 뛰었고 가구마다 3000만원에 이르는 빚을 지게 됐다. 외환보유액을 많이 늘렸다고 해도 환란을 불러온 한국 경제의 구조적 원인이 해소되지 않았다면 그것을 환란 극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IMF 졸업 역시 빌린 돈을 다 갚았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과제가 얼마나 풀렸는지를 따져볼 여유는 있어야 했다. 치적 홍보와 경제정책은 다른 것이다. 경제가 위기를 벗어난 것은 159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공적자금 투입에 힘입은 바 컸다. 이 돈을 국민은 오랜 세월 동안 갚아 나가야 한다. 그런데 그 돈의 관리는 허술했고, ‘눈먼 돈’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당장 급한 불을 꺼야 하는데 물값 비싸다는 타령을 할 수 있느냐”는 반론도 있지만 아무리 급해도 원칙은 있었어야 했다. 둘째, 시장경제를 한다면서 ‘반(反)시장적인 초법적 규제를 동원했다는 점이다. 빅딜(big deal)은 그 말 자체도 잘못 쓰인 것이지만 시장원리를 무시한 채 정부 주도로 집행됐고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아직도 문제로 남아 있는 하이닉스는 빅딜 정책의 부산물이 아닌가. 벤처정책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벤처기업을 직접 확인하고 지원하는 특혜 정책 때문에 벤처기업은 로비활동의 필요성이 생겼다. 이에 따라 벤처기업은 게이트를 비롯한 온갖 비리의 진원지가 됐다. 셋째, 개혁이 치밀한 계획의 미비로 차질을 빚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의약분업은 준비되지 않은 대표적 사례다. 주5일제 실시를 둘러싼 정부의 의도 역시 경제 현실을 외면한 무리수였다. 부진한 노사 개혁 역시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넷째, 안보 의식의 해이와 함께 경제 위기 의식이 약화됐다는 점이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995～97년 1만달러 수준을 유지했지만 그 후 추락, 아직도 1만달러 선에 복귀하지 못했다. 한국 경제는 외환 위기의 주요 원인이었던 ‘자아도취병’에 다시 직면해 있다는 외신 보도도 있다. 한국 경제의 위협 요인은 널려 있는데 그런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방황하는 우리다. 세계는 이라크 전쟁, 북핵 문제로 긴장하고 있고 북한 주민들도 긴장 상태에 있다는데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이와 딴판이다. 평화가 정착된 것인가, 햇볕정책으로 안보 의식이 마비된 것인가. 물러나는 대통령과 정부에 대해 잘못은 모두 ‘네 탓이오’라고 말하자는 것은 아니다. 잘한 점이 왜 없겠는가. 어차피 역사의 평가는 있게 마련이다. 지난 5년을 돌아보면서 느낀 게 있다. 정부는 실력 이상의 목표를 정해 놓고 그걸 무리하게 달성하려하면 많은 후유증을 남기게 된다는 점이다. 어느 정부든 새겨야 할 귀중한 교훈이 아닌가. 류동길 (숭실대 경제학 교수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문화일보 2003. 2. 12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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