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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가 없는 '미래형 교육과정' - 오성삼
	2009-06-05
미래가 없는 '미래형 교육과정' 예술교과 통합 재검토해야 사회적 합의 통해 지혜 모아야 필자가 한때 대학의 부속고 교장직을 맡았을 때의 일이다. 교장 취임 후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이 점심시간을 100분으로 늘리는 일이었다. 학생들에게 하루 단 1시간만이라도 자신만의 여유시간을 마련해 주기 위해서였다. 30분의 식사시간과 60분의 자유 시간을 통해 학교교육과정이나 수업시간에는 쉽사리 얻을 수 없는 교육적 가치를 찾아주고 싶었다. 학교교육이 생각의 여유나 다소간의 게으름이 허용되지 않은 채 긴장과 과도한 교과내용의 습득만으로는 미래사회에 필요한 창의적 인간을 양성할 수 없다는 믿음 때문이기도 했다. 세계적인 석학 다니엘 핑크는 그의 저서에서 미래 인재의 조건을 예술적 미와 감정의 아름다움을 창조해 내는 ‘하이콘셉트’와 다른 사람과 공감하고, 미묘한 인간관계를 잘 다루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즐거움을 잘 유도해 내고 목적과 의미를 발견해 내는 ‘하이터치’ 능력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지금 우리 교육과정은 시대적 흐름을 한참 비켜가는 셈이다. 요즘 우리 교육정책이 표방하는 ‘자율’은 단순히 행정적 권한의 자율성 확대로만 그쳐서는 안 된다. 학생 개개인이 자신의 관심과 흥미를 충족하고 장래 진로와 연관된 교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집중할 수 있는 자율성까지 확대돼야 한다. 최근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산하 교육과정특별위원회가 ‘국민공통 기본 교육과정’ 개편안을 내놓았다. ‘미래형 교육과정’이란 이름의 방안에 따르면, 현재 초등학교 1학년에서 고등학교 1학년까지 10년에 걸쳐 이수하는 내용을 9년으로 단축하고, 교과목도 10과목에서 7과목으로 축소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렇게 해서 학생의 학습 부담을 줄여주고 수업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한 취지라고 한다. 학생들에게 교과목 이수부담을 덜어준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의 중학생이 학기 8과목을 이수하는 데 비하면 우리 학생의 12과목(교과재량 제외) 부담은 큰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교과목 수를 줄이고 이수단위를 축소한다고 학생의 학업부담이 줄어들 것이란 기대는 섣부른 것일 수 있다. 줄어든 교과목과 축소된 이수단위를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교과목 개편의 근본 취지는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도덕과 음악, 미술이 양보한 그 시간대에 대학입시 준비에 필요한 교과목이 들어선다면 학생의 부담은 오히려 더 무거워질 수도 있다. 오래전부터 제기돼온 교육과정의 변칙운영 문제가 현실화될 것이란 우려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오는 이유이다. 우려할 부분은 또 있다. 여러 학기에 걸쳐 매주 1∼2시간씩 나누어 운영하던 도덕, 음악, 미술 교과가 사회교과와 예술교과로 통합돼 분기 혹은 한 학기에 집중적으로 수업해 끝낼 수도 있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인성과 관련한 교과목 개설의 취지가 퇴색될 뿐 아니라 이들 교과목은 단기간 집중교육으로 끝낼 성질의 교과목이 아니란 점에서 재검토가 요구된다. 고교내신 평가방법의 개선도 그 취지는 공감하지만 우려되는 면이 있다. 현행 상대평가에서 교과목별 성취기준에 따른 절대평가로의 전환은 학교마다 성적 부풀리기 현상이 촉발될 우려를 낳게 한다. 학교교육의 내실화를 위해 반영되는 대학입학 전형에서 내신 성적이 변별력을 잃는다면 다른 전형요소가 대학입학의 결정변수로 작용할 것이고 결국 사교육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미래형 교육과정’이 진정한 미래형이 되기 위해서는 더욱 세심한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 관계당국이 표면상 교과목 수와 이수단위를 줄여줄 수는 있겠지만, 줄어든 학습 여유 시간이 본래 의도나 취지에 맞게 학생의 처진 어깨를 펴주고 창조적 능력과 감성지수를 높이도록 유도하는 일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다. 다행히 적용시기까지는 다소간의 시간이 남아 있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지혜를 모으면 학생의 해맑은 웃음을 찾아줄 수도 있을 것이다. 오성삼 (건국대 교수·교육학 / 바른사회 회원) 출처 - 세계일보 2009. 6. 5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