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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율·원칙 역주행하는 '고교 다양화' - 이성호
	2009-04-25
자율·원칙 역주행하는 '고교 다양화' 20일 교육과학기술부가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앞으로 개설될 자율학교와 기숙형 학교에 대한 학생 선발의 지역적 제한을 검토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개별 학교에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자율적인 학생선발권을 부여할 경우, 특정 지역에로의 편중 현상이 우려된다는 것이 교과부의 군색한 변명이다. 하지만 기실은, 현 정부의 교육정책을 ‘교육의 빈익빈 부익부’로 호도하는 목소리를 의식한 때문인 듯하다. 결국 교육적 사안을 정치적으로 타결하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런데 이는 지난 대선 때부터 ‘자율과 경쟁’이라는 노선을 표방해 온 행정부 수반의 입장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게다가 만에 하나 이번 발표가 4·29 재·보선을 의식한 것이라면 향후 교과부의 업무 추진력은 더욱 우려된다. 이 같은 교과부의 행태와 인식은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시된다. 첫째, 이것이 무원칙하고 무소신한 포퓰리즘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5년 동안 포퓰리즘은 노무현 정부의 평등지상주의 교육의 대명사처럼 사용되어 왔다. 이러한 포퓰리즘의 교육은 결국 질(質) 저하라는 부작용을 낳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해 새 정부 들어 설정된 노선이 자율과 경쟁에 바탕을 둔 다양성이다. 그런데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교육정책에 지역제한 선발이라는 평준화식 조항을 추가한다는 것은 또다른 형태의 포퓰리즘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포퓰리즘은 문자 그대로 ‘많은 사람이 원하는 대로 가자’는 말인데, 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원리에 맞지 않으냐는 강변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는 지극히 위험하고 허구적인 발상이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개인들로 구성된 복잡한 사회에서 모든 정책들을 투표나 여론조사로 결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더욱이 이는 대의민주주의 정치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수많은 정책을 하나같이 다수결로만 처리할 수 있다면 굳이 선출직 공무원을 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여론을 무시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단, 경우에 따라 비전을 제시하고 미래를 향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교육정책은 그 효과가 단기간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에 미래를 길게 내다봐야 한다. 포퓰리즘을 토대로 한 정부의 간섭과 통제는 선진사회를 지향하는 우리 사회에 더 이상 어울리는 명제가 아니다. 둘째, 학생선발권의 제한은 자율의 개념에 위배되는 것이다. 교육에 있어서 학교의 자율성은 학생선발권, 교육과정 운영권, 그리고 재정의 독립 세 가지를 뜻한다는 사실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자율성이란 통제와 간섭의 배제를 말한다. 그런데 통제와 간섭은 다양성을 저해한다. 따라서 자율성과 다양성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셈이다. 결국 지역제한 선발이라는 통제와 간섭은 ‘고교 다양화’라는 명분과 논리적으로 양립하기 어렵다. 물론, 무조건적이고 무제한적인 자유를 이상적 상태라고 보는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 그것은 방종으로 흐를 수 있다. 그러나 자율은 책임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자유와 다르다. 비윤리적이거나 비교육적인 학생 선발에 대해서는 학교가 전적으로 책임지게 하라는 것이다. 결국 학생 선발을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것보다는, 교육의 전 과정에 걸쳐 개별 학교의 책무성을 강화하는 방안이 더 바람직하다. 우리 사회의 과다한 교육열을 감안할 때 특정 지역이나 계층에 대한 일시적인 편중 현상도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러한 부작용들도 궁극적으로는 개별 학교의 양식과 선진화된 시민의식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다. 통제는 또 다른 통제를 부른다는 역사의 교훈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이성호 (중앙대 교수·교육학·바른교육권정책위장 / 바른사회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09. 4. 25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