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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병”과 “아르헨티나병” - 신일철
	2003-01-28
“한국병”과 “아르헨티나병” - 다시 “역사의 지각한 국민”이 되어서는 안된다 - 2003년에 들어서면서 일본언론에서는 개항과 개국 150년 기념의 다채로운 기념사업을 시작했다. 동아시아 중화문화권에서 소외되었던 막부(幕府) 일본이 앞서서 “서구문화”를 수용하여 “문명개화”의 서구화의 선두가 되었다. 이것이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에 들어간다”는 ‘탈아입구(脫亞入毆)’였다. 청나라는 뿌리 깊은 “중화”의 자존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청일전쟁에서 패하는 큰 대가를 치르고 비로소 20세기의 신국제질서를 인식하게 된다. 그것이 동도서기(東道西器)론의 양무파를 거쳐 변법자강의 서구적 근대국가관에 눈뜨게 했다. 이처럼 역사는 그 대세에 역행하려는 자를 벌하는 역사의 심판이 뒤따름을 보았다. 그러면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있던 한반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중국에서는 이미 무너진 “중화”를 우리 조선이 끝내 지키겠다는 “반서양 소중화(反西洋小中華)”의 고집을 세웠다. 그로 인해 우리조선은 약 50년 늦은 개화지연으로 결국은 “역사에 지각한 민족”이 되었다. 일제침략의 식민지 35년의 비극은 대원군 등 양반층의 정치적 판단력이 졸렬했던 실책의 업보였음을 후세의 역사가 심판하게 되었다. 1980년대 말에 와서 “진보주의”의 메카인 구소련방의 붕괴와 동서독통일로 “진보”의 환상이 산산이 깨졌다. 전후 영국 노동당의 사회주의가 만든 과(過)복지의 “영국병”을 치유한 것이 대처주의였다. 자유민주주의와 “근대화론” 지향적 시장경제의 자유사회의 길이 옳은 길임이 드러났다. 이 세계사적인 탈냉전의 대세에 역행해서 오직 북한의 “선군”주의만이 러시아 방문때 파격적으로 레닌묘를 참배하고 “내가 마지막 남은 세계유일의 레닌주의자”임을 과시했다. 21세기에 들어선 신세계질서의 대세에 역행해서 죽은 레닌주의의 망령을 고수하려는 현대판 “小中華”가 북한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우리 주변의 “진보주의”의 공조대상이 “全 인민 기아”의 북한인 듯이 가정하는데서 진보파의 자가당착을 본다. 지난 5년간 김대중 정권은 절도를 잃어가면서 대북 햇볕정책에 주력하여 한국사회에 “남남갈등”이 생겼다고 한다. 탈냉전후 러시아나 중국, 동유럽에서는 진보와 보수의 도식이 역전되었다. 중국에서도 홍위병 난동에서 “문화대혁명” 10년의 환란으로 역사에 지각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중국의 젊은이들은 이제 더이상 선전선동의 마오주의나 반미운동은 백태무익함을 역사를 통해 몸으로 깨우쳤다. 일본의 진보파도 “주일미군”의 존재로 인해 군사비 절약을 한 50년간의 천문학적 숫자의 총액이 바로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키워주었다고 해서 반미정서는 사라졌다. 오늘날 반미주의는 주로 후세인과 북한의 독재노선 주종으로 압축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월드컵 이후 SOFA 개정문제가 어느덧 촛불데모로 반미주의가 일어났다고 미국 등 세계 언론은 보도하기 시작했다. 주한미군 3만5천명의 철수론도 거론되어 한국경제의 파탄까지 초래할 수 있는 국운을 가늠하는 중대사가 되었다. 촛불데모가 SOFA 개정에 대한 절도있는 어필이라면 어느 누구도 마다할 수 없다. 그러나 촛불 하나가 초가삼간을 다 태워 길가에 나가 앉게할 수도 있다는 옛말이 상기된다. 월드컵 응원에서 세계언론의 칭찬을 받은 우리 젊은 세대가 반미운동으로 우리경제를 거덜나게 하겠다는 포퓰리즘적 오판이 생겼다고는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민족은 개인적으로는 IQ가 높다고 한다. 그러나 때로 집단 IQ에서는 낮아졌던 전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6.25전쟁때 “설마”했던 오판도 그것이다. 어떤 젊은이가 “북한 핵개발은 미국을 겨냥한 것이고 우리는 아니다”라고 말하는데는 아연실색했다. 1992년 남북한간에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위반한 터에 “민족공조”는 커녕 민족공멸의 불장난을 자행해온 북한의 선군주의 모험에 대해 이토록 IQ가 영점인 북핵 불감증을 도대체 누가 만연시켰을까. 컴퓨터의 인터넷에서 “조선중앙통신”에 북한핵무기는 남한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고 미국이라는 반미테러리즘적 보도가 자주 나왔다. 올해 북한 신년사설에는 “남과 북의 조선민족대 미국”의 전쟁론까지 들먹이기에 이르렀다. 북한지도부는 아예 남한을 반미․친북의 지지편으로 선동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어린 여학생들의 순진한 촛불데모에 대해 김정일 지도부는 대미 벼랑끝 대결에서 남한의 젊은이들을 “대리용병전”을 시킬 수 있다는 정치적 악용의 환상까지 하게한 것이 아닌가 이 나라의 장래가 심히 걱정된다. 분명한 제네바핵합의 위반에 대해 북한은 국제적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린 터에 미국에 대해 소위 “북․미불가침조약”의 체결요구로 맞서고 있다. 이 북․미 2자간의 불가침조약의 억지는 대한민국의 배제의 불순한 저의가 있어 대단히 반민족적인 잔꾀 발상이다. 만의일이라도 그런 일은 없겠지만 북한과 미국 2자간의 불가침조약이 체결된다면 대한민국의 처지는 다이완(臺灣)과 같이 될 수도 있고 괴뢰만주국 같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붕괴도상의 김정일 정치가 남북한 체제경쟁의 패배를 단번에 뒤바꾸는 역전극을 도박하려는 사생결단의 마지막 카트이다. 이런 우리 국가주권의 위협에 대치하는 현 정부의 태도가 미온적이고 선명치 않은 것이 더욱 온 국민의 불신을 증폭시킨다. 이번 대선결과를 가지고 46% 득표의 한나라당의 패배를 한국 보수주의의 패배라고까지 과장하는 진보주의 논설도 나오고 있다. 도대체 탈냉전후 뒤늦게 한국정치에 보혁구도가 생겼다는 도식자체가 우리민족이 한참 뒤늦게 시대착오해서 보혁논쟁을 한다는 관점이 부끄럽다. 근래의 진보․보수의 색깔에서 가장 큰 범주적 착종은 어느 지역에 살면 보수라는 지연감정과 완전히 중첩된데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김대중 정권은 지역감정에 진보의 옷을 입혀 그 해소는커녕 더 심화시켰다고 보게 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대선을 치르고 난 다음 우리 사회에는 햇볕정책의 역전극 효과로 진보와 보수의 양극화는 친북과 반북의 갈등으로, 그리고 촛불시위이래 친미와 반미의 양극구도로 과장되어 대한민국 내부의 국론분열의 조짐까지 나타났다고 온 세계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더욱이 북한의 NPT 탈퇴는 마지막 도박 앞에서 한반도 반핵과 북핵용인의 두 경향으로 국민정서가 갈리고 있다는 우려까지 조성되었다. 우리 정치의 숙원이던 3김 청산은 되었다. 그러나 여야의 기성정치가를 싸잡아 그들과 운동권출신의 급진주의간의 대립이 생긴 것처럼 우리 정계에 더 깊은 골이 생기는데 이데올로기 정치로 빗나가고 있다. 민주적 시민정치의 위기가 왔다. 이웃 일본의 ｢일본경제신문｣의 신년 연재는 “일본병을 진단한다”이다. 이 기사에서 “일본병”을 거품 붕괴와 15년간의 데플레이션인데 그 학명까지 생겨 “닙포넨시스(Nipponensis)”라 했다. 그렇다면 김대중 정부에서 더욱 도진 “한국병”은 “코리아넨시스”(Koreanensis)가 될 것이다. “한국병”은 지난해 중남미에서 경제가 파탄된 아르헨티나의 참상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새뮤엘슨 교수는 “알렌틴병”을 “강성노조와 포퓰리즘”이라고 요약했다. 도처에서 일어난 집단이기주의의 범람을 다스리지 못한 DJ 정권은 끝내 “집단이기주의 럭비볼” 신세가 되어 “나약한 정부”를 다음 정권에 물려주게 되었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햇볕정책의 유산은 북한의 두터운 외투를 벗긴다고 국민에 약속한 바와는 반대로 북핵의 군사주의 “선군” 정치의 기세만 올려주어 한국과 국제사회에 협박하는 “역햇볕”의 역전극에 속수무책이 되었다. 햇볕은 북한의 외투는커녕 목도리도 벗기지 못했다. 6.15 공동선언과 남북대화로 북한의 변화는커녕 거꾸로 우리 대한민국의 국민정신을 분열시키고 우리의 국가기강인 가치관을 무너뜨려 대북안보 무장해제의 정신적 위국까지 초래했다. 쇠망해가는 약쇄소국 앞에 세계 10위의 경제력을 가진 강국 “대한”이 이렇게 밀리고 당하게 하는 정치의 단수는 도대체 몇 단인가. 야당정치 9단도 10단도 집권정치의 자동차에는 꼭 “초보운전” 또는 “왕초보”라고 써붙이고 다녀야 한다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이제 비로소 정치적 득표운동의 선수가 집권단계에서도 계속 운동단계의 기법만 되풀이하면 아마추어 정치가 된다는 교훈을 얻게 된 셈이다. 지난 시기 북한의 대남공작에서 우리 남한을 좌지우지하려 한다는 “북풍”설에 대해 이를 반공주의적 선전이라 해서 모두 믿지 않았다. 80년대 운동권의 “강철통신”의 두 주인공이 밀선을 타고 평양에 초대되어 김일성을 만났다고 한다. 두 사람을 반갑게 맞이한 김일성은 “여러분이 잠수함타고 오면 김정일 동지는 그날에는 한숨도 못 잔다.”고 했다. 이 증언에서 시사하는 바가 큰 것이 있다. 80년대 남한의 민주화운동권을 마치 김정일이 지휘, 원격조종하고 있다고 믿는 그의 착각이다. 이번 촛불에서 비롯된 반미색깔도 김정일의 대남공작정치가 다시 먹혀들고 있다는 더 큰 착각을 일으켰던 것이다. 오늘에는 그것이 착각이 아닌 것으로 만들고 있다. 이것이 친북으로 악용되기 안성맞춤인 포퓰리즘이 저지르는 오늘의 가장 심각한 “한국병”이 아니겠는가. 글로벌세계화 시대에 친북․반미의 역풍으로 다시금 역사에 지각하는 국민이 되는 것이 아닌지 우리 사회의 후회막급의 위험선까지 낮아진 집단 IQ를 심각하게 재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신일철 (고려대 철학과 명예교수 / 시민회의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