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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면보다 가석방 활용해야 - 이훈구
	2003-01-04
사면보다 가석방 활용해야 대통령의 특별사면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며칠 전 대법원의 한 부장판사가 법원 인터넷에 글을 띄워 특별사면이 너무 급조되고 남발되는 것에 대한 판사로서의 낭패감을 토로했다. 또 김대중 정부에서 중죄를 진 전직 고관들에게 곧 특별사면을 내릴 것이라는 보도가 있다. 정부는 지난해 교통위반자 수십만명을 특별사면하기도 했다. 범죄자에 대한 형벌은 비단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일벌백계의 교훈을 국민에게 심어주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특사가 이렇게 남발하는 상황에서는 형벌의 기본 교훈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 사면법을 개정하자는 안이 대두되고 있다. 이 사면법은 사면위원회를 염두에 두고 있다. 즉 고위층의 전문가로 구성된 대통령자문위원회를 설치하려 한다. 그런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먼저 이것은 현재 남용되고 있는 은사(恩赦)식의 특별사면을 그대로 존속하는 악영향을 준다. 현재 대통령의 특사는 옛날 왕조시대의 왕이 내린 은사제도를 그대로 모방한 전근대적 특별법이다. 즉 왕이 국가의 경사스러운 날, 예컨대 왕비 간택, 왕세자의 탄생 등을 자축하기 위해 특별사면이나 일반사면한 것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 특별사면이 필요한 때가 있었다. 그것은 과거 독재정권에서 불합리한 법으로 구속된 소위 정치범에게 새 민주정부가 들어서서 특별사면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죄인이 아닌 정치범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민주화시대이므로 대통령에 의한 특별사면이 별로 소용치 않다. 따라서 우리가 사면위원회를 두는 것으로 사면법을 개정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으로 이런 제도는 전 세계에 한 나라도 없다. 우리에게는 특별사면법보다는 가석방제도를 더욱 현실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절실하다. 우리는 가석방제도를 통해 형기의 3분의 1 이상을 복역하고 행형 실적이 우수한 사람에 한해 1년에 한 번 심사를 해서 그 혜택을 준다. 가석방제도는 죄인에게는 물론 국가재정운영상 아주 절실하다. 왜 그런가? 죄를 졌지만 죄를 깊이 뉘우치고 재범을 하지 않을 모범수인 경우 그를 그렇게 오랫동안 감옥에 가둬 둘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가석방제도가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제도는 특별사면법에 비해 너무 엄격하고 관료적이다. 즉 가석방 심사대상은 법상으로는 형기의 3분의 1 이상을 복역한 자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형기의 3분의 2 이상의 모범수로 한정하고 있다. 이렇게 엄격하게 하는 이유는 혹시 가석방했다가 범죄를 저지르면 그 책임문제가 대두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가석방 심사를 누가 하느냐에 있다. 미국의 경우는 교도소마다 가석방위원회가 있다. 가석방위원회의 위원은 교도소 직원 외에 법심리학자, 정신분석의, 그리고 상담심리학자가 있다. 이들 전문가는 죄인의 범죄의 질, 그의 성격, 가치관, 재범 가능성을 측정한다. 이들 전문가가 내리는 재범가능성의 예측은 상당히 높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가석방이 폭넓게 활용된다. 형기의 3분의 1을 따지지 않는다. 그가 재범가능성이 낮다고 하면 조기에 특사된다. 너무 활용되는 나머지 중범죄자에 대해 가석방요구를 금하는 판결이 나올 정도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가석방이 법무부 교정국에서 일괄적으로 처리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물론 각 교도소에서 가석방 대상자를 선별하고 이것을 법무부 교정국에 올리는 형식이지만 최종 선발은 교정국에 달려 있다. 가석방제도는 미국에서처럼 각 교도소, 특히 가석방위원회에 일임해야 한다. 가석방의 적임자를 제대로 판단하는 것은 일선 교도관과 그를 보좌하는 전문가집단뿐이기 때문이다. 가석방을 제대로 활용하면 특사니 일반사면이니 하는 소위 제왕식 사면을 따로 할 필요가 없어진다. 지금처럼 가석방의 혜택을 못 받는 많은 모범수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사면법이 제정된다면 그것은 가석방제도의 효율화를 위한 것이 돼야 한다. 李勳求 (연세대 사회심리학 교수 / 시민회의 일하는복지사회운동본부장) 출처 - 조선일보 2003. 1. 4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