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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治, 法治, 法治 - 송복
	2003-01-03
法治, 法治, 法治 새 정부가 앞으로 5년 내내 가져야 할 초심(初心)은 꼭 하나, 법치(法治)다. 왜 그 많은 사람들이 김대중 정부를 ‘실패한 정부’로 규정하는가. 어째서 많은 사람들이 김대중 정권을 우리 정치사에서 다시는‘재현’ 되어서는 안 되는 정권으로 생각하는가. 많은 실정(失政) 중에서도 누구나 동의하는 실정은 이 법치의 파괴다. 새 정부가 김대중 정권의 ‘재창출’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새 정부가 김대중 정부와 완전히 차별화된, 오로지 새 정부로서 새 출발해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소망하는 이유도 이 법치의 파괴에 있다. 더구나 김대중 정권하에서 생산되고 재생산된 수많은 의혹들, 그 중에서도 현대상선 4000억원 불법 대출 의혹과 대북 비밀 지원 의혹, 70조에 가까운 회수 불능의 공적자금 지출 의혹들은 그 무엇에 앞서 반드시 밝히고 넘어 가야만 새 정부가 명실공히 새 정부로서 기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이 법치의 무너짐에서 온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수준을 재는 자(尺)는 자유와 인권과 법치, 그 중에서도 법치다. 자유와 인권은 산업화의 정도, 국민소득의 증대에 따라 함께 나아진다. 1인당 소득 1000달러에서 5000달러, 5000달러에서 1만달러로 올라가는 것만큼 인간 존엄성에 대한 요구의 강도도 더 세어지고, 개인 선택에 대한 자유의 폭도 더 넓혀진다. 그러나 단 하나, 이 법치만은 어떤 대통령 어떤 지도자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자유와 인권은 사회구조나 체제의 종속변수적 요소가 강한 데 반해 법치는 어떤 비전, 어떤 성향, 어떤 능력의 대통령이냐 가 독립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확실히 이 법치에서 김대중 정권은 이전의 어느 정권보다 후퇴했다. 법치 개념이 박약했고 법치 의식이 거의 없었다 할 수 있다. 법치는 법이라는 객관적 원칙에 의해 부서를 만들고, 인사를 기용하고, 정책을 집행하는 것이다. 또 제도라는 공기구에 의거해서, 그리고 그 기구의 공식적인 라인을 통해 국가를 관리하고 국사를 관장하고 집단간 갈등을 조정·해소해 가는 것이다. 그 결과로 이뤄지는 국민 통합은 이 법치가 키워드다. 법치는 가신이나 측근이 있으면 파괴된다. 으레 그들은 권력 실세가 되어 법과 제도를 뛰어 넘고 이탈해서 무소불위로 놀아난다. 공식 기구보다 비공식 기구, 비공식 라인이 더 세면 법치가 아니다. 센 것만큼 그 라인을 통하면 해결되지 않는 것이 없다. 센 것만큼 공식적인 자리에 앉은 사람은 모두 허수아비가 된다. 부패를 만들고 키우는 것은 가신·측근만이 아니다. 이 비공식 라인을 타는 사람은 모두 부정이며 비리의 장본인이 된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파워가 있으면 이 또한 법치에서 멀고 먼 것이다. 법치가 확립된 나라의 대통령 비서실장은 주목받는 존재가 아니다. 그야말로 인비저블(invisible)한 존재다. 세인의 주목을 받는 비서실장은 모두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초법적 존재들이다. 대통령이 국민과 대화할 때 자기나 자기 정부의 업적을 치켜세우면 법치가 아니다. 대통령은 ‘최고’의 정보를 가진 사람이다. 또 대통령의 시간은 그 누구의 시간보다 비싼 시간이다. 이 ‘최고’와 이 ‘비싼’시간의 기회비용을 늘 계산해서 사용하는 것이 법치다. 국가 주요 회의가 정례화(定例化)되어 있지 않으면 이 역시 법치가 아니다. 미국 백악관의 주요 회의는 모두 정례화되어 있다. 정례화되어 있을 때 대통령직 수행이 시스템화 할 수 있고, 그래야만 대통령이 좀더 전체를 생각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을 많이 갖는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가 안건 통과장이 되어 있으면 법치가 아니다. 국무회의는 분야별 주요 이슈, 주요 정책의 토론장이어야 한다. 지난 5년간 우리 국민이 미디어를 통해 보아온 국무회의는 통과 의례의 대통령 방망이 소리와 멍하니 앉은 장관들의 기묘한 ‘무표정 배합’들 뿐이다. 김대중 정권의 비(非)법치 불(不)법치는 이외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법치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김대중 정권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 빨리 레임덕에 떨어졌다. 임기 5년 중 뒤 3년은 모두 레임덕 상태로 보아야 한다. 햇볕정책도 법치를 통한 국민 합의로 이뤄졌다면 오늘날과 같은 안보 위기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노태우 정권 때 선포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 현 정권의 햇볕정책 5년 동안 산산박살이 나서 이제는 북쪽의 핵무기 제조 위협 수위만 나날이 높아가고 있다. 새 정부는 철저히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宋復 (연세대 정치사회학 명예교수 / 시민회의 공동대표) 출처 - 조선일보 2003. 1. 3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