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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회정치 살릴 후보 뽑자 - 김영봉
	2002-12-11
의회정치 살릴 후보 뽑자 오는 19일 우리는 새 대통령을 뽑는다. 수백만명의 일자리, 수십조원의 복지예산을 주머니 속 물건처럼 약속하고, 채무자와 범죄자를 사면해주며 향후 5년간 우리를 ‘통치’해 줄 지도자를 뽑는 정치행사다. 자본주의의 시장질서는 민주주의 정치제도와 분리하여 생각할 수가 없다. 자유기업 시장제도란 체제 안의 모든 경기자(economic players)가 당국이 마련한 경기장(시장) 안에서 마음껏 뛰어(자유기업) 각자의 능력에 따라 얻어낸 과실을 자유로이 가져가게 하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체제의 생산을 맡은 경기자들이 그 경기의 규칙 설정에 참여하는 것은 가장 당연한 과정이며 기본적인 권리가 된다. 국민이 그를 소외하고 만든 규칙 아래서 경기를 강요당할 때, 불평·불만과 피해의식 속에 마지못해 경기에 임하고 그 결과에도 승복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적 갈등과 소요가 증폭돼 급기야 체제 존립까지 위협받는 사태가 초래될 수 있다. 19세기의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부터 맹렬히 도전받고 소비에트 체제가 태어난 것이 바로 이 때문인데, 서방 자본주의는 그 이름 자체를 실상 ‘자본가들이 해적질하는 생산 양식’으로 정의한 카를 마르크스로부터 얻었다. 우리 사회가 자유민주주의를 국가 이념으로 외친 이상 그 입법기관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한국자본주의는 그러나 그 골격이 형성되는 1960년대 이래의 수십년 간을 강력한 정부가 주도, 입법기관으로서의 국회의 기능이 거의 퇴화했다. 국가적 의사결정 과정은 청와대가 전담하고 국회는 통과부의 역할이나 하도록 남겨졌다. 4년마다 하는 선거는 시민의 대리자를 선출하는 과정이라기보다 미스 코리아를 뽑듯이 임기동안 정쟁과 권력 유착에 전념해도 좋은 인기인을 뽑는 행사처럼 돼버렸다. 우리 국회의 현주소는 달포 전에 일어난 입법과정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의원이 본회의장에 들어갈 때는 출석으로 기록하고 10분 뒤 퇴장해도 출석으로 인정, 의석이 텅 빈 상황에서 산적하게 미뤄진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어쩌다 이것이 문제가 되어 국회가 이미 통과시킨 법안을 두 번 통과시키는 모양이 연출됐다. 따져 보면 과거 수십년 간 국회가 통과시킨 법안 거의가 이런 식의 원인 무효일지 모른다. 13세기 영국의 존 왕이 토착 귀족(barons)들에게 세금과 징용을 마구 요구하자 이들은 병사를 일으켜 왕으로 하여금 그 권리를 제약하는 대헌장(Magna Charta)에 서명하게 했다. 계속해서 왕과 신민과의 권리·의무를 규정하는 협상의 자리가 필요했고, 원래는 귀족과 토호에게만 주어졌던 대표 선거권이 차차 재산소유자에게까지 확대된 것이다. 그 다음 사회의 각 계층이 그들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는 자리에 대표자를 보내기 위한 투쟁이 이어졌다. 프랑스의 대혁명, 차티스트운동 등 시민과 노동자, 여성과 소수민족의 대표 선거권 획득 노력은 희생과 좌절이 수없이 동반하여 이뤄졌다. 실로 선진국의 오늘날의 국회는 오랫동안 흘린 피와 눈물이 점철된 결과로 시민들이 획득한 것이다. 해방후 미국이 가져다준 우리의 국회에는 이런 투쟁 과정이 없었다. 얼떨 결에 손 안에 들어온 국회가 무슨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방어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 선거를 하는 자도 당선된 자도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독재자가 등장하자 쉽게 포기해 버렸고, 통치자가 임명하는 국회의원도 생긴 것이다. 오늘날에도 민주주의를 하겠다는 대통령, 정당 지도자의 가장 큰 무기는 공천권 행사다. 아니, 통치자와 싸워 국민의 이익을 지키라고 뽑는 의원인데 통치자에게 그 공천권을 주다니…. 그것이 말이 되는가. 시민이 세금으로 떠받쳐주는 국회의원에게 그저 국회에 출석해서 투표만 해 달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요구인가. 대한민국의 어떤 직장인이 근무장 이탈을 밥먹듯 하며 월급받을 것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필자는 등록금을 오히려 내는 학생인데도 강의에 결석하면 학점을 주지 않는다. 아무리 우리의 소득이 증대한다 한들 이런 의원이 있고, 이를 허용하는 선거구민이 있는 이상 이 나라는 노예 근성이 박힌 후진국일 수밖에 없다. 이번 대선에서는 과거에 없이 수많은 의원이 공천권을 줄 새 지도자를 찾아 당을 옮겼다.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석이 긍정적으로 변화하는데 국회만은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남은 기간이나마, 대통령 선거전의 주 이슈는 뻔히 못 지킬 공약을 비교하기보다, 누가 민주주의를 진정으로 이해하는지를 가리는 데 둬야 할 것이다. 김영봉 (중앙대 경제학 교수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문화일보 2002. 12. 11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