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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과 선전에 동원된 '문화' - 조희문
2007-12-29
이념과 선전에 동원된 '문화' 문화계, 지난 10년간 심한 갈등 정부와 민간의 역할 잘 나눠야 겉으로 보기에는 부드러워 보이지만 안에서는 치열한 분야가 바로 문화·예술 영역이다. 국민의 정부 5년과 참여정부 5년 기간 동안 어느 분야보다도 심한 갈등과 대립을 빚었던 곳도 이 분야였다. 많은 관객들이 열광했던 한국영화도 국민들이 보기에는 오락이었고 문화였고 예술이었지만, 그것을 정책적으로 주도한 쪽에서는 무기였고 전략이었다. ‘한국영화 진흥’은 영화운동을 지원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했고, ‘표현의 자유’ 확대는 기존의 가치와 인식을 전복하는 빌미로 동원되었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말라’는 문화정책의 새로운 모토와 ‘민간 자율화’의 구호는 같은 이념과 행동을 공유하는 인물과 조직을 공고하게 양성화하기 위한 전략을 포장하는 수사(修辭)로 끌려 다녔다. 영화진흥위원회는 그 같은 전략과 실행을 주도하는 기지 역할을 했고, 조직의 개편과 확대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인력은 교체되었다. 방해가 된다고 여기는 인력은 내쳤고, 같은 편이면 없던 자리를 만들기까지 해서라도 불러들였다. 법률의 보장을 받는 공기관이 행정적 권한과 예산을 조직화된 단체에 합법적으로 지원하고, 관련 단체는 그것을 기반 삼아 조직과 활동을 더욱 강화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단체나 집단의 활동은 가시적으로 위축되고, 새로운 조직과 세력이 영화계의 전면으로 나서는 양상은 확산되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등장은 이 같은 문화예술계 개편의 정점이자 핵심이기도 했다. 기존 가치와 체제를 소멸시켜 버리고 그 위에다 전혀 새로운 이념과 가치를 갖는 체계를 세워야 한다는 강박증이 난무하면서 문화와 예술은 전선화(戰線化)했다. 영화계는 그 전위에 섰고, 문학, 미술, 음악, 연극, 무용 같은 기초예술 분야 역시 격동에 휘말렸다. 사회 전반에 퍼진 이념적 갈등과 대립, 적대와 편 가르기, 분열의 모습은 문화·예술계가 진원 역할을 한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전략적 선동과 파행이 넘쳐났다. ‘○○ 문화도시 조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이 7개에 이를 정도로 대규모 국책사업이 남발된 것도 문화와 예술을 정치적 선전의 수단으로 동원한 것이란 지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 과정에서 문화·예술의 창의성과 다양성은 오히려 약화되었고, 지역 간의 균형적 발전도, 문화 복지의 확대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정책적 불신만 가중시키고 있다. 자율과 분권을 강조한 정부에서 오히려 자율은 훼손되고, 분권은 줄 세우기 수단으로 변질하는 기현상이 연출되었다. 나만 옳고 다른 사람은 모두 틀렸거나 무지하다는 인식 위에서 이루어지는 교조적 선동은 다양한 단위에서의 문화예술 교육으로 연결되었다. 새로운 문화정책은 이념과 선전에 동원된 문화·예술을 본래의 자리로 돌려놓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정부 역할과 민간영역에 대한 분리 접근이 필요하다. 자본과 노동의 이동이 자유롭고 지역 간, 장르 간 경계가 사라지는 현재의 문화 환경에서는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자율적 시장기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문화적 영역에서의 정부 역할과 산업적 영역에서의 민간 역량 간에 조정과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와는 달리 상당한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도 유의해야 할 요소다. 민간이 앞장서고 정부가 필요한 부분을 돕는 모양이 된다면 그것이 바로 문화적인 구조가 아닌가? 조희문 (인하대교수·영화학 / 바른사회 바른문화포럼회장) 출처 - 조선일보 2007. 12. 29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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