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사회시민회의

> 자료 > 바른사회 칼럼

	멍들고 있는 경제遺産 - 김병주
	2002-11-26
멍들고 있는 경제遺産 요즘 경기 진단이 엇갈리고 있다. 올해는 물론 내년에도 높은 경제성장을 내다보는 정부는 느긋하다. 반면 민간 연구소들은 공장가동률 저조, 소비둔화뿐만 아니라 이라크 전쟁과 미국 등 경기둔화 여부에 따른 경기 급냉각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경기진단과 경제정책 운용에 대한 기본적 시각 차이가 두드러지는 것은 향후 인플레와 디플레 중 어느 것이 우려되는가에서 잘 드러난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세계경제의 디플레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도 한국은 아직 디플레보다는 인플레 위험이 상존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정부와 일부 연구소들은 가계 부채 거품빠지기에 따라 디플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처럼 엇갈린 진단 때문에 헷갈리는 정책처방이 제시되고 있다. 몇 가지 거시경제 지표를 보면 경제가 순항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올해 6% 이상의 경제성장에 이어 내년에도 5% 정도의 성장을 유지해 중국 다음으로 높은 성장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물가와 실업률 전망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잘 흐르는 듯 보이는 경제흐름 군데군데 소용돌이 여울들이 긴장을 돋우고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1997년 IMF 환란(換亂)이후 2000년 말까지 정부의 거시경제운용과 구조조정작업은 크고 작은 무리는 있었지만 그래도 일정한 논리를 갖춘 틀 속에서 진행되었다. 크게 보면 그것은 IMF의 자금지원 조건들이 정부정책의 틀로 작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대중경제’식 포퓰리즘이 억제될 수 있었다. 그러다 2000년 말 정부홍보가 요란했던 IMF ‘졸업’ 이후 고삐풀린 포퓰리즘이 경제운용의 기본을 흔들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포퓰리즘은 긴축정책을 기피하고 확장정책을 선호한다. 이 같은 맥락에서 9·11테러 사건 이후 외국증시 폭락과 세계경제 침체 영향, 특히 전자 등 주력상품의 수출 부진 등을 우려해 내수 확대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일련의 조치들이 양산됐다. 부동산시장의 각종 규제들을 일제히 풀거나 낮추었고, 청와대까지 가계소비를 권장하고 나섰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 사정으로 미루어 절제된 내수 전환은 바람직한 명제이다. 그러나 당시 정부의 정책 선회에는 절제보다는 극단으로 치달았다. 특히 경제정책의 우두머리인 경제부총리가 평균 일년이 멀다하고 바뀌고 총애받는 측근의 말발이 센 풍토에서 경제각료들은 오직 한사람 ‘관객(대통령)’의 눈에 들도록 재주를 부려야만 했다. 이래서 정책의 일관성이 묽어지고 냉탕·온탕이 반복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환란 직후 2년 내리 마이너스였던 중앙은행의 본원통화 증가율이 9·11 사태 이후 급격한 증가세로 돌아섰다. 풀린 돈이 고수익을 찾아나섰고, 금리 낮은 금융기관을 피하고 부동산시장을 기웃거리게 되었다. 그래도 모이는 예수금을 은행은 리스크관리를 위해 주택담보대출로 돌렸다. 정부는 그 담보대출비율을 100%로 높여주었고, 부동산 전매를 허용했다. 부동산시장의 거품은 이렇게 부풀어갔다. 잠시 모든 게 잘되는 듯 보였다. 작년 주요국 경제들이 모두 침체한 가운데 한국은 3.0% 성장을 이루었는데, 그것은 설비투자 감소 9.8%, 제조업 생산 부진에도 불구하고 소비와 건설투자가 각각 3.7%, 5.8% 증가했던 덕분이었다. 그러나 바로 지난해의 경제운용이 향후 경제전망을 불살라버릴 문젯거리를 잉태했다. 정부는 뒤늦게 진화작업에 나섰다. 전국적으로 투기억제지역을 확정하고 토지거래허가제, 관련세율 인상을 서둘렀다. 정부는 은행의 자율에 맡겨야 할 주택담보대출비율 인하, 대손충당금 인상, BIS 비율산정시 위험가중치 상향조정 등의 개입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주택가격은 오를 때는 성큼, 내릴 때는 살금이었다. 이래서 현 정부의 지지기반인 기층민의 주름살이 오히려 깊어졌다. 미국은 경기침체 우려 때문에 최근 연준(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했다. 반면 영국은 높은 소비물가, 낮은 실업률, 부동산가격 급등을 감안해 인플레 대책으로 금리인상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경제문제를 세계경제의 탓으로만 돌릴 것이 아니다. 정부는 말로는 시장경제였지만 주요 대목마다 인기영합적 정부개입주의로 밀어붙였다. 거시적 안목의 경제정책을 일관성있게 밀고 갈 수 없는 정치행태가 국민 경제를 멍들게 했다. 이것이 차기 정부가 물려받을 유산이다. 김병주 (서강대 경제학 교수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조선일보 2002. 11. 26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