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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자세로 정상회담에 임해야 할까 - 박효종
2007-10-01
어떤 자세로 정상회담에 임해야 할까 중국 베이징(北京)의 북핵 6자회담에서 핵시설 불능화와 신고시한 등을 담은 합의문이 잠정 타결됐다. 비핵화 2단계 로드맵을 담은 합의문이라고는 하나, 그 이행까지는 적지 않은 난관이 놓여 있어 일종의 ‘약속어음’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열릴 남북정상회담도 완전 핵폐기를 위한 국제적 노력에 적극 동참하는 형태가 돼야 한다. 행여 핵 문제는 북·미 현안이고 경협은 남북 현안이라고 생각지 말기를 바란다. 정권 말에 열리는 정상회담에 대해 많은 국민이 의아스럽게 생각하면서도 동의 내지 양해를 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노무현 대통령이 ‘아리랑’을 관람하고,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는 모습이나 심지어 서해 북방한계선(NLL) 재설정 문제를 회담 의제로 삼고 협상하는 것을 보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남북한 신뢰를 위해 반드시 해결돼야 할 문제들을 논의하는 장이 됐으면 하는 소망 때문이다. 노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에서 핵 문제를 핵심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여론에 대해 “회담을 깨자는 것이냐”며 강하게 반발해 왔다. 생각해 보면 이런 태도는 지난해 북한이 핵실험을 한 후 제재 조치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비등하자 “전쟁을 하자는 것이냐” 하고 윽박질렀던 것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다. 확실히 북한 핵 문제는 ‘뜨거운 감자’다. 그러나 감자가 뜨겁다고 해서 ‘뜨거운 감자’는 피하고 ‘식은 감자’만 골라먹겠다고 나서는 것은 정상회담에 임하는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불 속에 있는 밤톨을 꺼내는 일은 미국이나 6자회담에 맡기고 옆에서 구경이나 하겠다는 것도 한 국가의 운명을 책임지고 있는 정권의 떳떳한 자세가 아니다. 북한의 핵은 ‘강 건너 불’이라기보다는 ‘발등의 불’이기 때문이다. ‘뜨거운 감자’는 또 있다. 납북자 문제와 귀환하지 못한 국군포로 문제, 북한 주민들의 인권 문제들을 보라. 이들은 과거 김대중 정부 때부터 노 정부에 이르기까지 ‘뜨거운 감자’라고 하여 스스로 외면했던 문제들이다. 노 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을 2000년 정상회담에 이은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라는 말을 피하고 나름대로 역사적 의미를 담기 위해 ‘2007년 남북정상회담’으로 규정했다. 그것은 과거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남북관계에 새로운 기원을 이루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일 터이다. 그렇다면 신기원에 상응하는 의미를 갖는 의제가 설정되고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성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려면 북한에 대해 우리 돈을 내주는 선물의 의미를 갖는 ‘식은 감자’보다는, 북한이 완강하게 피해 왔던 문제에 대해 당당하게 요구하는 ‘뜨거운 감자’에 해당하는 의제에 집념을 보여야 한다. 물론 남북 간의 경협을 심화시키는 일도 중요하고, 제2의 개성공단이 생기는 것도 바람직하다. 또 북한의 농업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들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것도 나쁠 것은 없다. 하지만 까다로운 문제는 애써 피하고 쉬운 문제들에서만 합의가 이뤄진다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는 회담’으로 치부될 것이다. 핵 문제 해결없이 경협은 물론, 종전선언이나 평화체제를 논의한다는 것은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이번 회담이 명실 공히 역사적 의미를 갖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이 되려면 역사적 의미를 갖는 의제의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첫 술’에 배 부를 수는 없겠지만, ‘첫 단추’를 잘 끼우는 일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정상회담 흥행을 위한 각종 신기한 이벤트들을 연출하는 데 너무 힘을 쏟아서는 곤란하다. 그보다는 시대적 요구이며 민족적 요구라고 할 수 있는 진짜 유의미한 의제들에 천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럴 때 비로소 정권 말에 열리는 ‘무리한’ 정상회담이 진정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정치학 / 바른사회 공동대표) 출처 - 문화일보 2007. 10. 1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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