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사회시민회의

> 자료 > 바른사회 칼럼

	아이들을 살려내려면 - 정진곤
	2002-11-14
아이들을 살려내려면 성적도 우수하고, 성격도 쾌활한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나도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유서와 호소를 남긴 채 숨진 정군은 일기장에서 "어른인 아빠는 (이틀 동안) 20시간 일하고 28시간 쉬는데, 어린이인 나는 27시간30분 공부하고 20시간30분을 쉰다. 왜 어른보다 어린이가 자유시간이 적은지 이해할 수 없다"고 절규하고 있다. 정군은 학교를 마치면 속셈학원과 영어학원으로 직행했다. 저녁 늦게 집에 와 밥을 먹은 후에는 학교 숙제를 해야만 했다. 서울 지역에 살고 있는 상당수의 학생들은 보통 일주일에 5~6개의 학원을 다닌다고 한다. 정군 못지 않게 숨막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지난 9월 교육부가 제출한 국감자료에 따르면 초등생의 27.6%가 정군과 같이 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한다. 중학생과 고등학생의 삶은 한층 더 치열하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새벽까지 학원에 다녀야만 한다. 친구들과 놀지도 못한다. 과도한 스트레스와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학생들도 많다. 모두가 일류대학에 가기 위해 경쟁한다. 이 대열에서 실패한 학생들은 정군처럼 목숨을 끊기도 한다. 수능시험이 끝나면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학생들이 성적이 떨어진 것을 비관해 자살을 한다. 올해도 결코 예외는 아니다. 일류대학을 나와야만 사회에서 출세할 수 있고, 사람 대접도 받으면서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능력 위주의 사회가 아닌 학벌 위주의 사회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아이들이 일류대학에 가기 위한 경쟁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초등학생 때부터 놀지도 않고, 잠도 제대로 못자고 공부(?)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입시공화국이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학에 들어오면 또 다시 취직을 위해 열심히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대한민국의 교육은 결국 돈.명예.권력을 얻기 위한 치열한 경쟁의 장이며 어떤 학생도, 어느 부모도 이러한 사회적 굴레와 족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교육은 원론적인 측면에서 인간의 지적. 정서적.인격적 성장을 위한 활동일 뿐 결코 사회적 출세를 위한 발판이 돼서는 안된다. 또한 중.고등학교는 대학 가기 위해 모든 것을 이를 악물고 참고 견디며 희생해야 하는 시기는 아니다. 삶의 각 단계는 그 자체의 고유한 의미와 특성을 가지고 있다. 현재를 의미 있고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미래를 가장 잘 준비하는 것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대학준비에만 매달려 살아온 학생은 결코 지적.정서적.인격적 측면에서 훌륭한 어른이 될 수 없다. 어떻게 하면 교육이 교육다워질 수 있으며, 우리의 아이들이 중.고등학교 시절을 대학입시 준비가 아니라 그 자체로 내재적인 충만감을 가지고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을까? 근본적인 해결책은 구태여 일류대학을 졸업하지 않아도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벌 위주의 사회가 능력 위주의 사회로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이를 위해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중.단기적으로는 구태여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받지 않아도 중.고등학교 시절을 가장 의미 있고, 충실하게 보낸 사람들이 일류대학에 입학할 수 있도록 해줘야만 한다. 이 일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이 일을 위해 사회적 지혜를 모으고, 장기적이고 치밀한 계획을 세워 꾸준히 추진해가야 한다. 우리 모두는 정군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회적 공범자다. 그리고 그것은 정군만의 죽음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 모두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적.정서적.인격적으로 황폐해져 가고,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교육을 살려내 모든 아이들이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어른들이 해결해주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다. 교육학자뿐 아니라 교사.학부모.정치가.언론인.교육부 관료.기업인 모두가 이 일에 동참해야 한다. 아이들은 우리 사회 모두의 희망이요, 미래이기 때문이다. 鄭鎭坤 (한양대 교육학 교수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중앙일보 2002. 11. 14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