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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체성 지키는 남북교류여야 - 제성호
2007-05-31
국가정체성 지키는 남북교류여야 남북한의 통일은 분단 이전 상태로의 복고적 회귀가 아니다. 단순히 공간적·물리적 통합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미래의 시간 속에서 하나의 ‘새로운 민족공동체’를 만드는 과정이다. 혹자는 통일의 인적·심리적 요소에 주목해 사람의 통일, 마음의 통일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럴진대 우리 국민이 각 분야에서 깨어진 민족공동체의 회복·발전을 위해 노력하며, 다양한 형태의 남북공동사업 추진 등 통일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여기엔 분명한 원칙과 조건이 있다. 국가 정체성과 헌법적 가치를 존중하며, 특히 자유민주통일노선(헌법 제4조)에 부합하는 방향에서 남북교류를 실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의 적절한 안내와 지도를 따르는 것도 포함된다. 그래야 안정적이고 질서 있는 교류협력이 가능하다. 또 민족통일의 과정이 체계적으로 관리돼 무리없는 남북통합을 이룩할 수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지난 24일 불기 2551년 부처님오신날에 발표된 ‘조국통일 기원 남북불교도 동시법회 공동발원문’은 유감스러운 것이었다.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민족중시, 평화수호, 단합실현’으로 6·15공동선언을 철저히 실천하여 조국 통일을 앞당겨 나가려는 우리들…”이란 대목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2007년 북한의 신년공동사설에 명시된 대남 선동 문구를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결국 북한이 이른바 ‘6·15시대’의 기치로 내거는 ‘우리 민족끼리’ 이념, (반미)민족공조 노선과 ‘민족중시·평화수호·단합실현’의 3대 과업을 여과없이 수용·지지·동조·고무하는 것에 해당한다. 이 밖에 ‘민족중시는 우리 겨레의 생명’ ‘반전, 평화수호의 실천행’ ‘참다운 애국은 조국통일’이란 표현도 문제가 있다. 본래 북한의 신년공동사설은 해당 연도의 대내외 및 대남 정책 방향을 포괄적으로 제시하는 정치 문건이다. 따라서 우리 불교계가 북한의 정치강령에 영합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는 용어는 사용하지 말았어야 옳다. 이와 관련, 정부가 공동발원문 내용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바로잡지 않았다면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합법적인 교류의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볼 여지가 다분한 까닭이다. 무릇 종교가 세속의 정치와 구별되는 것은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며 피안(彼岸)의 세계를 제시하는 데 있다. 우리측이 이러한 점을 의식하고 공동발원문에 3대 과업 대신에 북한 주민의 생명(영혼) 살리기와 인간 존엄성 구현과 같은 대목을 포함시켰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남북 종교교류의 북측 파트너가 대남사업과 통일투쟁을 담당하는, 조선로동당의 전위기구인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조국전선)’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욱 더 그렇다. 다시금 6·15의 계절이 돌아오고 있다. 6·15 공동선언 7주년 기념행사가 평양에서 열릴 것이다. 이후 8·15까지 두 달간 한반도에서 ‘민족’과 ‘반미’ 그리고 ‘통일’이 최대의 화두로 등장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어김없이 조국통일 3대헌장(혹은 연방제 통일) 실천이 선포되고 정체 불명의 한반도기가 나부끼는 가운데, 주한미군 철수투쟁 구호가 난무하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등 반미투쟁의 목소리가 고조될 공산이 크다. 이 같은 사태는 사회·문화교류가 북한의 대남 통일전선 공작이 작동하는 합법 공간으로 악용됨을 의미한다. 이런 일은 앞으로 더 이상 되풀이돼선 안된다. 남북교류는 북한 사회의 개방과 민족동질성 회복에 기여할 때에만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이제 정부는 성과에 급급해 국가 정체성 및 체제가치 훼손 행위를 방관하거나 감싸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 남북교류의 구조조정과 질적 관리, 그리고 책임지는 자세가 절실하다. 제성호 (중앙대 교수·법학 / 바른사회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07. 5. 31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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