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 > 바른사회 칼럼
> 자료 > 바른사회 칼럼
趙東根 (시민회의 경제제도연구센터 소장/명지대학교 투자정보대학원장)
1997년 12월 19일 새벽. 거인 김대중은 15대 대통령 당선자로 역사의 전면에 다시 섰다. 김대중 당선자의 대선 환경은 인위적으로 만들려 해도 만들기 어려울 만큼 절묘했다. 선거막판에 들이닥친 경제위기 상황이 바로 그것이다. 경제에 관한 한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선거전략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더욱 그 빛을 발했다. 드디어 김대중 대통령은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드디어 4번째 타석에서 출루했다. 그러나 김대중 당선자의 출루는 부분적으로 경제관리 실패라는 수비수의 실책에 힘입은 것으로, 홈으로의 금의환향(경제개혁 완수)을 위해서는 스스로 도루도 해야하고 후속타자의 뒷받침도 있어야 한다. 개혁의 호기 놓친 국민의 정부 일반적으로 위기는 개혁의 적기(適期)이다. 위기는 기존의 제도와 정책을 국지적 안정상태에 가두어 놓았던 마찰력을 이겨낼 충격을 줌으로써 더 나은 새로운 안정상태로의 이행, 즉 개혁의 에너지를 공급해 준다. 정권교체기도 개혁의 밀월기간이다. 따라서 IMF체제와 더불어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이같은 외형조건으로 볼 때, 경제개혁을 추진하기에 더 없이 좋은 환경에 놓여 있었다. 더욱이 IMF위기는 지난 30년간 기능해 온 국가개발모델의 유효성을 종식시키는 뚜렷한 상징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개혁의 대강(大綱)은 큰 논란 없이 관치경제의 청산과 시장경제체제의 구축으로 잡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IMF위기와 더불어 대두된 ‘재벌의 위기책임론’도 자연스럽게 재벌개혁론으로 이어져, 국민의 정부는 재벌개혁은 물론 관치경제라는 얼룩진 과거를 지우고 우리 사회의 번영을 가져다 줄 보다 ‘긴 호흡’의, 즉 장기적, 구조적, 제도적, 질서적 차원에서 경제개혁을 수행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갖췄던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후 미증유의 국가위기 상황에서 위기극복과 구조개혁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위기관리를 위한 경기대책은 물론, 금융, 재벌, 노동, 공공부문의 4대 개혁과제 수행을 뒷받침하기 위한 각종 제도장치 마련과 법안통과가 봇물을 이루었다. 재벌개혁과 관련해서는 사업구조, 재무구조, 지배구조를 동시에 그리고 제도개선을 통해 추진함으로써 그 논리와 방향에 있어 규제일변도의 과거 재벌정책과 차별화되었으며, 부실기업퇴출로 구조조정 실적도 가시적이었다. 또한 국민의 정부 초기, 국민은 ‘금모으기 운동’으로 김대중 대통령의 국정에 신뢰를 보냈으며 근로자도 자발적인 ‘임금동결’로 고통분담에 동참하였다. 분명 출발은 좋았다. 그러나 지난 4년을 되돌아 볼 때, 위기관리는 물론 양적인 면에서의 기업구조조정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은 아직도 상당부분 제거되지 않고 남아 있으며 갖가지 규제로 기업의 경제활력이 저하되었다. 뿐만 아니라 과거 정부주도 압축성장과정에서 형성된 시장역행적인 각종 제도, 정책, 관행 등이 온존하고 있으며 경제주체의 정부 의존적 도덕적 해이도 불식되지 않아 시장질서 정착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종합적으로 볼 때, 국민의 정부는 위기를 진정시키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불행하게도 위기를 반전시켜 국민경제 운영패러다임의 ‘질적 변신’을 꾀하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김대중 정부가 경제개혁에 실패한 데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첫째, 개혁의 이념적?철학적?논리적 토대가 정합적(整合的)이지 않아 서로 상충되는 정책조합이 구사되었다. 예컨대 노동시장 유연화를 노사정협의를 통해 풀려고 했으며, 효율 제고를 위한 정책의 저변에는 평등주의적 가치관이 깔려 있는 경우가 많았다. 둘째, 겉으로는 관치의 청산을 표방하였지만, ‘관치의 끈’을 놓는 것에 대한 미련이 너무 컸고 정부의 조직력과 기획능력에 대한 ‘자만심’을 떨쳐버리지 못해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에 실패했다. 물론 위기상황에서 개혁을 주도하기 위해서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었음은 인정되나, 문제는 개혁과정에서의 정부의 개입이 ‘타성화’된 것이다. 셋째, 단시간 내에 가시적 성과를 얻기 위해 반(反)시장적 발상과 행동을 불사한 것도 화근이었다. 특히 재벌개혁과 관련하여 ‘압축개혁’을 시도한 나머지 재벌구조와 행태에 직접 규제를 가함으로써 관치의 ‘경로의존성(path dependancy)’을 더욱 심화시키는 우를 범하였다. 넷째, 정부가 초심(初心)을 너무 빨리 잃고 자만에 빠져 사회의 개혁분위기를 이완시킨 것도 문제였다. 예컨대 IMF조기졸업 선언을 계기로 사회의 개혁분위기는 급속도로 실종되었다. 다섯째, 정부가 공공부문의 개혁에 솔선수범하지 않음으로써 민간부문으로부터의 저항과 반발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민간부문에 국한된 개혁요구로 사회전체에 개혁피로감이 쌓여 개혁의 마찰이 증폭되었다. 끝으로 재벌개혁과 관련해, 시민단체를 ‘원군’(援軍)으로 삼은 듯한 정부의 행태가 재벌과의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시민단체의 재벌개혁 논의는 시장경제의 기본질서와 배치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필자는 김대중 대통령의 경제개혁 실패 요인을 ‘자유주의 경제관의 굴절과 변용’으로 압축하여 인식하고 있다. 이같은 시각에 의거, 이 글의 목적은 i) 김대중 대통령의 경제관과 철학이 처음부터 자유시장경제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는지와 ii) 그렇지 않다면 김대통령의 자유주의 경제관이 ‘DJ노믹스’로 정형화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굴절되고 변용되었는지를 살피는 데 있다. 『대중경제론』에 나타난 김대중의 자유시장 경제관 김대중 대통령의 경제관을 ‘치우침’ 없이 탐색하기 위해서는 김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한 이후 남긴 모든 저술과 기고문을 참고하여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같은 작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필자는 분석의 범위를 김대통령의 대표적 경제저서인 『대중경제론(1986)』과 『김대중의 21세기 시민경제이야기(1997)』로 국한하였으며,『대중경제론』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경제철학의 원류를 찾고자 시도하였다. 그 이유는,『대중경제론』이 실제 쓰여진 시기가 김대통령이 하버드대학 초청연구원 자격으로 미국에 체류한 1983～1984년이기 때문에, 저술 동기가 1997년 대선(大選)을 앞두고 출간된『시민경제이야기』보다 훨씬 ‘정치적인 목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대중경제론』의 서문에 나와 있는 대로, “멀리 조국을 떠나 조감했기 때문에 지엽말단에 구애되거나 특히 정부의 과대한 선전에 현혹됨이 없이 큰 줄거리를 추스르기가 쉬웠다”는 저자의 소회(所懷)에서, 필자는『대중경제론』이 평소 김대중 대통령의 경제관과 철학을 치우침 없이 담아내었을 것이란 기대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중경제론』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자유시장경제의 구성원칙에 대체로 동의함으로써, 자유시장 경제관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혹자는 필자의 이러한 평가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지만, 김대통령이 경제학자가 아닌 정치가임을 감안할 때 『대중경제론』에 나타난 그의 세계관은 자유주의 경제관과 맥을 같이 한다는 것이 필자의 평가이다. 이하에서는 『대중경제론』을 중심으로 김대통령의 경제관을 살핀다. 김대통령은『대중경제론』에서 자유경제체제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지지를 천명하고 있다. “나는 자유경제만이 모든 사람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고 근면하고 유능한 사람을 성공자로 만들 수 있다고 믿으며, 창의와 모험심을 불러 일으켜 경제의 다이나믹한 발전을 가져오고 우리가 직면한 정보화시대에 잘 적응해 나갈 수 있게 한다고 믿는다”. 그는 이미 80년대 중반, 자유시장경제가 창의와 모험심을 북돋으며 정보화시대에 적합한 경제체제임을 설파하는 예지를 보여 주었다. 또한 그는, 자유경제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풍요와 정의를 실현하는데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에 지지하며, 자유경제는 서구선진 사회에서 본 바와 같이 정치적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기반을 제공해 주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선진국가들은 자유경제체제를 정의가 수반되는 경제체제로 발전시켜, 초기자본주의 단계에서 보였던 ‘부의 집중’이나 노동자와 소비자에 대한 ‘무한 수탈’의 양상을 과거지사로 만들었다고 피력하고 있다. 나아가 그는, 서구식 사회민주주의는 정의와 관념에 있어서는 훌륭하지만 기업의 국유화, 지나친 사회보장제도 등으로 경제발전을 희생시키고 있어,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사회보장제도의 절제, 자유경쟁제도 강화 등의 방향으로 정책을 수정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김대중 대통령의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뚜렷한 편향성을 찾을 수 없다. 김대중 대통령의 자유주의 경제관을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단서는 그의 ‘균형 잡힌’ 기업관이다. “자유경제체제는 무어라 해도 기업인이 그 주역이다. 나는 오늘날 우리 기업인이 지나친 탐욕으로 부를 집중하고 노동자와 소비자를 수탈하는 것을 볼 때 의분을 느끼지만 한편 그들이 독재체제 하에서 권력과 결탁하고 무한 수탈의 경쟁에 뛰어들지 않으면 기업인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일면이 있는 현실을 무시할 수도 없다”. 그는 기업을 ‘탐욕스러운 존재’로 예단(豫斷)하지 않았으며, 또한 기업의 행태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제도변화(기업의 유인구조)와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음으로써 제도학파의 견해를 견지하고 있다. 또한 그는 시장의 경쟁 메카니즘에 깊은 신뢰를 보내고 있다. “경제정책에 대한 나의 대안은 시장기능에의 의존을 기본원칙으로 하는 것이다. 이는 시장의 경쟁적 기능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역장벽의 철폐이다. 그리고 자유무역만으로 시장의 경쟁적 기능을 조성할 수 없을 때에는 반(反)독점법을 제정하고 적용하는 등의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국제무역, 자본이동, 경제발전에 대해서도 자유주의 경제관을 견지하고 있다. 그는 논지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국가간의 상호의존관계가 본질적으로 해로운 것은 아니나, 상호의존관계가 일관되게 불평등하다면 분명 문제가 있다. 그러나 경제관계는 완전 평등적이지 않은 것이 상례이며, 이러한 불평등 관계를 국제사회에서 완전하게 제거할 수는 없다. 따라서 개발도상국이 불공평한 종속관계를 모면하는 최선의 방법은 자신이 선진국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부족한 국내저축을 보완하는 방편으로 해외로부터 빚을 들여오는 대신 ‘외국인 직접투자’에 보다 더 의존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80년대 초반 풍미하던, 중심부와 주변국간의 교역관계가 갖는 착취적 특성에 초점을 맞춘 종속이론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우리 경제의 최고의 가치는 자립적 발전(불평등관계의 불식)이기 때문에, 부당한 종속관계의 존속을 허용해서는 안되지만 종속에 반대한다고 ‘고립과 배타적 태도’를 지향하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고 밝히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자유주의 경제관은 ‘정부의 시장간섭’ 비판으로 완결된다. 그는, 개발년대에도 정부가 어리석은 시장간섭을 삼가 했더라면 경제성장률은 더욱 괄목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정부간섭을 배제하고 시장기능을 회복시켜 기업가, 노동자, 농민, 소비자 등 모든 집단이 자유시장이 제공하는 기회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소신임을 밝히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개발년대의 정부개입 비판은 다분히 이례적이다. 왜냐하면, 개발년대는 일종의 자원동원경제(resources mobilization economy)로서, 산업정책적 차원에서 정부의 시장개입이 상당 정도 용인되었기 때문이다. 『대중경제론』은 『대중참여경제론』으로도 불리운다. 그러면 그가 말하는 대중참여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는 대중참여경제의 핵심을 “대중이 ‘생산과 운영에 참여’하고 그 소득의 분배에도 참여하는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게 하는 민주적 대안”으로 압축하고 있다. 나아가 그는 “균형된 발전을 위해서는 기업가, 노동자, 농민, 소비자 등의 모든 집단이 민주정치 하에서 ‘경제적 의사결정의 여러 국면에 충분히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견 ‘운영에의 참여’같은 주장은 독일식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노사공동결정제’나 ‘노동자의 경영참여’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대중경제론』의 어디에서도 노사공동결정제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운영에의 참여 주장은 다분히 선언적인 느낌을 준다. 대신 그는 여러 곳에서 노동배제적 경제성장, 노동조합 탄압, 지역차별, 개발이익의 소수 편중과 경제력 집중 등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의 문제의식은 한마디로 불균형성장에 따른 적폐(積幣)를 해소하지 않고서는 장기적인 경제발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지론은 ‘분배의 형평성 제고’이며, 노사공동결정제 등은 아니다. 그리고 그는, 기존의 노사관계의 불평등은 마땅히 해소되어야 하나 노동조합이 자신의 이익을 전체 국민의 이익보다 앞세우지 말아야 한다고 함으로써, 최소한 『대중경제론』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친(親)노동성향’은 발견되고 있지 않다. 끝으로 김대중 대통령은 “역사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자유 없는 경제발전’에는 한계가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몇몇 신흥국가를 제외하고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들은 모두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사실을 들어, 자유를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로 해석하고 있다. 이로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의 싹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대중경제론』의 전체 흐름을 볼 때, 자유는 ‘경제자유와 공정분배’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DJ노믹스』와 자유주의 경제관의 굴절 외환위기가 한창 진행 중인 1998년 가을 김대중 대통령의 참모들은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담은『DJnomics: 국민과 함께 내일을 연다』를 펴냈다. 이 책에는, 15대 대통령 취임사에서 밝힌 “국민의 땀과 눈물 그리고 야당의 협조를 요구한다”는 진지함과 겸손은 사라지고 대신 자만과 장밋빛 비전이 가득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가 확립되지 못하고 관치경제와 정경유착,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우리 경제가 총체적으로 부실화되었기 때문에 외환위기가 초래되었다”는 이 책의 진단은, 마치 각종 금융 게이트와 공적자금 유실로 얼룩진 오늘의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 같아 차라리 슬프기까지 하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으로 압축되는 DJ노믹스는 경제질서와 정치?사회질서간의 상호의존성을 강조하는 ‘질서자유주의’의 전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시장경제는 자유민주주의와 법의 지배를 그 기반으로 하며, 시장경제는 사회구성원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통해 정치적 민주주의의 물질적 토대를 제공하기 때문에,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는 동전의 앞뒷면처럼 불가분의 관계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둘은 병행 발전하는 속성이 있고 또한 병행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의 DJ노믹스는 김대통령의 국정철학을 포장하여 브랜드 이미지화 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지나치게 사변적(思辨的)이고 ‘당위’에 치우친 감이 없지 않다. 따라서 DJ노믹스는 레이거노믹스의 ‘위대한 미국건설’이나 대처리즘의 ‘영국병 치유’처럼 국민들에게 긴장감과 변화에 대한 희망을 불어넣어 주기에는 유약했다. 『대중경제론』에 나타난 김대중 대통령의 자유주의 경제관은 DJ노믹스에서 상당 부분 굴절하게 된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은 의미 그대로 정치와 경제의 균형발전으로 엄격하게 해석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양자가 ‘민주적 시장경제’로 통합되면서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을 훼손시킬 수 있는 이념적 혼란을 배태하게 되었다. 원래 민주적 시장경제는 ‘권위주의적 관치경제’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지만, 이는 접합점을 찾기 어려운 미국식 신자유주의와 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병치시킨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DJ노믹스의 원전이라 할 수 있는 1997년의『시민경제이야기』에서 이미 “시민의 자율성 보장과 참여 확대 그리고 경제운영에의 민주주의 원리와 원칙의 적용”을 강조하고 있다. 이로서 민주적 시장경제는 출발부터 경제논리가 정치논리와 뒤섞일 수 있는 여지를 제공했다. 한편 민주적 시장경제는 김대중 대통령의 지지그룹으로부터 ‘경제민주주의’로 확대 해석되게 된다. 경제민주주의는 경제평등, 경제정의(분배정의)를 표방하기 때문에, 자유시장경제질서와 충돌하게 된다. 예컨대, 소액주주운동을 전개한 시민단체의 주주민주주의도 경제민주주의 실현의 한 수단인 것이다. 1인 1표와 1원 1표의 유일한 접합점은 ‘1인 1원’이나, 이는 자유기업 원리와 결코 부합될 수 없는 것이다. 김대통령의 자유주의 경제관은, ‘사회적 합의주의’에 기초한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도모하고자 시도함으로써 다시 한번 굴절된다. DJ노믹스의 노동정책은 노동시장의 유연화, 사회적 합의, 사회안전망의 3가지 축으로 이루어졌다. 노동시장 유연화는 목표이고 사회적 합의는 절차이며 사회적 안전망은 노동시장 유연화과정에서 발생하는 충격의 보완장치이다. 여기서 노동시장 유연화는 국민의 정부의 본래의 입장이라기 보다는 경제환경의 변화에 따른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가 국민의 정부 노동정책의 핵심이다. 노사정위원회는 사회적 합의를 위한 장치로서 조합주의(corporatism)에 뿌리를 두고 있다. 조합주의는 이익집단간의 타협을 통해 시장에 개입하게 되므로, 본질적으로 집단주의이며 정치적 의사결정의 속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조합주의는 형태여하에 따라 법보다 더 강력한 사회적 규제로 기능하여 고용조정의 탄력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한편 노동시장 유연화는 자유로운 경제선택의 개별적 의사결정이기 때문에, 노동시장 유연화와 조합주의는 본질적으로 배치될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조합주의는 DJ노믹스의 시장경제의 발전과 충돌하고 있다. 즉 참여자본주의는 사회적 의사결정인데 반해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은 개별적 의사결정이기 때문이다. 노사관계의 조합주의는 『대중경제론』에서는 주장되지 않았던 부분이다. 김대중 대통령은『대중경제론』에서 노사간의 협상력의 차이가 노동자에게 불리한 근로계약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노동자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하고는 있다. 그러나 이는, 노동시장은 시장기능의 합리성이 적용되기 어렵기 때문에 시장원리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일정한 규범으로 제어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노동시장 규제론(예컨대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등)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조합주의와는 무관한 것이다. 1998년의 절박한 위기상황이 호전된 뒤 나온 ‘생산적 복지’도 김대중 대통령의 자유시장경제관을 왜곡시키는 데 일조(一助)하였다. 생산적 복지는 국가시혜적 복지의 개념을 고용복지 즉 국민들이 최대한 일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복지를 개혁하자는 것이다. 즉 복지의 중심을 직업훈련 등을 통해 일자리를 주거나 유지 시켜주는 적극적 복지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가 도입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는 엄밀한 의미에서 생산적 복지와 무관한 ‘부(負)의 소득세제’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수혜자 선정기준 등 기술적인 문제를 떠나, 빈곤층의 국가의존과 도덕적 해이를 심화시키고 더 나아가 ‘기회의 평등’을 넘어 ‘결과의 평등’까지 국가가 보장하겠다는 반(反)시장적 신호를 보낸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DJ노믹스를 구성하는 3개의 축,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 사회적 합의를 통한 노동시장 유연화, 생산적 복지는 온정과 경쟁력의 결합, 인간의 얼굴을 가진 시장경제 같은 ‘제 3의 길’을 지향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효율과 형평의 추구를 동일한 정책선상에서 그것도 정부의 개입을 통해 도모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하이에크가 지적한 대로, 대립되는 이념과 사조를 절충한 이념체계는 그 논리적 비정합성으로 인해 실패할 수밖에 없다. ‘효율과 형평의 동시추구’는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반길만한 수사학(修辭學)에 지나지 않으며 종국에는 ‘인기영합주의’(populism)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다분하다. IMF위기 당시 우리경제의 문제점은 ‘시장원리의 지나침’이 아닌 ‘모자람’이었다. 따라서 ‘시장의 햇볕’이 경제과정에 골고루 들어갈 수 있도록 자유주의경제관을 견지했어야 했다. 그리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 같은 추상적인 비전보다는 피부에 와 닿는 ‘구조조정과 시장경제의 완성’이 더 적절한 선택이었지 않나 싶다. 『DJ노믹스』와 자유주의 경제관의 변용 위기극복과 개혁은 다른 개념이다. 따라서 위기를 맞아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효율적일 수 있으나 동시에 위험하기도 하다. 위기는 대체로 신속하고 과감한 대책을 필요로 한다. 재정지출과 통화공급 조정 같은 거시경제 대책은 신속하게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금융 불안 역시 신속히 대처하여 시스템의 붕괴를 막아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1998년의 국민의 정부의 경기안정화 대책과 공적자금 투입은 적절한 조치였다. 그러나 개혁은 말 그대로 가죽(革)을 벗기는(改) 고통스런 작업이며, 근본적인 제도변화를 요구한다. 제도는 게임의 법칙으로 경제거래에 수반되는 인센티브를 구조화하여,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제도변화는 신중히 그리고 논리적 정합성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는 위기상황을 이용하여 개혁을 마치 거시경제정책 조정쯤으로 여기지 않았나 싶다. 우리는 여기서 국민의 정부의 지식관(知識觀)을 엿볼 수 있다. 하아에크의 표현을 빌리면, 국민의 정부는 ‘치명적 지적오만(fatal conceit)'을 저지른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재벌개혁과 관련하여, 기업의 경영전략 선택사안까지 정책적 개입을 주저하지 않는 전지(全知)함을 보였다. 예컨대 정부가 빅딜을 통해 재벌의 주력업종을 선정해 주었으며 부채비율과 사외이사 비율도 정해주었다. 또 재벌의 그룹조정실의 해체를 요구하기도 하였다. 정부 스스로 자신을 ‘컨설팅회사’로 여긴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국민의 정부의 왜곡된 지식관이 압축개혁을 밀어붙이게 된 근저가 아닌가 판단된다. 한편 국민의 정부는 압축개혁을 위해 공적자금 투입으로 영향력 행사가 한층 용이해진 금융기관을 동원함으로써, 정부-금융-기업의 경계가 더욱 모호해졌다. 이처럼 압축개혁을 위한 관치의 강화로 김대중 대통령의 자유주의 경제관은 치명적으로 ‘변용’되게 된다. 개혁은 미래에 대한 사회적 투자의 성격을 갖는다. 즉 개혁은 보다 건실하고 안정적인 내일의 성장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혁은 오늘의 저성장을 무릅쓰고 이에 대한 대가를 치를 수 있느냐 하는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개혁이 시작되기 전에는 장기이득을 위해 단기비용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생각하다가도 막상 단기비용을 치러야 할 때가 오면 장기이득은 불확실해 보이고 단기비용은 커져 보인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 더욱이 인기에 영합하면 개혁은 지체되거나 왜곡된다. 클린턴은 1993년에 취임하면서 재정적자 축소가 최우선 개혁과제임을 천명하였다. 재정적자가 해소돼야만 국채발행이 줄어 금리가 떨어지고, 금리가 떨어져야 경기가 살아난다는 경제원론적인 처방인 것이다. 그러나 재정적자 감축은 ‘정부의 관여’를 지향하는 민주당의 전통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민주당의 지지기반인 흑인 등 저소득층의 바람을 져버리는, 인기에 반하는 개혁정책이었다. 결국 클린턴은 1994년 의회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게 패하였지만 1998년에는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극복하고 흑자기조를 정착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국민의 정부는 ‘구조조정과 경기부양’ 사이를 너무 많이 오갔다. 거의 실패로 판명난 기업구조개선작업(work out)도 구조조정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뿐만 아니라 국민의 정부는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야당이 제기한 국가채무논쟁, 즉 공적자금 조성상의 정부보증채무와 연금적자에 따른 묵시적 채무도 국가채무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을 비켜가기 위해, 구조조정이 완료되어 공적자금의 추가조성이 더 이상 필요 없다고 말함으로써 'IMF조기극복' 선언이라는 자충수를 두었다. 이로서 구조개혁의 분위기가 급속히 이완되었다. 국민의 정부는 정치적 지지도에 집착하고 구조조정 결과의 시간할인율을 너무 높게 잡아 현재의 비용지불을 유예함으로써, 김대중 대통령의 자유주의 경제관은 ‘현실정치와의 타협’ 형태로 변용되었다. 이는 경제논리가 정치논리에 의해 지배되어서는 안된다는 자유주의 경제관과 상치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정부하에서, 시민단체는 참여민주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그 위상과 영향력을 급격히 신장시켰다. 시민단체의 1차적 기대역할은 정부의 재량적 시장개입을 견제하고 감시하여 시장경제질서 정착과 법치주의 확립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재벌경영체제를 공격함으로서 재벌개혁에 깊숙이 관여하였다. 그러한 과정에서 기업과 시민단체는 반목하게 되었다. 기업의 주장은 시민단체가 시장에 개입하고 법치주의를 훼손(사재출연 요구)하는 활동을 해왔다는 것이다. 시민단체는 엄밀한 의미에서 위임(이익단체) 받지도 선임(정치권력)되지도 않은 불완전한 대리자이다. 따라서 시민단체는 캐로더스가 지적한 대로 국가기능을 보완하는 ‘사회자본’일 수도 제도권에 대한 대항적 패권추구로 ‘사회위험’이 될 수도 있다. 시민단체의 재벌에 대한 공격에서, 시민단체의 인성관(人性觀)을 엿볼 수 있다. 시민단체는 암묵적으로 인간을 완전한 도덕적 존재로 상정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이 공격하는 재벌의 약점, 예컨대 지대추구, 분식회계, 정경유착 등은 기업의 도덕성 결여에서 연유되었다기보다는 시장이 억압된 결과 생겨난 것들이다. 따라서 부패방지의 해법은 시장규율이 작동할 수 있도록 정부의 억압으로부터 시장을 자유롭게 해, ‘견제와 균형’원리가 기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편 시민단체가 주장해온, 민(民)에 의한 자본통제, 근로자 경영참가, 대기업 국민기업화,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배분, 사외이사제 과반수 도입 및 시민단체에 의한 추천 등은 분명 시장경제의 정착과 활성화와 배치되는 것이다. 만약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 참여민주주의의 기치아래 ‘시장규율이 아닌 시민단체의 규율’에 의한 기업통제의 통로를 열어준 것이라면, 이는 또 다른 각도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자유주의 경제관을 변용시킨 것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김대중 대통령의 고해성사 2001년 초 김대통령은 ‘강한 대통령론’을 언급하면서, 인기에 영합하지 않는 그러나 퇴임후 평가받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소신을 밝힌 바 있다. 이는 뒤집어보면 그동안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고 단기성과에 집착했다는 고해성사로서 그 자체만으로도 국민에게 희망을 준 것이다. 그동안 개혁이 지체된 것은 시장경제원리에 바탕을 둔 긴 호흡의 개혁을 추진하지 않고 압축개혁과 대중주의의 미련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은 김대중 대통령이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제 김대중 대통령이 할 일은 자유주의 경제관의 초심으로 돌아가 우리경제의 효율성과 건전성이 한층 높아질 수 있도록 경제대통령으로 조국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