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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友情어린 경선'을 위해 - 박효종
2007-05-16
한나라당 '友情어린 경선'을 위해 파국 일보 직전까지 갔던 이명박·박근혜 진영이 극적 타결을 한 것은 반길 만한 일이다. 한 정당 안에서 이뤄진 벼랑끝 타협이라고는 하나, 절차 민주주의의 질을 한 수준 높인 것으로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경선 룰에 대한 합의는 경선의 큰 틀 합의에 불과해 글자 그대로 시작 중의 시작일 뿐이다. 본격적인 ‘경선모드’에 들어섰으니, 검증 문제는 물론 경선위원회 구성 문제부터 시작하여 선거인단 구성 방법, 여론조사 기법, 당직 인선, 사고지구당 정비 등 쟁점 사안들이 줄줄이 불거질 공산이 크다. 그러다 보면 불안한 ‘평화모드’가 언제 살벌한 ‘전쟁모드’로 바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양측은 앞으로도 쟁점이 생길 때마다 과거처럼 공정성과 원칙에 대해 강조하지 않을까. 특히 자신은 공정한데 상대방은 불공정하다거나, 자신은 원칙을 지켰는데 상대방은 원칙을 어겼다고 비난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공정하다는 것을 기준으로 삼으려 한다면 낭패다. 치열하게 싸우는 양편을 만족시킬 만한 공정성의 기준이란 존재할 수 없는 법이다. 일찍이 정치철학자 존 롤스는 공정하기 위해서는 ‘무지의 베일’을 써야 한다고 역설했다. ‘무지의 베일’이란 자신의 기존의 입장을 떠나는 것이다. 지금 양측이 자신의 입장을 떠나서 객관적으로 사물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다. 그런가 하면 “나는 세 번 양보했는데 당신은 한 번밖에 양보하지 않았다”거나 “지난번에 내가 양보했으니 이번에는 당신이 양보할 차례”라고 티격태격할 수도 있다. 타협이 되려면 서로 한 발짝씩 양보해야 한다는 것은 그럴 듯한 원칙이나, 엄밀하게 따져보면 한 발짝의 의미가 분명하지 않다. 발이 큰 사람과 발이 작은 사람의 한 발짝은 결코 같지 않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경선을 위해 필요한 것은 공정성이나 상호 양보의 정신이 아니다. 그보다는 우정이 핵심이다. 우정이야말로 경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필수적인 가치로서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선의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이미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폴리스’가 되기 위해서는 시민들 사이에 정의보다 ‘시민적 우정’ 즉 ‘필리아 폴리티케’가 넘쳐흘러야 한다고 충고한 바 있다. ‘우정이 있는 경쟁’ 즉 ‘우정어린 경쟁’이 가능하려면 이기고 지는 문제에 열중하면서도 이기고 지는 문제를 초월할 수 있어야 한다. 득실을 따지면서도 득실 문제를 넘어갈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고대 스파르타인들의 우정이야말로 하나의 모범이다. 대규모로 공격해 들어오는 페르시아군을 대적하기 위해 300명의 결사대를 뽑는데 경쟁이 치열했다. 그만큼 조국애가 넘쳐흘렀던 것이다. 아들을 가진 전사들만이 자격이 있었으며, 그 가운데서도 탁월한 전투 기술을 가진 소수가 선발됐다. 이 경쟁에서 탈락된 사람들은 섭섭함을 가눌 수 없었으나, “나보다 더 유능한 전사가 뽑혀서 기쁘다”는 말로 자위했다. 이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이유는 ‘우정어린 경쟁’의 본질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대통령직은 명예를 위한 직책일까, 아니면 죽음에 이르는 길일까. 십자가의 길보다 명예의 길로 생각한다면 한참 잘못 생각한 것이며, 따라서 경선에 나설 자격이 없다. 또 그 경쟁에서 떨어졌을 때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승리했으니 기쁘다”고 할 것인가, 아니면 “나보다 훨씬 못한 사람이 우여곡절 끝에 승리했으니 슬프다”고 할 것인가. 후자의 감회를 토로하는 사람은 우정이 결여된 사람이다. 우정이 없는데도, 그 우정 없음을 은폐하기 위해 공정치 못하다느니, 양보를 좀처럼 하지 않는다느니 하면서 트집만 잡는다면 구차스러운 일이다. 지금 ‘경선체제’에 돌입하고 있는 양측에 묻는다. 상대방에 대해 ‘우정어린 경쟁’을 할 마음이 있는가. 박효종 (서울대 교수·정치학 / 바른사회 공동대표) 출처 - 문화일보 2007. 5. 16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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