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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지 않는 사회 - 함인희
2007-04-28
책을 읽지 않는 사회 “교수님 고전(古典)이 무언지 아시나요? 누구나 좋은 책이란 것을 알고 있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랍니다.” 최근 강의실에서 들었던 재치 있는 농담이다. 4월23일 ‘책의 날’을 맞아 흥미로운 통계 수치가 한 건 발표됐다. 가구당 한 달 평균 책 구입비는 고작 7200원. 반면에 화장품 구입비는 1만3000원, 담배 구입비는 2만2000원으로 나타났다 한다. 요즘 책 한 권 값이 1만2000원 정도 된다 하니 가구당 0.6권 정도의 책을 구입하는 꼴이요, 스타벅스 커피 두 잔 값에도 못 미치는 돈을 책 구입비로 지출하고 있는 셈이다. 고도 소비사회의 초라한 뒷모습이 아닐지. 상황이 이렇고 보니, 예전 아날로그 세대들은 궁금한 것이 있으면 도서관을 찾아 책을 뒤적였으나 요즘 디지털 세대들은 컴퓨터를 켜고 포털 사이트의 ‘검색’ 키를 누른다. 덕분에 누구나 똑같은 정보에 노출되면서 모르는 건 모두 함께 모르고 틀리는 건 전부 함께 틀리는 촌극을 종종 연출하곤 한다. 한데 이들 디지털 세대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정보 공유 시대에도 공유되지 않는 진짜 정보, 이름 하여 ‘전략적 정보(strategic knowledge)’는 여전히 아날로그 형태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참(眞) 정보는 여전히 발품 팔아가며 온 몸으로 부딪쳐야 하는 경험 속에 숨어 있거나 꼼꼼히 읽어 내려가며 깊이 생각해야 하는 책 속에 감춰져 있게 마련이다. 한때 미래학자들은 정보사회 출현과 더불어 가장 먼저 사라질 공간으로 학교 교실을 꼽았고, 불필요해질 직업으로 교사 및 교수를 지목했으며, 머지않아 간편한 전자책(e-book)이 번거로운 종이책을 전면 대체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접속이 가능한 사회로 나아갈수록 사람 냄새 가득한 생생한 부딪침, 곧 ‘휴먼 터치’의 욕구 또한 강해지고 있고, 선진국으로 갈수록 아날로그 정서와 디지털 기술이 결합하여 다종다양의 출판문화를 더욱 화려하게 꽃 피우고 있음이 오늘의 현실이다. 언젠가 30대 초반의 생활설계사로부터 흥미로운 경험담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대구 출신으로 생활설계사에 입문한 지는 이제 5년차. 대구에서 남편 따라 서울에 온 지 꼭 두 달 만에 계약고 1위를 기록하여 포상을 받게 됐다 했다. 그 자리에서 놀라운 기록을 세우게 된 비결을 물으니, 생활설계사 시작하면서 자신이 한 일이라곤 책 500권 읽은 것이 전부라며 수줍게 웃었다. 하지만 바로 그 500권의 책 속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맺어야 하는지, 고객과 감동을 나누려면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 예기치 않은 위기 상황을 돌파하려면 어떤 전략이 필요한지, 꿈을 현실화하려면 어떤 지혜가 요구되는지 소상히 그려져 있었음이 분명하다. ‘책 속에 길이 있다’던 옛말이 그르지 않았던 셈이다. 책은 진정 매력적 매체다.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적 상상력과 창의력의 힘은 결코 쇠락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총아로 떠오른 게임산업만 해도 스토리 구성의 탄탄함과 내용의 풍성함이 뒷받침되지 않고선 경쟁력 확보가 불가능함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미래학자 짐 데이토가 주장하는 ‘꿈의 사회(Dream Society)’에서도 관건은 꿈의 씨앗을 뿌리고 열매를 맺도록 하는 스토리텔링의 힘에 있다 하지 않던가. 하버드대 신입생들을 향해 꿈이 무언지 물었더니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좋은 글의 첫 출발은 좋은 책 많이 읽고 깊이 생각하는 훈련으로부터 시작됨은 물론이다. 선진국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새삼 음미하게 하는 대목이다. 내년 책의 날엔 가구당 책 구입비가 500%쯤 올랐으면 좋겠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 바른사회 정책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07. 4. 28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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