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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 높아지는 한·미동맹 - 최병일
	2007-04-05
질 높아지는 한·미동맹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 반도에 위치한 한국은 바다로 뻗어나가려는 대륙세력과 대륙으로 진출하려는 해양세력이 맞부딪힐 수밖에 없는 숙명을 갖고 태어났다. 중국.일본.러시아.미국 등의 각축 속에 소국인 한국이 생존, 발전하려면 이들의 경쟁을 우리 국익에 맞게 활용하려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이런 배경 속에서 탄생했다. 한.미 FTA는 최근 수년간 악화일로를 걸어온 한.미 동맹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한.미 군사동맹의 약화와 함께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최대의 무역, 투자 상대국으로 급부상했다. 중국을 21세기 잠재적 경쟁자로 간주하고 있는 동아시아에서의 이런 상황전개는 그리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특히 한국에선 미군 감축과 한미연합사 해체 등이 이어졌다. 이 지역에서 정치역학의 무게중심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바로 이 시점에 체결된 한.미 FTA는 국면을 역전시키는 계기를 만들어 냈다. '한.미 동맹 군사구조 재조정'이라는 과도기에 체결된 FTA는 양국관계를 실질적인 포괄동맹으로 승격시킬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한.미 FTA 타결은 군사.경제적으로 미국과 멀어져 가는 한국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려는 미국의 세계전략과 관련이 있다. 미국이 일본과 중국을 제치고 한국과 먼저 FTA를 체결한 것이나, 한국이 일본과 중국에 앞서 먼저 미국과 FTA를 체결하기로 한 것은 양국이 군사동맹을 경제동맹으로 전환하면서 더 공고한 동맹관계를 맺고자 하는 생각에 교감했기 때문이다. 교착상태에 빠진 협상 막바지에 한.미 외교장관이 전화통화를 해 협상타결의 의지를 확인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 중국이 한국의 최대 무역상대국으로 부상했다는 점은 중국의 동북공정 행보를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는 한국에도 부담스럽다. 한국의 대(對) 중국 투자는 오래전부터 세계 최고다. 반면 일본과의 만성적인 무역수지 적자는 갈수록 커 가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한국 경제는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돼 국제무대에서의 협상력이 약해질 우려가 크다. 그런데 한.미 FTA는 일본 제품을 미국 제품으로 대체해 일본과의 무역수지 적자를 해소하고, 동시에 중국의 급부상을 견제할 수 있는 전략적 사고의 산물이다. 한.미 FTA는 샌드위치 신세인 한국의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역전시나리오'다. 일본은 한.미 FTA 체결로 한국의 일본상품 수입이 미국으로 상당부분 대체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일본의 대외교섭 주도권이 흔들릴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중단됐던 한.일 FTA 협상을 빨리 재개하라는 요구가 일본 내에서 나오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한.미 FTA가 체결된 직후 한국이 미국을 이용해 가까이 있는 중국에 대항하는 원교근공(遠交近攻)을 구사한다는 일본 언론의 시각은 한.미 FTA의 국제정치학적 의미를 정확히 꿰뚫어 본 것이다. 한.미 FTA는 한국의 안보리스크를 줄여 동북아 경제권 허브 전략 추진에 필수적인 대외신인도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미군이 빠져나가는 자리에 미국의 상품과 서비스, 기술이 들어오면서 한국의 안보는 미국의 안보만큼 중요해질 것이다. 이스라엘과 FTA를 체결한 미국이 이스라엘의 국익을 미국의 국익과 동일시한 것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한.미 FTA는 한국과 미국이 동반자로서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 한.미 FTA에서 합의된 개성공단 원산지를 논의하는 틀은 바로 이러한 발상을 담고 있다. 한마디로 '한.미 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틀' (framework toward advancement)이 될 것이다. 그 틀을 누구의 강요가 아닌 한국의 자주적인 판단으로 추진했다는 것은 한국이 스스로 국운을 개척할 의지가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 / 바른사회 정책위원장) 출처 - 중앙일보 2007. 4. 5 시론